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군의학교 제14기 졸업 기념, 맨 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우리 아버지. 사진 뒷면에는 "오십육일 고생은 내일의 영광"이라는 글씨와 함께 "마산아 다시 보자, 저 멀리 전선으로" 라는 아버지 친필이 적혀 있다.이종찬
"오늘 산소에 나무 좀 심을라고 농장에 갔더만 나무가 하나도 없어. 지난 주에만 해도 동이감나무 묘목이 제법 있었는데..."
"아니, 그렇게 나무가 없어요?"
"단감나무하고 매실나무 같은 것만 잔뜩 있더라니깐"
"내년에는 아예 1-2주 전에 미리 사 두어야 하겠네요"
"동이감나무도 좋지만 잣나무도 괜찮아요"
지난 일요일, 한식날에는 형제들과 함께 창원 동읍 석산리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갔다. 형님의 계획으로는 한식날에 맞추어 한창 돋아나는 쑥과 잡풀도 제거하고, 그 참에 과실수 몇 그루도 심으려고 했던 것 같았다. 우리가 어릴적 많이 따먹었던, 굵직한 감이 달리는 그 동이감나무(둥시)를 말이다.
나 역시 기왕 부모님 산소 주변에 나무를 심으려면 요즈음 흔한 그런 나무보다는 우리 형제들의 어릴 적 추억이 담겨 있는 동이감나무와 같은 그런 나무가 훨씬 정겨울 것만 같았다. 그랬다. 지금 부모님의 모습은 비록 볼록한 무덤으로 이렇게 남아 있지만 우리들 기억 속의 부모님은 늘 살아 움직이고 있지 아니한가.
주남저수지가 바라다 보이는 어머니 산소, 아니, 이제는 지난 해 가을에 돌아가신 아버지마저 어머니 곁에 나란히 묻혔으니, 이제는 부모님 산소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입버릇처럼 어머니 산소라고 부르고 있으니,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