"살인 방화범을 잡아 진상을 밝혀라"

[현장] 내곡동 주민 300여명 격렬시위...서초구청 '나 몰라라'

등록 2003.04.09 07:09수정 2003.04.0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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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해방철거민연대(빈철연), 민주노동당, 전국민중연대 소속 회원과 대학생 등 300여명은 8일 낮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비닐하우스 방화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화재민들에 대한 주거대책 수립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들이 구청 진입을 시도하며 철제문을 안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결국 철제문은 부숴지며 넘어졌다
시위대들이 구청 진입을 시도하며 철제문을 안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결국 철제문은 부숴지며 넘어졌다석희열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초구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최근 내곡동에서 발생한 일련의 방화사건에 대해 땅주인의 사주에 의한 명백한 살인방화라고 규정하고 서초구청과 서초경찰서가 이를 묵인·비호하고 있다며 조남호 서초구청장의 사과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필두 전국노점상총연합 의장은 규탄발언을 통해 "지난달 19일 새벽 살인방화로 숨진 신분호(82) 할머니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갔다"면서 "따뜻한 집 한 채만 있었다면 그렇게 뜨거운 불길 속에서 속절없이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노점상과 철거민이 하나되어 반드시 할머니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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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최재풍 중구지구당 위원장은 "당국은 반드시 이번 방화범을 찾아 철저한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러한 끔찍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서울 시민이 힘을 모아 좋은 세상을 만들자"며 "내곡동 화재민들이 주거권을 찾을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청 진입을 시도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철제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구청 진입을 시도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철제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석희열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화재주민 방치하는 구청장은 물러나라", "지주를 비호하는 서초경찰 박살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또 "살인방화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지주와 자본의 횡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할머니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내자"고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연대발언도 이어졌다.

중부민중연대 김영도 공동준비위원장은 "서초구청은 주민들의 정당한 면담요청조차 묵살하고 있는데, 이러고도 주민을 위한 구청이라 할 수 있느냐"고 몰아붙였다. 그는 또 "방화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경찰은 지주인 D그룹을 반드시 조사해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서초경찰서도 이번 방화사건에 연루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동당 이영남 동대문갑지구당 위원장은 "방화로 사람이 죽었는데도 당국에선 책임있는 자의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고 있다"며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져야 할 구청에서는 오히려 지주와 짜고 방화를 일삼으며 철거민과 서민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소복을 입은 내곡동 주민들이 고(故) 신분호 할머니의 영정을 들고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소복을 입은 내곡동 주민들이 고(故) 신분호 할머니의 영정을 들고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석희열

이번 방화사건으로 숨진 신분호 할머니의 유족인 조상영씨는 "집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다. 방화범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고 말문을 연 뒤 "서초구청, 서초경찰서, 양재소방서, 땅주인 모두가 방화범을 사주했다고 생각한다"며 "더욱 기막힌 것은 경찰이 10년 동안이나 집에 돌아오지 않던 남동생을 불러들여 어머니의 시신을 도둑질하여 도둑장례를 치렀다"고 울먹였다.

이같은 유족들의 주장에 대해 방화사건 직후 고(故) 신분호 할머니의 시신을 안치하고 있던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측은 "지난주 월요일(3월 24일로 추정) 고인의 아들이 병원으로 찾아와서 장례를 치렀다"며 "찾아온 사람이 유족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경찰에서 신분을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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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의 충돌로 내곡동 주민 임종금씨가 실신해 쓰러져 있다
경찰과의 충돌로 내곡동 주민 임종금씨가 실신해 쓰러져 있다석희열

한편 이날 오후 3시경 서초구청장 면담을 요구하며 구청 진입을 시도하던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구청 철제문이 부숴지고 주민 2명이 실신하여 119 구급차에 긴급 후송되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충돌이 발생하고 양측간에 심한 욕설이 오가며 팔과 발목이 꺾여 넘어지는 등 부상자가 늘어나면서 상황은 점점 격렬해졌다. 흥분한 시위대와 경찰은 서로 악을 쓰며 완강한 대치상황이 계속되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경찰은 부상자 방지를 위해 강제로 시위대를 분리시키기 시작했고, 오후 5시30분경 완전 해산시켰다.

한편 방화사건의 진상 규명과 주거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내곡동 비닐하우스촌 화재민들에 대해 지주인 서호산업(내곡동 주민들은 D그룹 계열이라고 주장)과 관할 관청인 서초구청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이번 사태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시위대와 경찰의 몸싸움이 벌어지자 서초구청 직원들이 바깥으로 나와 이를 지켜보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의 몸싸움이 벌어지자 서초구청 직원들이 바깥으로 나와 이를 지켜보고 있다석희열

서호산업측은 화재민들에 대해 한 가구당 300만원씩의 이주비를 주는 조건으로 당장 다른 곳으로 떠나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명도소송을 통한 강제철거에 들어간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민들에 대한 서초구청의 반응도 냉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초구청 도시관리국 관계자는 "자신들이 불법으로 살다 불이 났는데 왜 우리가 책임을 지느냐"면서 "내곡동 주민들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마련된 게 없다"고 잘라 말해 '무대책'임을 나타냈다.

서초구청 생활관리국 관계자도 "내곡동 비닐하우스촌은 녹지대라 재건축이 불가능하며 더욱이 비닐하우스가 주거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불법"이라며 "화재민들을 돕고 싶어도 도와줄 법령이 없다. 구청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라야 1인당 7만5천원의 구호자금과 대한적십자사에 요청하여 식량과 부식, 속옷 등 구호물품을 지원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119 구급차에 환자가 후송되고 있다.. 이날 양측간의 충돌로 2명이 실신하고 수십명이 부상했다
119 구급차에 환자가 후송되고 있다.. 이날 양측간의 충돌로 2명이 실신하고 수십명이 부상했다석희열

이에 대해 내곡동철대위 임종선 위원장은 "아무리 불법 주거라지만 주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줘야 할 국가와 자치단체에서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며 "주민들의 재난에 대해 구청에서 대책이 없다면 주민들이 어떻게 안심하고 살 수 있으며, 또 세금은 왜 내느냐"고 따져 물었다.

임종선 위원장은 서호산업측의 제안에 대해서도 "100만원이든 300만원이든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언제 우리가 돈을 달라고 했느냐"며 "갑자기 나가달라는 요구에 어느 정도 말미를 달라고 한 것 뿐인데, 이렇게 사람이 사는 집에 불을 지르며 강제로 내쫓을려는 것이 보통사람이라면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냐"고 흥분했다.

이와 함께 내곡동철대위는 방화방지대책으로 내곡동 화재민 주거지역에 이동파출소를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빈철연 정성래 상임대표는 "진상규명과 주거대책 수립 등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모든 민주단체와 연대해서 서초구청과 서초경찰서를 잇따라 항의 방문하여 대규모 규탄집회를 여는 등 강력히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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