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손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강한옥 할머니 잔뜩 멋을 부리셨다박철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랑신부가 나보고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해서 앞자리에 앉았다 내 순서에 기도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그 넓은 예식장에 어디 엉덩이 하나 들여놓을 데가 없을 만큼 예식장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결혼식을 다 마치고 강화에서 타고 왔던 대절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비가 주룩주룩 처량하게 내렸습니다. 신랑 쪽 친척 몇 분이 내일 온다고 안 타서 그나마 올 때보다도 사람이 줄어들어 그 넓은 차에 동그마니 열한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모두가 지쳐있는 표정이었습니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좋은날이니 사람들 기분 좀 내라고 뽕짝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았습니다. 시끄럽지만 나는 버스기사 아저씨의 마음을 잘 알겠기에 잠자코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뽕짝 음악을 자장가 삼아 1시반동안 창후리 선착장에 오기까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다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지금 도시는 사람들의 포화상태이고 농촌은 사람들이 없어서 일년 중 가장 바쁜 철입니다. 70넘은 노인들까지 다 들에 나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허리가 휘도록 일합니다. 일철에는 돈을 주고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습니다. 두 젊은이가 서로의 사랑의 약속을 다짐하고 출발하는 혼례식 날, 모두가 즐겁게 얘기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날, 섬마을 사람들의 심기는 그렇게 좋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불편한 속내를 다 드러내 놓고 살 수는 없겠지만, 시방 농촌사람들은 온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그 신나는 뽕짝 음악에도 몸 한번 흔들지 못하고 잠에 곯아 떨어져야 하는 농투성이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배 터에 다 왔어요. 고만 자고 일어나세요!”
다들 하품을 크게 하면서 기지개를 펴고 한다는 말이
“벌써 다 왔어. 아이구! 오래간만에 잘 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