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00

빛나는 대머리 독두환(禿頭煥) (5)

등록 2003.04.09 13:20수정 2003.04.0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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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 이것으로 될까요?"

장일정은 왠지 불안하였다. 설명대로라면 만년뇌혈곤은 무지막지한 괴물이다. 그런데 조룡간은 얼핏보면 짤막한 막대나 다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허허! 걱정 말게.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네. 그나저나 산공독을 미리 풀어야 할 터인데 어떤가? 가져온 것으로 충분한가?"
"그, 그게…"

장일정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설명은 들었지만 뇌정이 이렇게 크고 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가져온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던 것이다.

"부족하면 다시 가서 더 만들어 와야 할 것이네."
"예! 아, 아니에요. 그럴 필요까지는…"

이곳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상해까지 갔다가 다시 온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한 느낌이 든 장일정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그래? 그럼 어서 그것을 풀게. 지금 풀어 둬야 이따 밤이 되어 뇌성벽력이 진동할 때 놈을 잡을 수 있을 것이네."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장일정과 호옥접은 등에 지고 온 산공독 전부를 뇌정으로 던졌다. 환단으로 만들어 왔기에 얼핏 수면 아래에서 보면 비가 오는 것처럼 보였는지 잠시 수면이 출렁였다. 만년뇌혈곤이 분명 있다는 표시였다.

"자, 이제 좀 쉬세. 밤에 힘을 좀 써야 할 것이네."
"예! 온 김에 주변 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참, 미끼 가져오는 것은 안 잊었지?"
"하하! 그럼요. 이게 화관홍선사의 내단입니다."
"흐음! 냄새 한번 고약하군."

장일정이 화관홍선사의 내단을 꺼내자 비릿하면서도 역한 냄새가 풍겼다. 반광노조가 잠시 그것을 살필 때였다.

"아앗! 저, 저길 봐요. 어머낫!"

대경실색한 호옥접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본 장일정과 반광노조의 얼굴에는 일순 경악의 빛이 흘렀다.

"앗! 놈이 냄새를 맡고 올라오려고 하나봐요. 어, 어서 미, 미끼를 끼워요. 어서요. 어서 끼우세요."
"아, 알았네."
"어머! 어머! 저, 저기 좀 봐요. 아아아앗!"

호옥접의 눈은 더 이상 크게 떠질 수 없을 만큼 크게 떠졌다. 거세게 출렁이던 연못물을 박차고 튀어 오른 만년뇌혈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희번덕거리는 눈은 마차바퀴보다도 훨씬 컸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 마차바퀴의 직경은 넉 자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놈의 눈은 직경이 무려 일 장 가량이나 되었다.

이미 놈을 본 경험이 있었지만 반광노조 역시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장일정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허억! 노, 노인장, 어서 미끼를…"
"아, 알았네. 잠시만… 에이, 왜 이렇게 안 껴져?"

"아이, 너무 서둘지 마시고 천천히 하세요.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잖아요. 천천히. 아아아앗!"
"앗! 접매, 어서 피해! 에잇!"

일행이 있는 곳은 수면으로부터 적어도 오 장 정도는 떨어진 곳이다. 만년뇌혈곤이 제아무리 괴물이라 할지라도 물고기인 이상 육지로 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비명을 질렀지만 그것은 놀람의 의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말을 하던 호옥접이 비명을 지른 것은 너무도 놀라운 현상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오 장이나 떨어진 곳에 있던 호옥접의 신형이 지남철에 쇠가 끌려가듯 그렇게 끌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반광노조나 장일정이라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둘은 호옥접에 비하여 체중이 더 나갔기에 상대적으로 덜 느낀 것뿐이다. 아무튼 놀란 장일정은 황급히 호옥접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곁에 있던 바위를 잡고 버텼다.

"아아악! 살려줘. 놓지마, 놓으면 안 돼!"
"알았어. 절대로 놓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

호옥접은 강풍에 휘말린 가랑잎처럼 신형이 둥실 떠오르자 대경실색하며 필사적으로 장일정이 팔을 껴안았다.

만년뇌혈곤은 새가 아니다. 따라서 허공에 마냥 떠있을 수는 없다. 하여 수면 아래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빨아들이던 힘이 소멸되자 호옥접은 황급히 장일정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흐흐흑! 무서워. 흐흑!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고."
"알아! 알고 있어. 그러니 이제 그만 울어. 여기 이렇게 있다가 놈이 또 올라오면 위험하니 접매는 물러서 있어. 알았지?"

"흐흑! 아, 알았어."
"아앗! 놈이 또 올라온다! 어서 피햇!"

연못의 물이 들썩이는가 싶더니 만년뇌혈곤이 또 다시 솟아 올랐다. 이번엔 조금 전보다도 훨씬 더 가까운 곳이었다.

놀란 장일정은 황급히 호옥접의 신형을 밀어냈다. 이때였다!

경황 중이었지만 장일정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다급한 순간이었지만 손끝으로 뭉클한 느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호옥접도 마찬가지였다. 공교롭게도 장일정의 손이 부푼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아앗!"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곧 이은 반광노조의 비명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아앗! 살려줘! 아아아아악!"

평상시에 잘되던 것도 서두르면 안 되는 법이다. 반광노조는 평생동안 낚시 바늘에 미끼를 끼우며 살았다. 따라서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 하더라도 실수 없이 미끼를 끼울 수 있다. 그런데 화관홍선사의 내단은 좀처럼 끼워지지 않고 있었다.

