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나마 북녘 땅을 밟아 보았습니다

한국적 온라인 게임 거상을 추천하며

등록 2003.04.17 18:11수정 2003.04.17 19:36
0
원고료로 응원
얼마 전 후배 방에 놀러갔다가 후배의 통화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 중강진에 있어 중강진으로 와. 어. 어 알았어 내가 혜산 쪽으로 갈께"라는 것이 후배와 그 친구의 통화 내용이었습니다.

중강진이나 혜산이라는 지명을 지리 시간에 배우긴 했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어느 쪽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저에게 중강진으로 오라는 후배의 통화는 무척 신기한 것이었습니다.

"뭐나 뭔데 혜산으로 가? 너 월북하려고?"
장난 반 농담 반으로 후배에게 물었습니다.

"형이 이리 와서 봐"
후배의 대답에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컴퓨터에는 우리나라 지형을 축소해 놓은 화면과 함께 작은 캐릭터들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거 거상이라는 게임인데 재미있다 형도 해봐 내가 돈 좀 줄께"라는 후배의 권유에 저 또한 거상이라는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온라인 게임은 그 배경이 유럽의 신화를 많이 따 왔다는 점과 PK(캐릭터끼리 죽이는 것)가 짜증난다는 점 때문에 거의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소개시켜준 거상이라는 게임은 제가 알고 있는 온라인 게임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그 배경자체가 조선시기의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대만, 중국 등 동북아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것과, 등장하는 캐릭터 또한 산적, 거북이, 사슴, 독나방, 백호 등 우리가 친숙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를 끌었습니다.


거기에 전설에 고향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구미호나 제주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총각 귀신인 두억시니 등 요즘 세대들이 잘 알지 못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도깨비와 비슷한 오니라는 괴물과 아니메에 많이 등장하는 텡구, 설녀 등이 등장해 각 나라의 특색을 살리려는 노력 또한 엿보입니다. 또한 그동안 리니지 등에서 폭력성의 문제가 제기 되었단 PK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게임이라는 점이 온라인 게임에 대한 저의 선입관을 바꿔 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가장 맘에 드는 건, 게임에서나마 북녘의 우리 땅을 밟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반도 전체와 중국, 대만, 일본을 배경으로 할 뿐 아니라 각 나라별 주요 도시와 풍물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말로만 듣던 북한 땅을 곳곳을 누빌 수 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의정부를 지나 개성 사리원을 거치면 평양이 나오고 서쪽으로 가면 옹진과 해주가 동쪽으로 가면 원산까지 북으로 신의주까지 길이 뻗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는 중강진이나 군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혜산(제가 훈련받은 부대 이름이 혜산진부대였음), 그리고 북한의 개혁과 개방의 상징이었던 나진까지 그저 막연히 북쪽 어디에 있겠거니 하던 지명들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라는 것이 거상의 전부는 아닙니다.

다른 온라인 게임이 캐릭터 레벨만 높이면 되기 때문에 소위 레벨업 노가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반면 거상에서는 레벨과 전투력 신용등급의 세 가지 요소로 캐릭터를 평가하는 다면평가제도의 도입으로 게임의 잔 재미를 더했으며, 9명까지 고용할 수 있는 용병시스템 또한 거상의 독특한 게임 진행법입니다.

특히 신립, 이순신, 김시민, 사명대사, 유성룡 등 임진왜란 당시의 장수들을 용병으로 고용할 수 있으며,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각 나라에 맞는 장수를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 게임입니다.

또한 각 도시간의 물건 가격의 차이를 이용해 장사를 하거나 각 도시에 설치된 생산 시설에서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등, 실물경제적인 요소를 도입했으며, 저자거리를 설치해 각자가 생산하거나 습득한 아이템을 거래함으로써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온라인 게임을 많이 하는데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에 걱정하시는 부모님이라면 이 게임을 한번 권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30대지만 게임 속에서 만나는 분들 중에는 서른 살이 훌쩍 넘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군요.

아이들과 게임을 같이 하면서 한국의 지리와 역사, 경제에 관한 공부를 함께 하면 어떨까요?

a 북녘 땅의 모습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북녘 땅의 모습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 김해영

a 꼬마산적이라는 NPC가 돌아 다닌다.

꼬마산적이라는 NPC가 돌아 다닌다. ⓒ 김해영

a 게임속에서나 평양 땅을 밟아 보았다.

게임속에서나 평양 땅을 밟아 보았다. ⓒ 김해영

a 제주도에는 서귀포 시만 묘사된 것이 아쉽다.

제주도에는 서귀포 시만 묘사된 것이 아쉽다. ⓒ 김해영

a 유성룡을 용병으로 데리고 다닐 수 있어 흥미롭다.

유성룡을 용병으로 데리고 다닐 수 있어 흥미롭다. ⓒ 김해영

a 전설 속에 총각 귀신 두억시니가 게임속에 등장한다.

전설 속에 총각 귀신 두억시니가 게임속에 등장한다. ⓒ 김해영

a 창을 들고 있는 김시민의 모습.

창을 들고 있는 김시민의 모습. ⓒ 김해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자소개기자소개기자소개 기자소개기자소개기자소개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5. 5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