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08

이름에 얽힌 비밀 (3)

등록 2003.04.17 10:33수정 2003.04.1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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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역시…"

노인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이 기분 좋은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노,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허허! 노부가 누구냐고?"

"예!"
"노부는 바람이고, 노부는 구름이며, 노부는 비일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현묘한 이치를 담고 있는 불가(佛家)의 선문답(禪問答)같은 노인의 말에 이회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래 전에 말일세. 그러니까 세상이 열릴 때였네. 해동 땅에 한 분의 신인이 내려오셨네. 상제(上帝)이신 환인천제(桓因天帝)의 아드님이신 환웅천황(桓雄天皇)이셨네."
"화, 환웅천황이요?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데…?"

"허허! 더 들어 보게. 그분은 분국(分國)을 허가받았다는 증표로 천부삼인(天符三印)을 가져오셨네. 그분의 곁에는 삼사(三師)이신 풍백(風伯)과 우사(雨師), 그리고 운사(雲師)가 계셨고, 삼천에 달하는 제세핵랑군(濟世核郞軍)도 따르고 있었네. 또한…"


노인의 설명은 이어지고 있었고 이회옥은 처음 듣는 옛날 이야기에 흠뻑 빠지기라도 했는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노인이 말한 천부삼인은 거울과 북, 그리고 검이었다.


거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의 뜻과 이치를 담은 천부경(天符經)을 새긴 거울을 쳐다보고 자기 양심을 비추도록 함으로써 자기성찰 즉, 반성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북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아 이들을 교화(敎化)시키려 할 때 활용되었고, 하늘에 제(祭)를 올릴 때 사용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검은 정의를 구현하는 법(法)을 지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치화(治化)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이었다.

삼사 가운데 풍백은 입법(立法)을 담당하는데, 축일(丑日)에 개머리를 곡문(谷門) 밖에 걸어놓고 제사를 지내는 우두머리였다. 이름은 석제라(釋提羅)라고 하였다.

우사는 행정(行政)을 담당했는데 입하(立夏) 후 신일(申日)에 돼지머리를 놓고 제사지내는 우두머리였다. 이름은 왕금영(王錦營)이라 하였다. 운사는 사법(司法)을 담당했는데 그의 이름은 육약비(陸若飛)라 하였다.

노인의 설명은 끝이 없을 듯하였다. 어느새 여명이 밝았고, 잠시 후에는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는 어느 민가에서 밥이라도 짓는지 연기 냄새가 났다.

이때까지도 이어지는 노인의 말에 이회옥은 혼이라도 빼앗겼는지 꼼짝도 않고 듣고만 있었다.

"흐음! 그래서 보장왕(寶藏王)이 고구려의 마지막 왕이 되고 만 것이네. 그때 당나라에서는 무려 이십만이나 되는 고구려 사람들을 중원으로 끌고 갔네. 그냥 두었다가는 또 다시 세력을 확장할까 싶었던 것이지."

"……!"
"그만큼 강맹한 국가였고 잠재력 또한 대단한 나라였거든."

이 말을 할 때 노인의 눈에서는 묘한 빛이 발하였다. 그것은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을 의미하였지만 이회옥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은 중원이고, 해동에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 중원인에게 있어 조선은 이국(異國)일 뿐이다. 그렇기에 노인이 왜 눈빛을 빛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고구려 유민이라 불렀네. 그들이 한 군데 뭉쳐 있으면 위험하다 생각하고는 철저하게 분산 정책을 펼쳤네. 그 결과 중원 곳곳에 고구려 유민들이 있는 것이네."
"……?"

"헌데, 자네는 신라방(新羅坊)이 무엇인지는 아는가?"
"신라방이라니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허허! 하긴… 자네는 모를만도 하지. 좋으네, 노부의 말을 좀더 들어 보게. 신라방이란…"

노인의 설명은 또 이어졌다.

고구려가 망한 뒤 해동 땅을 관장한 통일신라와 당(唐)과의 교역은 공무역(公貿易)보다는 사(私)무역이 크게 성행하였다.

그래서 당나라의 도읍지인 장안(長安)을 비롯하여 산동성(山東省) 등주현(登州縣) 유산포(乳山浦)와 문등현(文登縣) 청녕향(淸寧鄕) 적산포(赤山浦), 그리고 회수(淮水) 유역의 내륙지방 곳곳에 신라인들 상당수가 거주하게 되었다.

