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각' 장애인콜택시 운전자

이상과 현실 구분 못한 서울시 장애인콜택시 정책

등록 2003.04.24 06:17수정 2003.04.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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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계속된 장애계의 버스타기, 지하철타기에 이은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등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관련한 시위가 강하게 일어나자 서울시는 장애인의 이동을 지원하는 시책으로 장애인콜택시 제도를 급히 도입했다.

장애인콜택시는 지난해 12월 시범서비스를 마치고 올해 1월 1일부터 본격 운행한 지 4개월을 맞는다. 그간 운행과정에서 콜센터 교환원의 서울 지리 미숙과 가스비의 예측미비로 운전자의 과다한 비용발생 등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서울시의 대처는 안일하기만 하다. 물론 가스비를 지원하는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장애인콜택시에 대한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운전자들을 자원봉사 형태로 모집해 운행을 하다보니 운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에 대해 조치가 전혀 없다. 그야말로 장애인콜택시 운전자는 안전사각지대에서 하루 10시간을 일하고 있다.

a 병실에 누워있는 장애인콜택시 운전자 신동권씨

병실에 누워있는 장애인콜택시 운전자 신동권씨 ⓒ 이철용

지난 4월 13일 장애인콜택시 운전자 신동권(56)씨는 휠체어 장애인을 차량에서 안아 하차시키던 중에 허리를 다쳐 수유리 한일병원에 12일째 입원중이다. 입원실에서 만난 신씨는 병원에 실려온 이후 침대에서 거의 고정된 상태로 치료중에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장애인콜택시를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시설관리공단 직원들이 찾아와 자동차보험사와 협의를 한다고 했지만 결국 차량 운행중 사고가 아닌 장애인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이기에 보험처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신씨는 현재 24시간 보호자가 옆에서 수발을 들며 용변을 받아내야 하는 상태이다. 부인과 두 아들을 둔 신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예정된 수술과 치료, 3개월간 일을 하지 않고 치료에 전력해야 하는 처지가 한스럽다는 것이다. 담당의사인 권용수씨는 "제1요추골 압박성 골절로 12주 진단이 나온 상태이고 24일 수술을 통해 문제가 된 부분에 골시멘트를 주입해서 최대한 빨리 회복이 될 수 있도록 치료할 예정이지만 앞으로 3개월간은 보조기를 착용해 누워서 생활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문안을 온 한 장애인인콜택시 운전자는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도 언제 저런 일을 당할지 모르니 근본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병상의 신씨는 "하루 빨리 100명의 운전자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산재보험과 같은 문제들이 해결돼서 마음놓고 봉사하며 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치료후에도 계속 장애인콜택시 운전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a 진단서를 보고 있는 부인 김연순 씨

진단서를 보고 있는 부인 김연순 씨 ⓒ 이철용

뜻하지 않은 사고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왔다는 부인 김연순(53)씨는 병실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며 남편의 간호를 하고 있다. 병원 생활을 많이 해보았지만 이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라며 "처음에는 용변을 하루 7번이나 처리해야 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6인용 병실의 환자중에 보호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자리를 부지런히 다니며 환자의 손발이 되어 주고 있었다. 김씨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다가 이런 어려움을 당한 것이 서운하다며 "하루 속히 서울시의 해결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남편의 진단서를 원망스러운 듯 쳐다봤다.


신씨는 월남전 참전시 얻은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도 앓고 있다. 얼굴과 손, 온몸에서 고엽제로 인한 증상들이 이번 사고 후 더 심하게 나타나지만 다른 치료를 할 수가 없는 상태이다. 그는 용변처리에 부인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식사도 최소한으로 줄여 부인의 근심과 걱정은 더 깊기만 하다.

이번 사고에 대해 장애인이동권연대의 박경석 공동대표는 "이번 사고는 서울시가 장애인콜택시 제도를 장애인에 대한 시혜의 차원에서 급히 도입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하루속히 서울시는 장애인콜택시 운전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정당한 법으로 보장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될 때 "장애인 이용자들도 봉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요금을 주고 당당한 권리를 요구하며 이용하고 서비스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임한균 팀장은 "서울시도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현재 정해진 것은 없고 신씨에 대한 특별한 지원도 없다"고 밝혔다. 임 팀장은 "서울시는 장애인콜택시 제도를 이상을 꿈꾸며 도입했는데 현실은 달랐다"라고 제도에 일부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하루속히 서울시의 책임있는 조치를 통해 운전자들도 위험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기쁨으로 일하고 장애인들도 당당하게 서비스를 받으며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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