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68

등록 2003.04.18 17:39수정 2003.04.1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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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인국 정벌에 참가하지 않은 협부는 최근 늦은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의 버릇인 툴툴거림도 거의 보이질 않았으며 손에는 도끼대신 책이 항상 들려 있었다. 행인국 정벌에서 돌아온 을소를 보자마자 협부는 재빨리 쫓아가 인사를 했다.

"스승님 오십니까? 오늘은 무슨 수업을 하실 겁니까?"


나이로나 직책으로나 한참 위인 협부가 매번 스승님이라 부르니 을소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하지만 협부는 을소를 스승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비류와 온조의 수업을 같이 들으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글쎄요. 오늘은 제왕의 길에 대해 논해 보려고 합니다."

비류와 온조는 이미 을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협부가 이렇게 을소의 강론을 듣게 된 데에는 비류와 온조 때문이었다. 비류와 온조 두 왕자의 검술 훈련을 맡게 된 협부에게 어느 날 그들이 책을 가지고 와 물어 본 것이 계기였다.

"시경(詩經)에 '일하지 않고서 먹어서는 아니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글스승께서는 이를 깊이 설명하지 않으셨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요?"

"뭐? 시경이 뭐 하는 것이기에 그런 잡스런 소리를 적어놓는단 말이냐?"


왕자들은 키득거리고서는 더 이상 협부에게 묻지 않았다. 다음날 왕자들은 협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글 스승님께 다시 물어보니 '일이란 꼭 땅을 파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라.'는 말로 푸시더군요. 그런데 검술스승께서 시경이 뭔지 모른다는 얘길하자 웃으시며 '그건 검술 스승님의 본분이 검에 있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시더군요."


협부는 다른 말보다 글 스승이란 자가 웃었다는 얘기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디 그 글 스승이란 자가 얼마나 잘났는지 면상이나 한번 보자!"

이리하여 협부는 을소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협부의 눈에는 을소가 비리비리한 한낱 어린 서생에 지나지 않았다.

'예전의 묵거도 서생이었지만 강단이 있었고 폐하께서 아끼는 사람이었는데 이 자는 뭐가 잘났기에 왕자들의 스승 노릇을 하는 걸까?'

하지만 일단 그의 강론을 듣자 협부는 그의 말에 심취하게 되었고 부족한 것을 메우느라 열심히 글을 깨우치고 밤을 새어가며 책을 접했다. 결국에는 주몽까지도 협부의 이런 면을 보고 감탄할 지경이었다. 여하튼 제왕의 길에 대한 을소의 강론은 시작되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이옵니다. 대체 가혹한 정치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비류, 온조, 협부순으로 을소의 물음에 대답했다.

"많은 세를 거두어 백성들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것입니다."

"간사한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게......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하는 시행하면 가혹한 정치가 아니오?"

을소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끄떡였다.

"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왕자님들과 발위사자께서는 정치를 해야할 입장이십니다. 앞으로 가혹한 정치를 하실 것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비류와 온조가 즉시 대답했다.

"어느 왕도 가혹한 정치를 일부러 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왕이 정치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사냥이나 유흥에만 관심을 가지면 정치가 자연히 가혹해진다는 것입니다. 왕이 정치에 신경쓰지 않으니 아랫사람들이 자신의 사리사욕만 충족시키려 하고 이로서 백성들의 삶은 궁핍해지는 것이옵니다."

비류와 온조, 협부는 을소의 가르침을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시종이 을소와 협부를 불렀다.

"무슨 일이오?"

"폐하께서 두 분을 찾으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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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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