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비준 앞두고 '농심' 폭발

결의대회 후 상경투쟁, 경찰 저지로 끝내 무산

등록 2003.04.18 13:20수정 2003.04.24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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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하 한·칠레 FTA) 국회비준을 앞두고 농민들의 분노가 거세지고 있다.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의장 김광옥)은 17일 오후 2시 광주역 앞에서 농민과 학생 100여 명이 모여 한·칠레 FTA 저지 결의대회를 갖고 "한·칠레 FTA 동의안 상정포기와 한·칠레 FTA 이행특별법 제정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이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각오하고 투쟁하겠다"고 천명했다.

결의대회 후 참석자들은 상경투쟁을 위해 서울로 출발했으나, 호남고속도로 비아진입로에서 경찰들에 의해 저지당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칠레 FTA 통과되면 농민들은 모두 죽는다

a 전농광주전남연맹은 4월 17일 광주역에서한·칠레 FTA 저지 결의대회를 가졌다.

전농광주전남연맹은 4월 17일 광주역에서한·칠레 FTA 저지 결의대회를 가졌다. ⓒ 이승후

'한·칠레 FTA 저지를 위한 농민결의대회'에서 김광옥 전농광주전남연맹 의장은 "한·칠레 FTA가 체결되면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한국 농업이 무너진다"며 "결국 우리의 식량주권은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집회에 참가한 농민들 역시 한·칠레 FTA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촌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김공수(52)씨는 결의대회에 참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뜸 "살라고 왔소"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미 국산 농산물이 수입농산물과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있는데 한·칠레 FTA까지 비준되면 농민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며 "지금 정부에서 주는 정책자금도 농민들한테는 실질적인 혜택이 없는데 하물며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별수 있겄소"라며 정부가 농민을 달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특별법을 꼬집었다.


광주전남 농업회생연대도 17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한·칠레 FTA 체결은 다른 나라에 개방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빌미가 될 것이다"며 "한국의 개도국 지위유지를 위한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 이후로 한·칠레 FTA 국회비준을 미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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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칠레 농업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다국적기업이므로 한·칠레 FTA는 다국적기업만의 이익을 보장할 뿐이다"고 주장했다.


농민들, "서울 가서 항의하자"…경찰, "가긴 어딜가"

a 상경투쟁에 참가한 트럭을 경찰이 들어 옮기고 있다.

상경투쟁에 참가한 트럭을 경찰이 들어 옮기고 있다. ⓒ 이승후

애초 이날 결의대회는 한·칠레 FTA 저지투쟁을 알리는 결의문을 낭독한후 거리선전으로 마무리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14일 전농광주전남연맹이 농림부에 발송한 한·칠레 FTA 비준의향을 묻는 질의서에 대해 "한·칠레 FTA가 비준되더라도 농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한·칠레 FTA 비준방침을 밝힌 농림부 회신이 도착해 분위기는 급변했다.

한·칠레 FTA 저지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남 각지에서 올라오던 300여명의 농민들은 계획을 변경해 농림부 앞에서 상경투쟁을 벌이기로 하고 트럭 180여대를 앞세워 오후 1시 30분경 고속도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농민들의 상경투쟁을 '불법집회'로 간주하고 호남고속도로 비아진입로를 차단하고 농민들의 상경을 막았다.

상경하려는 농민들과 저지하는 경찰들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차량 6대가 파손되고 농민 14명이 연행됐다. 일부 농민들은 경찰의 상경투쟁 차단에 대한 항의표시로 차를 도로상에 버려두고 나와 경찰들이 몰려들어 트럭을 들어 옮기는 일도 있었다.

a 농민·경찰간 공방과정에서 깨진 차유리가 나뒹굴고 있다.

농민·경찰간 공방과정에서 깨진 차유리가 나뒹굴고 있다. ⓒ 이승후

이후 결의대회 참가자들까지 합세해 400여명으로 불어난 농민들이 상경투쟁 보장과 연행농민 석방을 요구하며 비아진입로에서 즉석 집회를 가졌다.

나주에서 논농사를 짓는 김광웅(59)씨는 "바쁜 농번기지만 FTA가 통과되면 농업이 망하기 때문에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상경투쟁에 참가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또 "FTA로 이득을 본 사람은 칠레 농장주뿐인데 이 사람들이 대부분 미국사람들이다"고 주장하며 "결국 한·칠레 FTA라는 것이 미국이 우리나라에 압력을 가해 만든 작품이지 않는가"라며 정부와 미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한편 이날 상경투쟁은 연행된 농민 석방과 도로점거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을 경찰과 합의한 후 자정을 전후해 마무리됐다.

"목숨걸고 한·칠레 FTA 막겠다"

▲ 즉석집회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오분임씨.
이날 즉석집회에서 눈길을 끄는 이가 있었다.

바로 해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오분임(66)씨다.
전국여성농민회장직을 맡고있는 오 회장은 정부의 농업정책을 강경하게, 때로는 애잔하게 조목조목 비판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오분임씨는 "한참 바쁜 농번기지만 한·칠레 FTA가 통과되면 농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기 때문에 이것을 막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오늘 상경투쟁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국적 자본의 이익만 대변하려는 지금 정부의 모습을 보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며 "지금의 나라 상황은 옛 식민지 주인이었던 일본에서 미국으로 주인이 바뀐 것 같다"고 소리 높였다.

또 "한·칠레 FTA 저지투쟁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닌, 후손들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이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오분임 회장은 "농업이 무너지면 나라가 흔들리기 때문에 목숨걸고 한·칠레 FTA 비준을 막겠다"는 결의를 밝혀 집회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 이승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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