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딸려든 장일정은 대경실색한 상태였으나 침착을 잃지 않았다. 어린 시절,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부친의 가르침이 있었던 덕이다.
이 순간 만년뇌혈곤의 무지막지한 힘에 의하여 반으로 부러져 버린 조룡간의 한 쪽은 손에 들려 있었다. 이것의 끝에 바늘이 달려 있었으니 반광노조와 연결된 셈이다.
나머지 반쪽, 다시 말해 손잡이 쪽은 마치 부러진 다리에 부목을 대놓은 듯 그의 발목에 고래 힘줄로 휘감겨 있었다. 삼백 명이 잡아 당겨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바로 그 힘줄이었다.
장일정은 만년뇌혈곤의 아가리 속으로 딸려 들던 바로 그 순간 부러진 채 손에 들려있던 조룡간을 냅다 내던졌다.
그것은 한번 물면 절대로 놓치지 않게 세 겹으로 나 있는 괴물의 이빨 사이에 끼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장일정의 신형이 멈춰졌다. 다행히 이빨이 닿은 수 없는 안쪽, 그러니까 목구멍 바로 바깥쪽이었다.
사실 장일정이 조룡간을 던진 것은 착각 때문이었다. 너무도 다급한 순간인지라 그것이 반 동강났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발목에 감긴 힘줄과 그것이 연결된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형이 목구멍 직전에서 멈춘 것은 그야말로 천우신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목에 휘감겨 있던 고래 힘줄의 끝 부분은 딸려들면서 엉키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이빨 사이에 끼면서 순식간 매듭지어졌고 덕분에 멈춘 것이다.
천우신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선은 장일정이 조룡간을 내던지는 바람에 반광노조는 더 이상 끌려들지 않게 되었다. 목구멍에서는 소화액이 분비되지 않는다. 반광노조로서는 위기를 넘긴 셈이다.
만일 그가 괴물의 위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면 잠시 목숨은 유지했을 것이나 결국에는 죽었을 것이다.
아무리 힘이 좋다고 하지만 반광노조는 엄연히 노인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근력이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괴물의 영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장일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괴물의 아가리 속에 멈췄다고는 하지만 마냥 그러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첫째, 먹을 것이 없으므로 아사(餓死)하게 되었을 것이다.
둘째, 괴물이 잠수를 하게 되면 질식사하게 되었을 것이다.
셋째, 뇌성벽력이 치기 시작하면 뇌기에 담겨있는 양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허공으로 치솟았을 때 감전되어 죽게 될 것이다.
간신히 위기를 넘긴 장일정은 황급히 반광노조를 끌어 올렸다. 또 하나의 천우신조였던 것은 두 사람의 손이 닿았다는 것이다.
반광노조가 간신히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올라왔을 때는 놈이 아가리를 닫고 잠수를 시작한 때였다. 따라서 손가락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했다.
"이이이익! 휴우…! 노인장, 큰일났습니다. 어떻게 하죠?"
괴물의 이빨을 잡고 벌려보려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보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자 장일정은 맥이 탁 풀렸다.
이제 남은 것은 죽는 일 뿐이라 생각하자 억울하였다.
"젠장! 이런 괴물의 먹이가 되다니… 젠장! 제기랄! 젠장!"
투덜거리며 괴물의 이빨을 걷어차 보기도 하고 조룡간으로 후려쳐 보기도 하였지만 이 역시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젠장! 젠장! 아야! 아야야! 어휴, 아파. 이런, 제기랄! 노인장, 노인장! 어디 계세요? 뭐 좋은 수 없어요?"
주먹으로 후려치던 줄 날카로운 괴물의 이빨을 친 장일정은 손을 감싸며 반광노조를 찾았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다음 순간 어둠 속에서 반광노조의 창노한 음성이 들렸다.
"이보게! 생사잠이라는 것을 꺼내들고 노부의 뒤를 따르게."
"예? 생사잠은 뭣하게요?"
"이놈을 죽여야 우리가 사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화관홍선사의 내단은 지상 최강의 독단(毒丹)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네. 지금은 단단하면서도 질긴 껍질에 쌓여 독성을 내뿜지 않으나 이 껍질만 벗기면 엄청난 독 기운이 번질 것이네."
