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만난 안내원 홍제비와 미향이

[국제친선음악제] 피아니스트 임미정 교수의 평양 방문기-3

등록 2003.04.25 11:18수정 2003.04.2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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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부터 일주일동안 평양에서는 국제친선음악제가 개최됐다. 피아니스트이며 울산대 음대 교수인 임미정씨(홈페이지 www.mijungim.com)는 재미예술단의 일원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가 지난 19일 귀국했다.


임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세 번의 방북연주 등을 통해 남북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고, 작년 그의 순회독주회시 북한의 피아노곡을 우리나라에서 초연했다. 이번 행사에서 방북했던 임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평양 방문기'를 보내왔다. 이번이 그 세 번째 기사이다...<편집자주>


우리가 연주할 중앙 노동자 회관 로비.
우리가 연주할 중앙 노동자 회관 로비.임미정

4월 9일 수요일

"누님, 누님"하면서 우리를 잘 따랐던 '홍제비'와의 재회


여행으로 너무나 피곤했었는지 비몽사몽간에 도대체 여기가 어딜까 하고 새벽에 일어나서도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근처 소학교에선지 확성기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내 방은 동향이라 아침에 밝다. 조금 전 내방에서 바라본 평양의 경치를 몇 장 찍었다. 최근에 구입해서 가져 온 디지털 카메라에는 1500장 정도를 찍을 수 있는 칩이 있어 마음놓고 찍을 수 있다.

멀리 주체탑이 보인다. 170미터나 되는 높은 탑이다. 밤에는 위의 횃불 모양이 빨갛게 타는 듯이 보이게 장치가 되어 있다.

아, 아침부터 리허설이 있다고 했다! 서둘러야겠다. 아침밥은 먹고 가야지…. 홍영석(우리 안내원)이 잔소리 하기전에 가야할텐데….


참 홍영석 동무(?)에 관해선 설명을 해야겠다. 이 사람은 2000년 내가 처음 여기를 방문했을 때 우리 재미 예술단을 맡았던 안내원이다. 그때 같이 왔던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과 내가, 예쁘장하게 생긴 그의 외모와 사근사근한 태도를 보고 홍제비라고 별명을 붙였었다.

'누님, 누님'하면서 우리를 잘 따랐고 꽤 박식하다. 평양외국어대학교를 나왔고 4개 국어를 한다. 다음 스케줄을 기다리며 대기할 땐 재미있는 고사성어도 많이 이야기해 주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기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거라며 홍제비라고 놀렸던 것이다.


그 후로 갈 때마다 우리에게 배정이 안 되었을 때도 반가워하고 차도 같이 마셨다. 더욱이 그도 우리집 아이와 같은 나이의 딸을 두고 있어 서로 사진도 보여주며 아이 이야기도 많이 했었다. 어제 그가 또 우리의 안내원이 되어 공항에 마중 나왔던 것이다.

평양 음악 무용대학 오케스트라와 리허설하는 임미정.
평양 음악 무용대학 오케스트라와 리허설하는 임미정.임미정

9시반

한대뿐인 리허설 피아노 쟁탈전


호텔에서 15분 정도 차를 타고 가는 거리의 중앙 노동자회관으로 가서 평양 음악 무용 대학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했다. 평양음악무용대학은 북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무용인을 양성하는 곳으로 5살부터 박사과정까지의 학생을 교육한다. 북의 대표적인 예술인들은 거의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케스트라에는 평양음악무용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원(학교선생을 그렇게 부른다)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단원으로 활동한다. 나는 그동안 조선국립 교향악단이나 윤이상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했었는데 이 교향악단과는 처음이다.

우리 재미 예술단은 4명뿐이기에 다른 그룹과 합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언제나 많은 숫자의 단원이 참가하는 재일이나 재중 교포 예술단은 그네들만으로 단독 공연을 한다. 그러나 재미예술단은 숫자가 적어 그해의 참가단체 상황에 따라 다른 그룹과 묶여서 공연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인도네시아 민속 무용팀, 몰도바에서 온 소프라노와 플류티스트, 모스크바에서 온 소프라노(아버지가 한국인인 루드밀라 한), 핀란드에서 온 작곡가와 성악가,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고통련-고려인 통일 연합)무용단원들과 같이 7조에 배정되어 공연을 하게 되었다. 이 중 우리와 핀란드팀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다른 팀은 무용공연을 한다.

