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다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정신지체인 성인기 자녀의 사회적 자립을 위한 한·독·일 '국제부모교육세미나'

등록 2003.04.24 23:42수정 2003.04.2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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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용

지난 23일 오후 1시 이화여대 이화삼성교육문화원 8층 회의실에서 한·독·일 3개국이 함께하는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200여명의 청중이 모인 이날 행사는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소장 유병주)가 마련한 것으로 성인기 정신지체인의 자립을 위한 정부와 부모의 지원방안을 모색하는 '국제부모교육세미나'였다.

이날 행사는 세 명의 주제발표와 참석자 전체의 질의응답의 순서로 진행됐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독일연방정신지체인부모회의 연방자문회 부회장 힐데브란트(Hannelore Hildebrand)씨는 '특수한 욕구를 가진 자녀를 위한 부모의 역할 및 독일 부모회 조직의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다.

힐데브란트씨는 '독일정신지체인부모회'는 정신지체장애인과 가족들, 전문가, 지원단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원이 13만명에 이른다고 했다. 이 단체는 정신지체장애인과 그 가족의 복지를 최대의 목표로 모든 정신지체장애인이 가능한 한 자립적으로 살게 하기 위해 필요한 원조나 보호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의 활동으로 인해 1994년 독일연방 헌법에 '누구든 자신의 장애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3조 3절)'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개정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고 한다.

"누구든 자신의 장애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

a 독일측 발제자 힐데브란트 씨

독일측 발제자 힐데브란트 씨 ⓒ 이철용

독일부모회는 '다양하다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라는 모토로 정신지체장애인이 가능하면 많은 비장애인들과 함께 더불어 생활하면서 인성과 능력을 한껏 펼 수 있게 하기 위한 사회통합적 자기구현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정신지체인이 지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비장애인들보다 다소 낮지만 그러나 기뻐하거나, 즐거워하거나, 웃는다거나 슬퍼하는 것들은 동일하며 때론 정신지체인들이 높은 감성적 능력도 갖고 있고 사회적 능력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부모회는 장애를 질병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러한 노력들을 40년 이상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영을 위한 경비는 회원들의 회비와 모금을 통해서 조달하고 있으며 모금을 위한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했다.


힐데브란트씨는 이어 자신의 가정사를 들어가며 정신지체장애인을 둔 가정의 모습을 슬라이드 자료를 보이며 상세하게 설명했다.

23세 미혼모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는데 예상과 달리 생후 11개월이 지나 증상을 발견하고 절망에 빠졌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천사와 같은 물리치료사를 만났고 더디지만 꾸준히 물리치료를 지속했고 3세 때 정신지체인부모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6살때 지체장애인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고 했다.


딸은 현재 가족과 떨어져서 그룹홈에서 생활하며 교통사고로 휠체어 장애인이된 이성 친구를 만나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했다. 그룹홈 생활 이전에는 항상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그룹홈 생활을 통해서 딸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필요한 결정도 스스로 한다고 했다. 힐데브란트씨 부부도 이제 딸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직장생활과 봉사직을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딸의 그룹홈 생활로 부모는 자유롭게 직장생활과 봉사직 감당

a 한국측 발제자 박경숙 원장

한국측 발제자 박경숙 원장 ⓒ 이철용

두 번째 강연을 맡은 한국측 발표자인 국립특수교육원 박경숙 원장은 '발달장애 성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부와 부모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다. 박 원장은 자신이 살펴본 한국의 성인기 정신지체인의 실태를 예로 들며 강연을 시작했다.

"어떤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정신지체 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데리고 있는 어머니로서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집에 누워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직업을 구해야 되는데 다 큰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직장을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발표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은 성인기 정신지체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지원책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인간답게 살 수도 없고 가족들도 평생 장애 자녀로 인한 고통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박 원장은 한국의 성인기 정신지체 장애인의 경우 주거형태는 대규모 시설이나 가정, 최근에 생겨난 그룹홈이 주종인데 대규모 시설은 부모가 없는 경우에 받기 때문에 장애자녀를 둔 가정은 자신의 가정에서 대부분 함께 생활해야 하며 정신지체인을 돌보기 위해 항상 한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고 그렇다보니 자신의 삶을 포기하거나 정신지체인을 포기하고 생활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룹홈의 경우도 사회재활교사가 소수를 돌보기 때문에 삶의 질은 높으나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고 했다.

