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교 출신’으로 서울대 금기를 깨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첫 여성교수 우지숙씨

등록 2003.04.24 15:06수정 2003.04.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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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타임스
우지숙(36) 교수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최초의 여성교수다. 한국 관계(官界)의 젖줄이라고 할 서울대 행정대학원은 법대와 함께 오랫동안 여교수를 받아들이지 않던 남성 성역이었다. 더구나 우씨는 국내에서 학부를 마친 비서울대 출신 중에서는 유일한 여교수다. 오로지 실력으로 ‘타교 출신’에 ‘여성’이라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터부를 깨뜨려 버렸다.

“인터뷰를 할 만큼 제게 특별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언론학 분야의 젊은 권위자로 떠오르고 있는 우지숙 교수가 정중하게 취재 요청에 망설이며 꺼낸 얘기다. 30대의 서울대 여성교수, 금녀(禁女)의 벽을 실력으로 해체시킨 그가 꺼낸 이 말은 겸손만은 아니다.

우 교수의 말은 오로지 학자의 길로만 정진해왔고, 특별히 언론의 인터뷰 대상이 될 만한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우 교수의 학자로서의 ‘교만’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자신의 본분만을 다해왔다는.

남편과 아이의 사진이 곳곳에 놓여 있는 교수실에서 만난 우 교수는 기자의 예상과는 너무나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소녀 같은 앳된 모습이었다. 어디에서 금녀의 벽을 허문 힘이 나왔을까.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정책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이 때 제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셨던 분이 지난 8월 제가 서울대 교수 임용에 지원했을 때 적극 추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에서든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온 게 도움이 된 거겠죠.”

물론 우 교수는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지니고 있다. 언론학과 법학 등 박사학위만 두 개다. 당연히 될만한 사람이 됐다. 그러나 서울대 학부 출신만 독점하는 것이 관행이던 행정대학원 교수, 그것도 최초의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화제의 인물로 부상했다.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학자로서 살아왔다”

“솔직히 최초의 여성교수라는 말은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학자로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 교수는 자신이 차별을 받은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여성이라서 더 유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양성평등의 시대적 흐름이 대세인 만큼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는다면 여성이라서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 교수라고 승승장구만 해온 것은 아니다.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수 임용에 지원했다가 탈락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때 뒷말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비애도 느꼈다.

“한국 사회에서는 교수 임용에서 탈락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더군요.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뒷이야기들이 오고가죠. 도마 위에 올려져 토막 나는 것과 같은 고통이 수반되는 겁니다. 이번 서울대 교수 임용에 도전하고자 했을 때도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조교수 임용 공고가 난 지난 8월 우 교수는 고민 끝에 지원을 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비서울대 출신이자, 여성으로서 벽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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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에게는 유학 시절 만난 든든한 남편이 늘 곁에 있었다. 그러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우 교수는 말한다. 남편이야말로 그를 자신의 아내이면서 동료 학자로 인정해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당신은 학자야. 훌륭하게 잘하고 있으니 걱정마”하는 말로 토닥이던 남편, 우 교수는 아내 이전에 동료 학자로 인정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가끔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어떤 숙명적인 길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학 시절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그때는 그냥 좋은 오빠 동생 사이로 지냈어요. 그런데 친구 같은 그가 남편이 되었으니까요.”

네살배기 둔 엄마…보육문제 뼈저리게 실감

우 교수는 원래 언론학에 관심이 많았다. 법학을 하게 된 것도 언론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언론학을 깊이 공부할수록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고 그 돌파구를 법학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그의 논문들이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정당한 사용이나 저작권 이용 등과 같은 법과 언론이 부딪히는 분야를 다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서울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그 시간이 제게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던 시기여서 학생들에게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죠.”

늘 남성집단 속의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가 여성들의 사회에 편입되었던 것은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 계기였다. 유학 시절이나 연구원 시절에는 늘 남성이 다수였기 때문에 외로움이나 이질감을 느껴야 했다는 것. 그러나 서울여대 학생들과는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친근한 교수를 넘어 마치 언니나 이모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학생들은 남자 친구와의 성관계, 가족 문제 등 개인적인 상담까지 요청해오더라는 것. 여성으로서의 유대감에 대한 기억이 그에게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우 교수의 정체성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일 터다.

“서울대에서 교수생활을 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아이가 이제 네 살이 되었고 그 때문에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겼어요. 좋은 교수진과 학생들은 제게 자극이 되죠. 그것이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합니다.”

우 교수에게도 육아 문제는 남의 얘기만은 아니었다. 우 교수는 “아이와 엄마 사이에 교감이 필요한 시기가 있는데, 사회에서는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육아휴직과 복직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문제의식의 무게를 감지할 수 있다.

“관료 배출의 산실이라는 점 때문에 어깨가 더욱 무겁습니다. 늘 연구하는 모습으로, 학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 여성들에게 롤(역할) 모델을 제시하고 싶은 것이 새롭게 생긴 제 꿈입니다.”

자랑스런 여성, 우 교수의 포부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우지숙 교수는…
‘인터넷 법’ 분야 젊은 권위자

우지숙 교수는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언론학 석·박사학위(Ph.D)와 뉴욕대학에서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WIPO(세계지적재산권기구) 패널리스트, 미국 변호사,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2002년 매경비트학술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김&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상담자문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 대한중재인협회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방송위원회와 각종 매체의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했다.

우 교수는 ‘정보화시대의 저작권법과 발전정책’ ‘영상물 규제 논리에 대한 인식’ ‘지식정보사회와 지적재산권’ ‘디지털 사용에 대한 정당한 사용’ ‘P2P 소프트웨어 관련 산업과 지적재산권 정책의 한계’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P2P 소프트웨어 관련 산업과 지적재산권 정책의 한계’ 논문에서 “정보 관련 제도는 수단이 되는 기술의 발전과 서로 맞물리며 발전한다”고 기술했다. 인쇄매체에서 전자매체로의 발전이 기술환경과 사용자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수용자들의 수용 자세도 변화시킨다는 것을 주장, ‘창작자 보호’와 ‘문화 향상’의 두 측면을 다뤄 주목받았다.

그는 현재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인터넷 규제와 법’을 강의하고 있다. 행정대학원의 여학생 비율은 30%나 되지만 여교수는 처음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우 교수는 계속 배워나가는 자세로 연구에 매진해 학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여학생들의 모델이 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평범함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우 교수는 네 살된 아들을 두고 있다. 시간이 나면 하루종일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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