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장 나눠먹기 '이제 그만'

노조, 개방형 공모제 도입 등 주장

등록 2003.04.22 20:26수정 2003.04.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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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장의 '나눠먹기' 인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회도서관. ⓒ 오마이뉴스 이성규
도서관장의 '나눠먹기' 인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회도서관. ⓒ 오마이뉴스 이성규

김윤태 제13대 국회도서관장이 지난 9일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관장직에 보임된 지 채 7개월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너무 이른 나이에 도서관장에 임명됐다며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던 그가 '사퇴'를 결심한 것은 다름아닌 내년 총선 때문. 차관급 관장직 때문에 금배지라는 '정치적 야망'을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결국 사표를 던졌고 지역구 관리를 위해 민주당 마포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되돌아갔다.

국회도서관의 해묵은 과제로 인식돼 온 불합리한 관장 임명방식으로 국회도서관이 또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김윤태 전 도서관장의 갑작스런 사퇴를 계기로 도서관장 인사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야간 나눠먹기식으로 임명돼 온 그간의 관행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미 학계 등에서는 여러 차례 제기되기도 한 터였다.

김윤태 제13대 국회도서관장은 국회의장에 당시 한나라당 당적의 박관용 의원이 선출됨에 따라 지난해 9월 13일 민주당 몫으로 임명된 케이스. 김 전 관장은 도서관장의 실질적인 임명권을 행사하는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인 정균환 민주당 원내 총무의 측근이다. 전형적인 나눠먹기 인사의 결과로 봐도 무방하다.

[임명방식의 문제점과 폐해] : 현행 국회도서관법에 따르면 국회도서관장은 의장이 국회운영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토록 하고 있다. 통상 국회의장이 제1당에서 선출 될 경우 야당에서 관장을 추천해 임명하고 제2당이 의장에 오를 경우 제1당이 관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해 왔다. 차관급에 해당하는 국회도서관장직이 그 위상에 걸맞지 않게 '정치적 타협물'로 전락한 것은, 정확치는 않지만 88년 국회도서관이 독립 도서관 건물에 이주해 뒤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년 이상의 역사, 관장은 불과 '13명'
미 의회도서관장의 임명방식과 특징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의 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종신제이다. 현 제임스 빌링턴 관장은 지난 87년 임명돼 현재까지 16년간 재임하고 있다.

또한 우리 국회도서관장이 차관급인 반면 미 의회도서관장은 장관급. 일본 국립국회도서관도 마찬가지이다. 미 의회도서관장은 국회에 예산안을 직접 제출하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미 의회도서관장의 선출 방식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슷하다. 미 상원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1800년 개관 이래 현재까지 13명의 도서관장이 거쳐갔으며 평균 임기는 15년 가량이다.

현 빌링턴 관장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친 교수 출신 인사로 러시아 역사 전문가로 미국 내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 이성규 기자
제4조 (관장)
①관장은 의장이 국회운영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임면한다.
②관장은 정무직으로 하고, 보수는 차관의 보수와 동액으로 한다.
③관장은 의장의 감독을 받아 도서관 사무를 통할하고 소속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 다만, 도서관 관련 사무중 인사행정, 예산회계, 국고금관리, 국유재산관리, 물품관리, 비상계획업무, 공직자재산등록업무등에 관하여 국회사무처법, 국가공무원법, 예산회계법, 국고금관리법, 국유재산법 기타 다른 법령에서 국회사무처 또는 국회사무총장의 권한에 속하는 사무로 규정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02.12.30>


때문에 국회도서관장은 국회의장과 2년 임기를 함께 해 왔다. 그렇다고 2년간의 임기를 규정한 조항은 국회법이나 국회도서관법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관행상 그렇게 교체돼 왔을 뿐이다. 이같은 관행으로 임명된 국회도서관장은 중장기 도서관 발전계획보다 단시일 내에 '티'가 나는 과시행정이나 자당 의원에 대한 편의제공에 더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이 공무원노조 국회도서관 지부측의 설명이다.