중앙노동자 회관 또한 처음 공연해보는 장소인데, 평양에서는 고전음악 전문연주홀인 모란봉극장만 빼 놓고는 다양한 공연을 치루는 다용도홀이라 무대 뒤가 또하나의 무대일 수 있을 만큼 넓다. 각 그룹마다 방을 배정받고 옷이며 악기들을 놓아둔 채 며칠동안 이곳에서 계속 공연을 할 것이다.

고통련 단원과 함께한 이준무 선생
고통련 단원과 함께한 이준무 선생임미정
우리 방에는 파코라는 브랜드(북쪽에서 자체 생산하는 피아노이다)의 피아노가 하나 있는데 이것이 무대 외에서 리허설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피아노라, 공연기간 내내 이 피아노를 가지고 각국의 음악인이 내 방에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내가 이번에 준비해온 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북 작곡가 윤충남의 피아노 협주곡 ’결전의 길로’ 라는 곡이다. 평양음악무용학교에서 피아노 교원이 나와서 나의 북한 작품에 대한 해석을 도와주었는데 음 하나씩 눌러야 하는 강도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하다. 더군다나 무대위의 피아노는 액션이 너무 딱딱하고 소리가 퍼지지 않는다. 이런 피아노로 소리를 크게 내려고 했다가는 근육을 다치기 십상이겠다….

그런데도 일단 리허설이 시작되니 억지로라도 크게 내려고 팔을 무리하게 되었다. 항상 이런 것은 위험 신호이다. 이렇게 뻑뻑한 근육상태가 되면 연주 중 심리적으로 경직되어 음악 표현이 안되고 자칫 연주 중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연주를 심각하게 망치는 악몽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많은 연주 경험에도 불구하고 환경으로 인한 이런 공포증이 불시에 습격하는 것이다. 연출가와 담당자들이 계속 우리에게 좋은 연주를 부탁한다고 하는 말이 부담스러워지고…. 우리 7조는 내일 개막식 후 다음날인 첫날 공연(11일)이 방송된다는 것 같았다. 어휴, 마지막 공연쯤에 오면 어때서라고 속으로 불평해보지만 할 수 없는 일. 오늘 내일은 정말 발 뻗고 자기 틀렸겠다….

남자친구 생겨 신이난 미향이

평양 음악 무용대학 교원 오미향. 나의 북한 곡 연주해석을 도와 주었다.
평양 음악 무용대학 교원 오미향. 나의 북한 곡 연주해석을 도와 주었다.임미정
나를 도와주기 위해 나온 오미향 선생은 23살의 젊은 교원이다. ‘결전의 길로’에 대한 내 해석이 이곳에서 일반적으로 치는 스타일과 다른가 보다. 당연하지, 이 곡은 이곳에선 워낙 유명한 곡이라 여기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것이다. 악보만 보고 해석한 나의 개인적인 스타일과 어찌 같겠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이라고, 이런 경우는 내 솔로도 아닌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는 곡이라 일단 그 쪽 스타일로 내가 바꾸는 것이 좋겠다. 오케스트라와 리허설 시간도 충분하지 않으니 말이다.

오미향 선생은 사실 내 학생 또래의 나이였으나 선생으로 내게 소개되었으므로 나는 깍듯하게 대했다. 그런데 첫날 이후로는 나더러 '언니, 언니'하면서 따르게 되었다. 나도 미향아라고 이름을 부르면서 축전 기간 내내 자매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미향이는 몰도바 예술단 반주도 맡았기에 그들의 리허설을 내방 피아노로 해야 했음에도, 되도록 내게 연습시간을 주느라 내가 일로 나갔을 때만 피아노를 살짝 사용했다.