"……?"
"이놈이 중독되어 발광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숨을 쉴 수가 없네. 그러니 공기가 있는 부레가 있는 곳까지 가야 하네. 그 근처에서 이놈의 살을 찢고 그 안에서 독단을 터뜨릴 것이네."
"예에…?"
이 순간 장일정의 뇌리로 강호의 늙은 생강이라는 말이 스치고 있었다. 투덜거리고 있는 동안 반광노조는 어떻게 하면 살까를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만일 노부의 생각이 맞는다면 이놈은 중독되어 지랄발광을 하다 죽을 것이네. 이때 생사잠이 없다면 우리도 중독될 것이네. 그러니 어서 그것을 꺼내들고 따라 오게."
"아, 알았어요."
황급히 생사잠을 꺼낸 장일정은 더듬거려 반광노조를 찾은 뒤 그의 뒤를 따랐다.
오랜 세월 어부로 지낸 반광노조는 부레가 어디에 있는지 훤한 듯하였다. 칼로 생살을 찢을 때마다 고통을 느끼는지 만년뇌혈곤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있었으나 둘은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하였다. 지금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걸 자네와 노부가 함께 입에 물고 있어야 하네. 놈이 발광을 하더라도 절대 놓쳐서는 아니 되네. 알겠는가?"
"아, 알았습니다."
"좋네, 이제 시작하겠네."
"…….!"
잠시 후 장일정은 반광노조가 힘을 쓰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창자를 쥐어짜는 듯한 신음이 들렸으나 장일정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으으읍! 으으으으윽! 으으으읍!"
"……? 으으읏!"
지독한 독성을 지닌 화관홍선사의 내단이 터졌다는 것을 느끼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광노조의 나지막한 신음과 동시에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이 뒤흔들리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장일정은 행여 반광노조를 놓칠 새라 두 팔로 그의 신형을 단단히 감쌌다. 누구든 생사잠에서 입을 떼면 죽을 것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온몸이 따끔따끔하면서도 화끈거리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상외로 만년뇌혈곤의 발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일 다경 정도 지랄발광을 하다 멈춘 것이다. 다행히도 부레 속에 있던 공기가 있기에 숨을 쉴 수 있어 질식사는 면했다.
만일 원래 있던 곳에서 화관홍선사의 내단을 터뜨렸다면 만년뇌혈곤은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내장에 상처가 없다면 그냥 소화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짐작하였기에 놈의 생살을 찢고 그 안에서 터뜨린 것이다. 역시 강호의 늙은 생강이었고 백전노장다웠다.
"노, 노인장! 이제 끝인 모양입니다. 어서 나가지요."
"아닐세. 자네 먼저 나가게."
"아닙니다. 노인장 먼저 나가십시오."
"아니네. 노부는 할 일이 있네. 그러니 자네가 먼저 나가게."
"예에? 할 일이라니요…?"
장일정은 괴물의 몸 속에서 할 일이 있다는 반광노조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살필 수 없을 짙은 어둠 속이었기에 반광노조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잊었는가? 우리가 왜 천뢰도에 왔는지. 놈이 죽었으니 어서 내단을 취해야 할 것 아닌가?"
"아, 참! 소생이 깜빡 했습니다. 그 일이라면 소생이 할 터이니 노인장 먼저 올라가시지요."
"아닐세. 노부가 할 테니 자네는 올라가서 이빨 사이에 낀 줄을 풀어야 할 것이네. 이제 잠시 후면 놈이 녹기 시작 할 것이네. 얼른 풀지 못하면 자네는 수장(水葬)되고 말 것이네. 이빨이 가장 나중에 녹기 때문이지. 알겠는가?"
"헉! 아, 알겠습니다."
워낙 경황이 없어 부목처럼 발목에 묶여 있는 조룡간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던 장일정은 허겁지겁 기어올랐다. 그 사이 반광노조는 괴물의 몸 속을 더듬어 내단을 찾았다.
그것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만 년이 넘는 세월을 산 영물의 내단은 뭐가 달라도 달랐기 때문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광노조가 내단을 취한 뒤 목구멍을 넘을 무렵 괴물의 동체는 녹아들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공기로 숨을 들이킨 둘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위로 치솟아 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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