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향일암.오창석
번뇌와 업보를 한 짐씩 걸머지고 무겁게 발을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숙명적으로 무거운 돌을 반복해서 산정으로 굴러올려야 했던 시지프스의 모습처럼 애처롭기까지 하다. 무엇을 바라고 미명의 가파른 길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대웅전 앞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은 경건하고 엄숙하기까지 하다. 해가 뜨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건마는 바다 속에 잠겨버린 해가 영원히 솟아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것을 가져보는 것은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온 인간의 오염된 마음 탓일 게다. 그러나 어찌 대자연의 반복되는 순환이 멈출 날이 있겠는가.
모진 겨울을 이겨낸 새순이 움터 올라오듯, 해는 어김 없이 바다와 하늘의 틈새를 비집고 얼굴을 내민다. 안개 속에서 회색의 꼬리를 거두고 물러가는 어둠의 뒤를 따라 향기로운 바람이 밀려온다. 때를 맞추어 검은 처마 끝에 회한처럼 매달려 있던 풍경(風磬)이 맑은 소리를 토해낸다.
어제보다 오늘은 좀더 나아지려니 하는 기대감을 안고 올라온 사람들은 판도라의 상자일지도 모르는 미명의 바다를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기도를 한다. 그러나 오늘이 비록 불행의 시작일 망정 일출의 바다는 장엄하고 눈부시다. 이글이글 타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 더러운 티끌로 가득한 마음 속을 씻어내면 가슴을 옥죄고 있던 더러운 욕망은 절벽 아래 출렁이는 파도 속으로 포말이 되어 흩어져 버린다.
바다와 하늘은 경계가 없다. 저렇듯 찬란하게 솟아오른 태양도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바다 속으로 잠겨버리리라. 일출은 일몰로 이어지고 이어서 다시 해가 뜨는, 그래서 삶과 죽음은 본래 하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주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나는 다시 우주 속으로 돌아가고. 우주와 내가 하나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바라문이라도 된 듯 가슴이 황홀해진다.
은은한 독경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 왔다. 만일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면 사람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소리가 저렇듯 맑은 울림으로 가슴을 적시지는 못하리라.
향일암은 백제 의자왕 4년(664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어떤 열망과 불심이 이토록 가파른 절벽 위에 향긋한 연꽃을 얹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저절로 감탄이 터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