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려유허비 옆 영정각에 봉안되어 있는 조광조의 영정.오창석
학포는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신잠, 김구, 최산두 등을 방문하여 의리를 다하였고 그 후에는 정암의 시신을 숨겼던 중조산 아래 학포당(學圃堂)을 짓고 25년 동안 은거하며 경론의 탐구와 서화(書畵)에 몰두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특히 그가 그린 묵죽도는 후세에 안견의 화풍을 계승한 대표적인 문인화로 평가되었고, 산수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산수도에는 “고깃배야 오고 가지 마라. 행여 세상과 통할까 두렵노라’라는 오언시(五言詩)가 씌어 있는데 의롭지 못한 세상과 단절한 그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정암은 일찍이 그를 두고 “학포와 얘기하면 마치 지초나 난초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다. 비 개인 뒤의 가을 하늘이요, 얕은 구름이 걷힌 뒤의 밝은 달이라. 세속의 욕망이 깨끗하게 없어져 버린 사람이다”고 하였다.
학포는 정암과 함께 사액서원인 전남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의 죽수서원(竹樹書院)과 경기도 용인 수지면 상현리의 심곡서원(深谷書院)에 배향(配享)되었는데, 그 중 심곡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페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정암의 적려유허비(謫廬遺墟碑)가 있는 능주면 남정리는 광주에서 40분 거리이고 죽수서원, 학포당은 그곳에서 승용차로 30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인근에는 학포당이 있는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서 5분 거리에 쌍봉사가 있다.
학포 선생이 어려서 공부를 했다는 이 쌍봉사는 신라 경문왕 시기에 지어졌다는데 1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건축양식이 특이한 아름다운 고찰이다. 여기에는 신라 최고의 부도로 일컬어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걸작품인 쌍봉사철감선사탑(부도)과 탑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