때문에 신라에서 온 유학생, 사신, 무역 상인의 잦은 내왕으로 초주(楚州), 연수(蓮水), 양주(揚州), 적산(赤山) 등지에는 신라방(新羅坊 :신라인의 거류지)과 신라소(新羅所 :신라인을 관할하는 행정기관)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신라인들의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사찰인 신라원(新羅院)이 있었고, 신라관(新羅館 :유숙소)도 설치되었다.

노인의 말인 즉슨 중원에는 고구려 유민 이외에도 신라에 흡수된 백제인들과 신라 사람들 상당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가 중천에 솟았을 무렵 배고픔을 참으면서도 끈기 있게 이야기를 들어 주던 이회옥은 결국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장, 말씀을 끊어 죄송합니다만 대체 소생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는지요?"
"허어! 성질도 급하긴 좀더 이야기를 들어보게."
"……!"

이회옥은 노인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부친인 이정기가 가르치기를 노인을 공경(恭敬)할 줄 알아야 사람된 도리를 할 수 있다면서 가급적 연장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자네, 고구려가 어디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그 영토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 줄은 아는가?"
"예? 중원 사람인 소생이 그걸 어찌…"

이회옥이 대답을 못하자 노인의 가뜩이나 주름 많던 얼굴에 더욱 많은 주름이 생겼다. 아마도 웃는 모양이었다.

"음! 그냥 말로해서는 믿어지지 않을 터이니 문헌을 인용하겠네. 잘 들어 두게. 알겠는가?"
"예? 아, 예에…"

"당나라 때 만들어진 당서(唐書)를 보면 고구려는 본시 부여의 별종으로 동쪽으로 바다와 면해 있는 신라가 있고, 남쪽 역시 바다와 면해 있는 백제가 있다고 되어 있네. (高句麗本扶餘別種也 地東跨海距新羅 南亦跨海距百濟)"
"……?"

"그리고 서북으로는 요수를 건너 영주에 접하고 있다고 되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말갈이 있고, 고구려왕이 살고 있던 곳은 평양성인데, 장안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되어 있네. (西北度遼水與營州接 北靺鞨 其君居平壤城 亦謂長安城)"

이회옥은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노인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 일백구십육 당태종(唐太宗) 정관(貞觀) 십오 년의 기록에는 고구려가 있던 곳은 본래 사군(四郡)의 땅이라고 되어있네."

"사군이요? 중원 한복판에 있던 낙랑(樂浪), 현도(玄 ), 임둔(臨屯), 진번(眞番)을 말하는 것인가요?"
"허허! 잘 아는구먼. 그뿐인 줄 아는가? 자치통감 권 이백 당기(唐紀) 십칠 고종(高宗) 이치(李治) 용삭(龍朔) 이 년에는 고려백제하북지민(高麗百濟河北之民)이라고 되어 있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허! 글자 그대로 이네. 고구려와 백제가 지금의 황도가 있는 하북성(河北省)에 있었다는 뜻이지."

"예에? 그럴 리가요? 그것들은 해동 땅에 있는 나라잖아요?"
"허허!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잘 듣게. 고구려는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망하기 십팔 년 전만 하더라도, 서역(西域)과 남만(南蠻) 북쪽 서경(西京), 그리고 섬서성(陝西省)을 기점으로 하여 신강성(新疆省), 청해성(靑海省), 감숙성(甘肅省), 산서성(山西省), 사천성(四川省) 일부와 하북성(河北省), 길림성(吉林省), 몽고의 남부 일대를 모두 장악하고 있었네."

"에이, 말도 안 돼요. 그렇다면 중원 대부분이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말씀이십니까?"
"허허! 믿어지지 않지? 하지만 잘 들어 보게. 개국마한왕검성 금서경지「대동부」와 고구려현명제왕음기,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고도(古都)는 요동군 낙양 삼천육백 리요, 현도군 낙양 동북 사천 리라고 기록되어 있네."

"으음!"
"이 같은 사실을 정리해보면 중원 동부와 서역 일부, 그리고 몽고와 해동 땅 모두가 고구려의 영토였음이 분명하네."
"으음!"

이회옥은 노인의 말에 침음성만 삼켰다. 지금껏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고, 말로만 듣던 고구려가 얼마나 강성했던 나라인지를 알게 되어서였다.

사실 태극목장이 있던 대흥안령산맥 인근에는 버려진 성들이 많이 있었다. 각 성마다 명칭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들 모두를 고구려성 혹은 고려성이라고 통칭(統稱)했다.

그때는 그것이 별 의미가 없이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적어도 고구려의 영토가 드넓다 못해 광활(廣闊)하기까지 한 대흥안령산맥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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