미끼는 제대로 끼워지지 않으면 속절없이 따먹히고 만다. 그래서 정 중앙에 끼우려고 하였으나 워낙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여 허둥대는 동안 만년뇌혈곤의 아가리가 열렸고 동시에 거센 폭풍우가 몰아닥치기라도 하였는지 신형이 둥실 떠올랐다.

당연히 다급성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빨려들고 있었다. 이것을 본 장일정 역시 다급성을 터뜨리며 황급히 손을 뻗어 반광노조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 순간 그의 신형 역시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는 반광노조의 뒤를 이어 만년뇌혈곤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아앗! 노인장! 노인장! 아아아앗!"
"아아아악! 상공, 상공! 아아악! 안 돼!"

장일정이 밀어냈기에 흡인력의 범위 밖에 있던 호옥접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비명을 질렀다. 이때였다.

"이걸 잡아."
"아앗! 노인장! 노인장!"

반광노조가 손에 들고 있던 조룡간을 던지자 장일정은 얼떨결에 이것을 받아들었다. 동시에 만년뇌혈곤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들던 장일정의 신형이 허공에서 멈추는가 싶더니 뒤로 밀렸다.

조룡간이 바위와 바위 사이에 걸리는 바람에 멈춘 것이고, 빨려들던 탄성 때문에 휘청인 것이다.

이때였다!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반광노조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장일정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신형은 괴물의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서, 어서 낚싯대를… 아아아아악!"

만년뇌혈곤이 물 속으로 떨어져 내리자 흡인력이 즉각 사라졌다. 동시에 둘은 연못을 향하여 전력을 다하여 달려갔다.

"노인장! 노인장!"
"할아버지! 아악, 할아버지!"

실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너무도 놀란 둘은 말도 하지 못하고 출렁이는 수면만 바라볼 뿐이었다.

"흐흑! 할아버지. 흐흐흑!"

감성적인 호옥접이 눈물을 흩뿌리는 동안 장일정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광노조가 없다면 천뢰도를 떠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가 화관홍선사의 내단을 가지고 있었기에 만년뇌혈곤을 잡을 방법 또한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제 천둥 번개가 난무하는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렇기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였다. 여전히 바위 사이에 걸쳐져 있던 조룡간이 급작스럽게 출렁이는가 싶더니 물 속으로 빨려가기 시작하였다.

"아앗! 상공. 낚싯대가… 낚싯대가… 어서…!"
"허억! 야아압!"

"접매, 어서 내 허리를 잡아! 어서! 아아악!"
"아앗, 상공!"

황급히 조룡간을 집어든 장일정은 발을 바위 사이에 끼우며 버텼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나직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조룡간이 더 이상 휘어질 수 없을 정도로 휘어지면서 발목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이때 호옥접은 황급히 그의 허리를 부여 안았다. 동시에 불룩한 가슴이 탄탄한 등과 밀착되면서 찌그러졌지만 지금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괴물의 먹이가 될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아아악! 아악!"
"사, 상공!"

"저, 접매! 날 놓고 여기 이걸… 어서 묶어! 어서!"
"……?"

"여기, 낚싯대 밑에 이걸 어서 저 바위에 묶어. 어서!"
"아, 알았어."

장일정이 가리킨 것은 조룡간을 바위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묶어 둔 고래 힘줄이다. 반광노조는 여섯 가닥을 꼬아 만들었기에 장정 삼백이 달려들어도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호옥접이 고래 힘줄을 꼬아 만든 그것을 바위에 휘감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일수유였다. 남은 것은 이게 그것을 매듭지어 풀리지 않게 하는 일만 남았을 때였다.

"으으윽! 어서! 어서 으으으윽!"
"아, 알았어. 조금만, 조금만!"

피이잉! 우지직―! 피핑―!
"으아아아아아악!"
"허억! 상공, 상공!"

호옥접이 매듭을 지으려는 순간 바위 사이에 걸쳐져 있던 조룡간이 힘없이 부러졌다. 동시에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고래 힘줄을 잡아 당겼다.

호옥접으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 따라서 줄은 그녀의 손을 떠났고 동시에 바위를 휘감고 있던 줄이 풀어짐과 동시에 장일정의 신형이 쏜살처럼 물 속으로 끌려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허어어억! 으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악! 상공, 상공! 안 돼! 아아아아악!"

조룡간이 부러졌을 때 장일정은 깜짝 놀라면서 손을 놓았다. 이때 얼른 피했으면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놀라면 굳기 마련이다. 깜짝 놀란 장일정이 순간적으로 굳어 있는 사이 팽팽하게 감겨 있던 줄이 풀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바위 사이에 끼어 있던 발목에 줄이 휘감겼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연못으로 끌려간 것이다.

"아악! 안 돼! 안 돼! 으아아악! 꼬르르륵!"
"아악! 상공, 안 돼! 상공! 어어헝! 어어어엉!"

황급히 연못가로 다가간 호옥접은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거기엔 장일정이 안 끌려가려고 저항한 흔적이 있었다. 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 손가락자국만 길게 나 있었던 것이다.

"흐흐흑! 흐흐흐흑! 상공! 상공!"

희대의 괴물인 만년뇌혈곤을 잡아 북명신단을 만들려던 애초의 희망은 모두 깨졌다. 미끼로 쓸 화관홍선사의 내단을 잃었다.뿐만 아니라 반광노조와 장일정이 한낱 먹이가 되어 버렸다.

넋이 나간 호옥접의 구슬픈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잠시 후 천뢰도에는 이들 둘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호옥접은 망부석이라도 된 듯 꼼짝도 앉고 흐느끼기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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