김성년 공무원노조 국회도서관 지부장은 "정치적 배경을 가진 분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기관이 수단화되거나 과시적이거나 행정편의적인 사업을 할 우려가 크다"며 "이로 인해 정작 손해를 보는 것은 오히려 국회의원들"이라고 지적했다. 어차피 2년 동안 '휴가차' 이직온 자리인데 중장기플랜에 손을 댈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엄청난 예산의 투입과 시간이 요구되는 미 국회도서관의 CRS(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미 의회도서관 입법조사국)와 같은 입법연구조직 구성은 꿈에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이는 결국 국회 전문성의 약화와 국회의원의 질적 수준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관장이 소속된 정당의 의원들에게는 '확실한' 편의를, 타당 의원들에게는 부실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자당에 '충성'하는 직원들로 요직을 채우는 인사파행도 서슴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편향성' 시비를 낳기도 했다.


한나라당 몫의 최문휴 제12대 도서관장 당시 총무과장과 기획감사가 재임 2년 동안 무려 5번이나 교체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국회도서관의 한 관계자는 "최문휴 도서관장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도서관의 암흑기였다"면서 "최 관장의 인사권 남용으로 조직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러한 불합리한 임명방식으로 인해 국회의원의 국회도서관에 대한 의존성을 떨어뜨리고 도서관의 질적 제고를 위한 관심도 저하시켜 도서관 위상과 기능은 점차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게 됐다.

김성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회도서관지부장. ⓒ 오마이뉴스 이성규
김성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회도서관지부장. ⓒ 오마이뉴스 이성규
[공무원노조 국회도서관 지부의 요구] : 임명방식으로부터 파생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도서관장 임명방식의 개선과 더불어 국회도서관의 독립성 확보가 절실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즉 도서관장은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된 인사를 국회도서관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출함으로써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고 해야 한다는 것.

아울러 도서관장의 임기를 연장하고 국회사무처의 '작은 집'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약화된 위상을 끌어올려야만 국회도서관의 질적 도약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년 공무원노조 국회도서관 지부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추천제도를 도입하거나 문화계나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국회도서관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검증작업을 한 뒤 국회 운영위가 임명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년의 임기 동안 이렇게 큰 기관의 철학과 목표를 구현하기는 힘들다"면서 국회도서관장의 임기연장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는 국회도서관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서도 국회사무처로 편중된 예산편성구조를 바꾸거나 독립집행이 가능하도록 국회의장 산하기관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9일 사퇴한 김윤태 전 관장에 의해서도 제기되기도 했다. 김 전 관장은 최근 발행된 <국회도서관보> 3·4월호에서 "국회도서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국회도서관장의 임기를 연장할 필요가 있다"며 "이와 함께 장기발전계획 기획 및 수립을 위해 국회도서관 발전 자문위원회도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 정문 앞에 내걸린 '낙하산 인사 반대' 플래카드. ⓒ 오마이뉴스 이성규
국회 정문 앞에 내걸린 '낙하산 인사 반대' 플래카드. ⓒ 오마이뉴스 이성규
[관련학계의 인식] : 학계쪽의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영만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현재 제2당 몫으로 임명되고 있는 국회도서관장을 공모와 같은 방법을 통해 선출하는 것 외에는 별 다른 길이 없다"고 조언했다.

고 교수는 또 "정치·경제·법률 관련 인사들 중 도서관 발전에 대한 마인드가 있는 인물을 공모해서 다면평가를 받고 연임을 가능하게 한다면 도서관의 장기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태우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도 "국회도서관이 정치권의 이해에 맞물려 운영되는 것은 전형적인 후진형 문화마인드"라고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국회도서관장직을 개방직으로 운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문헌정보학이라는 학문이 들어온 지도 벌써 40∼50년이 지났다"면서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에 의해 보임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장의 반응] : 이같은 노조와 학계의 주장에 대해 박관용 국회의장쪽은 동감의 뜻을 표했다. 최구식 국회의장 공보수석은 "박 의장은 국회도서관장과 같은 중요한 자리를 흥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계시다"며 "운영위원장이나 다른 원내총무 등에 이같은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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