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0일에 완공될 예정인 안산종합운동장의 조감도류종수
"행정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뭐 다양하게들 해석하는데요. 행정은 다름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겁니다. 정해진 규정에 의해서 올바르게 집행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죠."
섣불리 행정은 '서비스'니 '공익'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렸던 기자의 입이 순간 무안해졌다.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규정의 '정'을 곧게 '행'하는 것이 바로 행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다소 회한에 찬 어투로 이렇게 말한 사람은 안산시 토목직 공무원 김아무개(48)씨다. 지난 23일 최초로 부패방지위원회로부터 자신을 하향전보시켰던 소속 시장을 과태료 조치에 처하는 의결을 받아낸 '문제'의 공익제보자다. 기자는 김씨를 지난 24일 안산 중앙역에서 만나 지금까지 벌어져왔던 사건의 내막과 심경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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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공무원 경력은 올해로 2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한 그는 현재 6급 주사 연수만 10년이 다 돼간다. 그 동안 억 단위 이상의 수많은 공사를 담당해왔던 베테랑 공무원이었다고 자부하는 그는 97년에 안산종합운동장이라는 대규모 건립업무를 맡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IMF가 터지자 공사를 위한 재원마련이 어려워졌고 이를 전담했던 김씨는 공사중지를 건의했다. 이 때부터 그의 외롭고 힘든 싸움은 시작됐다.
IMF시절, 지방경제와 실업자 문제보다 다급했던 운동장 건립공사
운동장 설계비 지출문제로 상관(당시 시장은 95년 첫 민선시장에 당선된 송모씨. 그는 이후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다시 시장으로 당선됨)과 대립하던 그는 바로 다음해 안산시 상수도 사업소로 전보된다.
그리고 2000년 12월경, 안산시에 대한 감사원 정기감사 때 종합운동장 건립문제를 감사원에 제보했고, 감사원은 시측에 '안산시종합운동장건립사업 추진 부적정'이라고만 통보했다. 그래도 사업은 계속 진행됐다. 보다못한 김씨는 다시 2001년에 YMCA를 비롯한 안산시 시민단체에 운동장 설계비 지출이 부당했다고 제보했다.
이어 시민단체는 한 달 넘게 진행된 독자적인 진상조사를 통해 2001년 7월 운동장 건립의혹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내놓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감사원의 재감사를 요청했다. 당시 시민단체가 내놓은 조사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조목조목 지적돼 있다.
1)IMF 상황에서 종합운동장 건립이 투자우선순위가 아니다. 안산시 98년 시 운영방향에도 중소기업 육성지원 및 실업대책이 우선 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2)IMF 상황에서 안산시의 종합운동장 재원조달은 사실상 어려웠다. 98년 안산시 재원판단보고서는 IMF로 세입이 향후 5년간 3,432억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3)월드컵 경기장으로 유치가 안된 조건에서 활용도가 극히 낮은 종합운동장을 무리하게 추진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4)실시설계를 1~2년 유보하더라도 법적문제 발생소지가 미약하다.
5)지방재정투융자 심사 전 실시설계 추진의 타당성 문제(사업비 50% 이상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재정투융자심사를 받지 않은 것은 명백한 행정절차와 법을 위배한 조치임. 이후 행자부로부터 종합운동장 투융자심사에서 재검토 지시를 2번이나 받음.)
6)안산시는 정상적인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감사원으로부터 받았다.
7)설계비 과다지출 문제(타 지역과 비교할 때 20~30억 정도 과다하게 지출됐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지적사항이 적혀있는 보고서를 받은 감사원은 2002년 4월 2일에 재감사에 들어갔으나 관련자 5명에 대하여 '징계시효 2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주의처분'하는 선에 감사를 종결지었다.
결국 운동장 건립업무가 자신의 손을 벗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김씨가 여기서 '싸움'을 멈춘 건 아니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2002년 1월 '우리 역사상 내부고발자 보호 보상제도를 최초로 시행한다'는 거창한 구호 속에 대통령 소속하의 부패방지위원회(당시 위원장 강철규, 현 공정거래위원장)가 출범했다.
그리고 그 해 4월 9일 김씨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의 문을 두드렸다. '안산종합운동장 설계용역비 부당집행'과 관련하여 민선 1기 안산시장과 당시 부시장 등 4명을 부패혐의대상자로 신고한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부방위로부터도 '요구인의 신고사건에 대하여 감사원이 2회에 걸쳐 감사하였고, 그 외 '새로운 위법사항'이 없는 사유로 2002. 8. 20. 불이첩 처리하였다'는 답변을 받아야 했다.
6급 근무연수 10차 공무원의 전례가 없는 동사무소 하향전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했을 뿐인 그가 이 싸움 끝에 얻은 것이라곤 본청에서 동사무소로의 하향전보였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송 시장은 대규모 인사를 단행(2002년 10월 22일)하면서 '조직에 밉보인' 그를 전보제한 기간 1년도 지키지 않고 같은 해 11월 1일 토목직과는 거리가 먼 반월동사무소 주무로 보내버린 것이다. 석연치 않은 두번째 인사조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