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그 가시나 좋아하제?"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69> 장다리꽃

등록 2003.04.17 12:34수정 2003.04.1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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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현기증이 이는 배추 장다리꽃
노오란 현기증이 이는 배추 장다리꽃우리꽃 자생화
"빛나야, 노오란 이 꽃이 무슨 꽃이라고 했지?"
"개나리꽃"
"노란 꽃은 모두 개나리꽃이니?"
"그럼 유채꽃?"
"그래. 그 평지꽃과는 친척이라고도 할 수 있지"
"평지꽃? 평지꽃은 또 뭐야?"


내가 살고 있는 주택가 빈 터 곳곳에도 배추꽃과 무꽃이 회초리 같이 훌쭉한 장다리를 마구 밀어올리며 예쁜 꽃망울을 매달고 있다. 그래. 작은 딸 빛나의 말처럼 배추꽃과 평지꽃은 언뜻 보기에는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둘 다 긴 장다리에 노란꽃을 매달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에 닿아 있는 잎사귀와 꽃대를 살펴보면 쉬이 구분할 수가 있다. 배추꽃은 꽃대가 굵고 비교적 짧으며, 꽃대를 뽑아올린 자리에는 말 그대로 주름이 많이 진 작은 배추 잎사귀가 붙어 있다. 하지만 평지꽃은 그 잎사귀가 가늘고 길며, 꽃대 또한 배추 장다리보다 가늘고 길다.

그래. 기왕 평지꽃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니 제주 출신 작가 한림화가 4.3 항쟁을 주제로 쓴 <한라산의 노을>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이 유채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내가 읽었던 기억으로는 제주사람들은 예로부터 유채꽃을 평지꽃 또는 평지나물꽃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내 기억이 아직까지도 정확하다면 그 평지꽃 혹은 평지나물꽃의 이름이 유채꽃으로 바뀌게 된 것은 일제에 의해서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왜인들이 모자라는 기름을 충당하기 위해서 실제 이 꽃으로 기름을 짜게 했고, 그때부터 왜인들은 이 꽃을 기름을 짜는 채소라 하여 '유채' 라고 불렀다고 읽은 것같다.

그때부터 나 또한 그 노오란 꽃을 평지꽃 혹은 평지나물꽃이라고 불렀다. 또 내 주변 사람들이 그 꽃을 유채꽃이라고 부르면 기를 쓰고서라도 그렇게 부르지 못하게 말렸다. 왜냐하면 일제가 지어낸 유채, 라는 그 말보다도 훨씬 정감이 가는, 평지꽃, 평지나물꽃이라는 순수한 우리 말이 있기 때문이다.


"저 꽃은 평지꽃이 아니고 장다리꽃이야. 노랗게 피어난 저 꽃은 배추 장다리꽃이고, 그 곁에 연보랏빛으로 피어난 십자꽃은 무 장다리꽃이야"
"근데 왜 장다리꽃이라고 불러?"
"둘 다 자신의 몸 속에서 저렇게 긴 다리를 뽑아올린 뒤에 예쁜 꽃망울을 매달잖아"
"아빠, 그럼 저 꽃들은 긴다리꽃이네"

그래. 저 장다리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어린 날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노오란 배추장다리 꽃밭 위에서는, 무수한 별들이 노랗게 반짝이던 어지러운 기억이... 그리고 연보랏빛 무장다리 꽃밭 위에서는 얼굴 곳곳에 하얗게 피어오르던 버짐의 그 간질거리던 기억이...


내가 어릴 적, 그러니까 배추와 무 장다리꽃들이 다랑이밭에서 무더기로 피어날 때면 우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랑이밭으로 들어가 그 예쁜 장다리꽃을 한웅큼씩 꺾었다. 하지만 그 꽃들이 너무나 예뻐서, 혹은 집으로 가져가서 아버지께서 비워둔 소줏병에 그 꽃을 예쁘게 꽂아두기 위해서 꺾은 것은 아니었다.

한 끼도 빠뜨리지 않고 늘 배불리 꽁보리밥을 먹었는데도 금방 또 입속이 허전해지기만 했던 봄날, 눈깔사탕 하나 사 먹을 돈조차 없었던 우리들은 그 허전한 입속을 무언가로 채워야만 했다. 앞산가새에 올라가 혓바닥이 발개지도록 진달래를 마구 따먹어도 그 허전함은 달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당시 우리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얼굴에 희부연 버짐 몇 개를 달고 다녔다. 또 심심할 때면 들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땅 따먹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만 하면 갑자기 어지럼증이 일면서 눈 앞에 노오란 별들이 수없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랬다. 우리들은 그 배추와 무 장다리꽃을 먹기 위해서 꺾었다. 그렇다고 예쁜 꽃을 매달고 있는 그 장다리를 무조건 꺾는 게 아니었다. 배추와 무 장다리 중에서도 꽃대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그런 장다리를 꺾었다. 또 살이 통통하게 찐 그 장다리는 얇고 길게 솟아난 장다리처럼 꽃이 많이 달리지도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배추와 무 장다리를 손아귀 가득 꺾은 우리들은 앞산가새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넓찍한 공동묘지 근처로 향했다. 그 공동묘지에서 조금 떨어진 산마루에는 벌초가 아주 잘 된 두 개의 제법 큰 무덤이 있었다. 그 무덤 앞에는 음식을 차려놓기 좋게 만든 돌상이 하나 있었다.

연보랏빛으로 피어나는 무 장다리꽃
연보랏빛으로 피어나는 무 장다리꽃우리꽃 자생화
그 돌상 주변은 우리들에게 더없이 좋은 휴식처이자 놀이터였다. 우리들은 소를 먹이러 올 때나 소풀을 베러 올 때면 당연하다는 듯이 그 돌상에 앉아 쉬었다. 또 머스마들은 잔디가 잘 깔려 있는 그 돌상을 중심으로 닭싸움과 발씨름을 하면서 놀았다. 하지만 가시나들은 여기 저기 파랗게 돋아난 토끼풀을 헤집으며 네잎 크로바를 찾았다.

"아~ 퇘! 퇘! 머슨 장다리가 이러캐도 맵노?"
"그라이 무 장다리로 말라(뭐하러) 꺾노?"
"그 가시나 그거 장딴지 맨치로 살이 통통하게 찐 기, 진짜로 맛있게 보이더라카이"
"니 그 가시나 좋아하제?"
"아이다. 그 가시나 그기 낼로 좋아할란가는 몰라도 내는 아이다"

그랬다. 무 장다리는 잘못 고르면 몹시 매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배추 장다리는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면 상큼한 배추내음이 나면서 제법 달착지근했다. 우리들은 그 돌상 위에 저마다 꺾어온 장다리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연초록빛 물기가 감도는 그 장다리 속내를 입에 넣기에 바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간혹 헛구역질이 올라오기도 했다.

"저 넘의 손들이"
"앵금통이다, 어서 튀어!"

그랬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 예쁜 장다리꽃이 지고 열매가 맺으면 무씨와 배추씨를 받았다. 그리고 그 씨앗을 햇살에 잘 말린 뒤 그 장다리꽃을 베어내고 갈아엎은 그 자리에 다시 뿌렸다. 그러면 어느새 파아란 무싹과 배추싹이 돋아났다. 그래. 그래서 그때 그 앵금통이란 택호가 붙은 그 어르신은 우리들을 그렇게 쫓아다녔는가 보다.

"아빠! 나도 한번 먹어볼래"
"그래. 빛나가 먹기에는 약간 메스꺼울 텐데"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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