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곤
이렇듯 죽음은 다 같은 생물학적 현상이지만 또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죽음은 철이 들고나서부터 흔하게 접하는 소식이기도 하고 살아가면서 점점 친숙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되돌아보는 삶과 죽음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물의 죽음'은 이러한 죽음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죽음의 범주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죽음에서부터 일본에 있다는 한 연꽃의 죽음까지, 인간의 몸에 있는 60조개나 되는 세포의 죽음에서 태양과 은하계, 그리고 우주의 죽음까지 확장되어 그야말로 만물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따라 가다보면 죽음이라는 것, 아니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상식과 문화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고 자연계에서 특이한 행위인지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자연은 언제나 삶과 죽음이 섞이고 같이하며 구분되지 않는데 반해 인간만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긋고, 그으려 노력하는 가운데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 이 책은 사람이 아닌 다른 종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를 들어 식물에게 있어서 잎이 시들었을 때가 죽은 것인지, 뿌리가 썩었을 때, 혹은 광합성을 멈추었을 때가 죽은 것인지 모호하다는 부분은 뇌사와 안락사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마찬가지로 접붙이기, 꺾꽂이 등은 그동안 인간이 무수한 복제를 자행해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죽음을 알고, 바로 보는 일은 인생을 허무하고 가볍게 하기보다는 우리 삶의 존엄을 느끼게 하고 경이로움 속에 겸손해지게 한다. 우리는 60조개나 되는 세포들의 죽음을 통해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죽지 않는 세포가 암이 되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역설이 그렇고 4만년이나 살았다는 조룡나무가 그러하며 히로시마 원폭에도 살아남았다는 평화공원의 벽오동 고목이 그렇다.
어쨌든 이 세상은 누군가의 죽음, 어떤 무엇의 죽음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그로 인해 유지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죽음이 어떤 식으로 이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일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또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인간은 대지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는 싯구와 같은 굳건한 연대의식도 필요하겠지만 모든 죽음을 그저 슬퍼만 할 일은 아니라는 경지에도 잠깐이나마 발을 담그는 여유도 좋을 듯 한다.
만물의 죽음
오바라 히데오 엮음, 신영준 엮어옮김,
아카데미서적, 1997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억과 기록에 관심이 많다. 함께 쓴 책으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여기 사람이 있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재난을 묻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이 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