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60

등록 2003.04.09 18:03수정 2003.04.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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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이 급히 진속에게 말했지만 이미 말갈기병은 통제밖에 있었다. 장막은 어떻게든 버텨주면 된다는 심정으로 보병의 진열을 정비하고 다가오는 고구려군을 맞이했다.

"저게 뭐냐?"


천천히 전진해오는 고구려군을 보며 한군(漢軍)의 선두열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고구려군의 선두에는 전신을 미늘갑옷과 마갑으로 덮은 채 주몽, 재사, 오이, 마리, 협부, 무골, 부위염이 포함 된 10기의 중장기병이 보병의 엄호를 받으며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따로 싣고 온 중장기병의 장비가 드디어 고구려에서는 처음으로 전투에 투입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 수는 적었지만 병사들의 사기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났기에 진속은 허둥대며 명령을 내렸다.

"저런 것을 가지고 있었다니! 어서 기병을 상대할 진형으로 바꾸고 갈고리 창을 가지고 오라!"

그러나 이미 코앞까지 전진해온 고구려군은 돌격명령과 함께 엄청난 기세로 한군(漢軍)의 진지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특히 맹렬히 돌진해 오는 중장기병의 기세는 무서운 것이어서 이에 부딪힌 병사들은 가랑잎이 바람에 쓸려가듯 했다. 중장기병의 돌진으로 대열이 흩어진 한군(漢軍)을 고구려 보병대는 마구잡이로 도륙해 갔다. 진속이 가장 경험 많은 병사들로 선두열을 구성했기 때문에 고구려군과의 첫 충돌에서 와해되어 버리자 뒷 열은 물론 전 진지에까지 공포심이 확산되어 한군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어찌된 셈인지 고구려군은 이를 뒤쫓지 않고 열을 정돈하며 궁수대를 준비하고 있었고 중장기병은 선두를 보병에게 내어주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곧이어 고구려 기병을 뒤쫓던 말갈기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쏴라!"

이미 보병이 밀집된 대형으로 창을 겨누고 있어서 기병돌파는 애초부터 무리인 데다가 고구려 기병을 뒤쫓느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말갈기병은 도망치는 한군과 함께 뒤섞여 화살에 맞아 마구 쓰러졌다. 말갈기병마저도 대오를 이탈하여 도주하자 그때까지 말갈기병에게 쫓기고 있던 부분노가 이끄는 기병이 추격을 개시했다.


주몽의 작전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고구려군은 기병의 수가 적기 때문에 정면 충돌에서는 옆을 공격당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 뜻하지 않은 말갈기병이 한군(漢軍)의 편재 속에 온전히 융화되어 있지 않음을 안 주몽은 먼저 말갈기병을 유인하여 보병이 결판을 낼 수 있을 때까지 전선에서 이탈시키려 한 것이었다. 물론 신속함을 위해 사용을 꺼려하던 중장기병을 보병과 함께 과감히 전면에 배치한 것도 맞아떨어져 가고 있었다.

진속은 첫 충돌에서 병사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장막과 함께 일찌감치 군사들을 포기하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적의 의도에 넘어갔으며 뜻하지 않은 중장기병의 등장은 병사들에게 공포심을 선사하고 있었기에 이미 전투의 승패가 결정 났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진속의 뒤에는 불과 수 십 명의 병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로서 오녀산성의 주위에서 벌어진 7일간의 전투는 막을 내렸다.


하루종일 말도 없이 달려가 전장을 빠져나간 진속은 숨을 고를 만한 장소를 찾아 불을 피우고 휴식을 취했다. 그 때 말탄 이 서넛이 다가오는 통에 진속은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그들은 낙오된 듯이 보이는 말갈족이었다. 그들은 진속을 보더니 대뜸 약속된 대가 중 남은 것을 모두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이 녀석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 놈들 때문에 전투에서 패하고 이 꼴이 되었는데 남은 대가를 지불하라고? 오히려 네 놈들이 먹은 것을 토해놓아야 할 판이다!"

말갈족들은 진속의 대답을 듣자 말머리를 돌려 돌아갔다. 진속은 그들의 뒤통수에다 대고 욕설을 마구 내뱉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말갈족들은 수 백 명의 자기 일행을 이끌고 진속과 장막이 거느린 패잔병들을 포위해 버렸다. 그들은 애원도 해보고 무모한 저항도 해보는 패잔병을 무자비하게 짓이기고선 시체가 남긴 옷가지와 무기들을 챙긴 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 자리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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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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