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62

등록 2003.04.11 17:41수정 2003.04.1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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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길

오녀산성에서 골령으로의 수도 이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더구나 주몽의 고구려군이 한나라 군사들을 물리쳤다는 소문은 널리 퍼져 좀 더 안정된 체제를 원하는 백성들의 유입이 늘어나 고구려의 호구수는 날로 늘어갔고 그로 인해 국력도 강해졌다.


주몽은 묵거의 죽음으로 빈 태대형의 자리에 오이를 제수하고 부분노에게 태대사자와 계로부의 욕살을 겸하게 했다. 더불어 그간 계로부에만 집중되었던 인재등용의 폭을 넓혀서 사람을 골고루 뽑아 쓰기 위해 신경을 썼다. 이로 인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등용된 이가 문장에 능한 을소와 소년장사로 일찍이 이름을 알린 괴유였다.

골령의 왕성이 다 지어지고 추수가 끝난 가을 날, 주몽은 신하, 백성들과 더불어 낙성식을 거행했다. 을소는 새로운 수도를 기념하는 시를 지어 주몽에게 올렸다.

"검은 까마귀 무리 지어 우리성제 구하시고, 흰 빛 백성들 모여서 새 성지 만들었네." (黑烏群集 救援聖帝 白民雲集 聖地降製)

일찍이 주몽이 대소왕자로 인해 나무에 묶여 호랑에게 화를 당할 뻔했을 때 까마귀 떼로 인하여 위기를 모면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를 새로운 수도에 성곽과 궁궐을 지은 일과 대조한 것이었다. 동시에 왕과 백성을 동시에 칭송하는 시이기도 했다. 주몽은 유쾌하게 웃으며 을소를 칭찬해 마지 않았고 신하들도 서로 그 시를 돌려 베끼기에 바빴다.

이어서 누구나 나와 자신의 힘 자랑을 할 수 있는 씨름판이 벌어졌다. 이 당시의 씨름은 서로 떨어진 상태에서 맞붙어 힘과 기술로 상대를 쓰러트리면 이기는 방식이었다. 먼저 협부가 나서 연거푸 세명을 가볍게 쓰러트리자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지켜보고만 있던 무골이 웃통을 벗으며 예전의 일을 상기시켰다.


"형님, 전에 내게 진일을 기억하시오?"

"야 이놈아 형님이라니 우리가 무슨 산골 산적 떼냐? 대 고구려 발위사자 협부 님이라고 불러라!"


무골이 씩 웃으며 협부와 손을 끼고 힘을 겨루었다. 협부는 예전에 무골이 쓴 수법으로 이길 양으로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힘을 풀었다가 앞으로 끌어당겨 승부를 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무골은 협부가 힘을 푼 그 짧은 순간에 힘껏 밀어붙여 협부가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다.

"야! 이런 또 당하고 말았네."

협부가 툴툴거리며 일어선 후 무골은 다음 도전을 기다리며 당당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괴유가 앞으로 나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며 무골에게 대결을 청해왔다.

"아, 그렇게 예의를 차릴 거 없네. 내가 이길 테니깐."

무골은 힘을 겨룰 양으로 두 발에 힘을 주고 힘껏 괴유에게 양팔을 내밀었다. 괴유는 이를 슬쩍 피하더니 무골의 팔을 잡고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당겨 중심을 흩뜨린 후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무골은 자기가 어떤 기술에 넘어졌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이야! 이거 어린 나이치곤 대단한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무골이 감탄사를 늘어놓자 협부가 뚱한 표정으로 다시 앞에 나섰다.

"무골을 이겼다고 나를 이긴다는 것은 아니지. 나와 겨루어 보자."

괴유는 역시 공손히 예를 취한 후 협부를 상대했다. 협부가 양손을 쫙 펼쳐 잡으려 했지만 괴유는 이를 가볍게 피한 채 양손바닥을 쫙 펼쳐 협부를 밀었다. 그 바람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협부를 괴유는 잡아서 메다 꽂았다. 협부는 무골보다 더 꼴사납게 바닥에 눕혀졌다. 협부는 벌떡 일어나 툴툴거리기는커녕 괴유를 칭찬했다.

"젊은 친구가 대단하구만! 오히려 내가 한 수 배워야겠어!"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주몽은 기분이 유쾌해져 술잔을 높이 들며 말했다.

"이렇듯 젊은이들의 재주가 뛰어나니 고구려의 앞이 밝도다. 묵거도 이를 더불어 즐기면 좋았을 것을…."

묵거를 언급하며 주몽의 얼굴에 언뜻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본 월군녀는 악대에게 크게 풍악을 울리도록 지시했다. 왕성 아래서 고구려의 귀족, 평민이 모두 어우러져 밤늦게 까지 먹고 마시고 즐기며 낙성식은 성대히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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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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