장애인시설 수용못하는 배타성

한국도 대규모 시설 중심과 가정에서 성인기 정신지체인을 생활하게 하는 것보다 그룹홈의 형태로 독립생활을 유도해야 하는데 현재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고 했다.

그룹홈을 만들기 위해서 부모회나 복지법인등에서 장소를 확보해야 지방자치 기관에서 운영보조를 하는데 부모회 등에서 그러한 재원을 만들기가 힘들고 장애인들에 대한 지역사회의 배타적인 시선들도 그룹홈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도 그룹홈에 대하여 규정을 들먹이며 지나친 규제로 그룹홈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박 원장은 한국의 부모회의 경우 외국에 비해 적극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가와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얻는데 한계를 갖고 있지만 한국도 부모들이 나서서 전문가, 동조자들과 함께 로비를 벌여 정책당국자들과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장애인들을 설득해서 성인기 정신지체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a 일본측 발제자 기타하라 마모루 씨

일본측 발제자 기타하라 마모루 씨 ⓒ 이철용

세 번째 발제자인 기타규슈 데오쯔나쿠 육성회 기타하라 마모루 이사장은 '일본에서의 장애인 대책과 운동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발제를 했다. 일본에서는 2000년 5월 새롭게 사회복지법이 제정되고 신체장애인복지법과 지적장애인복지법등이 개정되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고 했다. 관련법규의 개정으로 이용자의 입장에서 사회복지제도가 구축되고 그로인해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사회복지사업이 충실해지고 활성화 되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장애인복지에 관해 그간 '행정주도'에서 이용자(장애인)가 자신들의 의지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로 변하고 있으며 아무리 장애가 심하더라도 어느지역에서나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변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세미나는 한국, 독일, 일본 발제자들의 발표에 이어 참석자들의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부분 정신지체장애인을 둔 부모들로 강연자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한 뜨거운 질문 공세가 끊이질 않았다.

한국의 부모들, 적극적인 활동 절실

이날 세미나를 통하여 성인기 정신지체인 자녀를 둔 부모들과 아동기 정신지체인을 둔 부모들의 생각의 차이가 많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의 경우 아동기 정신지체인을 위한 교육과 프로그램들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성인기 정신지체인을 위한 프로그램들은 미미한 실태이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 유병주(45) 소장은 이번 국제세미나를 열게된 동기를 "전국을 돌며 정신지체인 자녀를 둔 부모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의 한계를 많이 느꼈고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부모의 문제가 크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복지 선지국의 부모회의 활동을 통해 한국의 부모들도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한국에서도 장애인이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개최하게 되었다"며 "특히 장애인의 문제를 전문가 집단만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해결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유소장은 "첫 번째 행사지만 모두가 좋은 반응을 보였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형태의 국제적인 행사들을 통해 선진 사회복지를 배우고 도전 받는 기회를 가져 앞으로 20년 앞을 내다보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며, "특별히 이번 세미나는 행정가, 전문가, 부모 등이 한자리에 모인 것에도 큰 의가 있다"고 했다.

발제자인 독일의 힐데브란트씨는 "준비한 많은 것들을 질의 응답 시간에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자신도 장애아동을 둔 부모로, 거리를 많이 돌아다녀 보았지만 장애인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하며 장애인들은 모두 어디 있냐고 반문했고 거리를 다니며 층계, 턱 등이 높고 많은 것을 보고 한국의 장애인들의 불편을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전국에 하나뿐인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의 필요성은 더 강조된 것 같다. 더 나아가 서울시만이 아닌 전국의 그룹홈과 정신지체인, 부모들을 함께 어우를 수 있는 전문 기관이 설립되서 한국의 정신지체인들도 자유스럽게 생활하고 가족들도 자유로운 가운데 일하고 봉사할 수 있는 날들이 오길 손꼽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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