그리고 내가 관통(무대 리허설)을 할 때마다 악보를 들고 옆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사실 마지막 공연때에는 나도 그 곡을 꽤 멋지게 그들의 스타일대로 칠 수 있었는데 오미향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미향이는 TV에 우리 연주가 나올 때마다 자기 부모와 오빠네 집, 친구집에 전화를 걸어 빨리 보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인민 예술가 피아니스트 민병관 선생님
인민 예술가 피아니스트 민병관 선생님임미정
미향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참으로 순수하고 좋은 사람이다. 5살때부터 뽑혀서 음악공부를 한 만큼 굉장히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공부한 피아노 곡들도 내가 대학에서나 유학생활 중 공부한 레파토리와 거의 비슷하다. 교원을 하면서 국제 콩쿨도 나가보고 싶어 연습을 많이 한단다. 그가 치는 모짜르트 연주를 들었는데 잠깐이었지만 스타일과 취향이 제대로 공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인민 예술가 칭호(최상급의 예술가에게만 수여된다)를 갖고 있는 민병관 선생님도(그분도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원이시다) 잠깐 리허설에 얼굴을 보이셨는데 이분은 젊었을 때 바르샤바의 쇼팽음악원에서 공부하셨다 한다. 그렇게 유럽의 음악원에서 수학하신 분들이 학교에서 가르치기에 폐쇄적으로 보이는 북한 사회에서도 서방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 같은 것들이 전수되고 있나 보다.

미향이는 요즈음 남자친구가 생겨 신이 나 있었다. 외국어를 잘하고 컴퓨터를 전공한 남자란다. 그런데도, 연주를 하느라 예쁜 조선옷을 많이 입고 다니니까 집 앞에서 한시간씩 기다리는 다른 남자들도 있다고 홍동무가 귀뜸해 주었다. 미향이가 연주할때는 조선옷(한복)을 입고 친다. 북에서는 한복이 공식적인 연주복이다. 나도 시도해보려 했었지만 가슴이 조이고 불편해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한쪽 어깨가 드러난 빨간 드레스를 입었는데 그쪽분들에게는 아무래도 한복보다는 안 예쁘게 보이는 것 같다.

"조선옷이 어울릴텐데 한번 입으시라우"

회식 앞줄 왼쪽이 그 연출가이다. 턱시도 때문에 펄펄 뛰었던. 오른쪽 앞은 원래 상임지휘자, 뒤는 첼로. 모두 북쪽 연주자다.
회식 앞줄 왼쪽이 그 연출가이다. 턱시도 때문에 펄펄 뛰었던. 오른쪽 앞은 원래 상임지휘자, 뒤는 첼로. 모두 북쪽 연주자다.
궁금해서 꽤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분들은 연주할 때는 진심으로 한복을 제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연출가(무대감독)도 내게 ‘조선옷이 어울릴텐데 한번 입으시라우’한다.

이 연출가는 4번째 공연때 내가 한복을 입겠다고 하고선 컨디션이 안 좋아 드레스도 아닌 남자 턱시도같이 생긴 바지 정장을 입고 연주했더니 거의 기절하려고 했단다.

그 정장이 멋있다고 해준 홍동무에게 신경질을 내더라나. 홍동무는 내편을 들며 원래 미국사람(재미교포)은 저렇게 멋대로라고 리해(이해)하라고 했단다.

하필 그 연주때 축전 위원장이며 높은(?) 사람들이 참관했었다니 미안하게도 연출가가 속을 많이 끓였던 것 같다.

아무튼 연주때 한복을 입을 수는 있으나 내게는 아직도 불편하고 보기부터가 어색하니 습관이란 것이 그런 것인가? 하지만 후에는 생각해서 시도해 보려 한다.


안내원 홍영석. 우리는 그를 일명 '홍제비'라고 불렀다.
안내원 홍영석. 우리는 그를 일명 '홍제비'라고 불렀다.
오미향, 임미정, 김진국
오미향, 임미정, 김진국
우리 네명. 이준무 임미정 이동우 두영균.
우리 네명. 이준무 임미정 이동우 두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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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기자는 피아니스트로서 현재 울산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다. 귀국전 14년간 뉴욕에 거주, 평양에서의 연주 및 뉴욕에서의 북한 음악 연주등을 통해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다. 2002년 그의 피아노 독주회시 아리랑과 내고향의 정든 집 등 북한의 피아노곡을 국내 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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