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소리가 나면 긴장 부터 해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8)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전미영 간호사의 세상 반쪽 이야기

등록 2003.04.26 12:00수정 2003.04.2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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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자정이 조금 남은 시간이다.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119구조대가 아주머니 한분을 모시고 왔다. 아주머니는 가쁜 숨을 쉬며 두 손을 벌벌 떨었다. 아주머니는 부부싸움을 하다 남편에게 맞아 이곳에 실려 왔다.


새벽 세 시. 감기 때문에 온 어린아이, 과다음주로 쓰러져 온 아저씨, 다리가 아프다고 찾아온 할아버지, 각기 다른 나이의 사람들이 다른 이유로 응급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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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전미영 간호사(26)는 응급실에서 일한지 벌써 횟수로 5년째다.

“응급실은 오래 있을 곳이 못돼요. 죽음에 대해서 무덤덤해져요. 저도 처음엔 죽은 환자들을 보면 보호자분이랑 같이 울었어요. 근데 그러다 선배들에게 혼났어요.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니까 이성을 지켜야 한다고요. 별의 별 환자들도 많이 와요. 술 먹고 싸우다 오시는 분들은 욕도 하고 함부로 말씀하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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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응급실엔 금기 아닌 금기가 있다. 환자가 없어 한가하단 말을 해선 안 된다. 이상하게도 누군가 그 말을 한 후엔 꼭 환자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지없이 누군가의 한가하단 말에 환자들이 몰렸다. 하지만 오늘은 환자가 적은 편. 보통 적게는 10명부터 많게는 20명의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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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녀의 고향은 강원도 정선이다. 지금은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그녀는 중학교 시절부터 독립을 꿈꿨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99년. 드디어 소원하던 독립이란 걸 했다.

그러나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다.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집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며칠 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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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아가씨!”

누워있던 어느 환자가 간호사를 불렀다.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가장 많아요. 그 소리가 제일 듣기 싫어요. 심지어는 '어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많아요. 반말하는 사람들도 진짜 많고. 그래도 아무 소리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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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요즘 환절기라 그런지 감기 때문에 오는 소아환자가 많다. 이 꼬맹이도 감기 때문에 열이 높아 응급실을 찾았다. 그런데 요 녀석 참 웃기다. 치료가 다 끝났는데 지가 머리에 손을 얹더니 열을 재는 시늉을 한다. 그러더니 열이 있다며 걱정을 한다.

꼬맹이 환자들은 주사 놓을 때가 가장 골칫거리다. 주사바늘만 보면 겁을 먹기 때문이다. 그럴 땐 저쪽에 구경거리가 있다고 살짝 시선을 돌리게 한 후 주사를 꾹 놓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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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직업병이요? 특별한 건 없어요. 하루종일 서 있으니까 다리는 튼튼해요."

말은 튼튼한 다리라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조그만 얼굴에 마른 몸. 제 시간에 끼니를 챙겨 먹기가 어렵다. 시간이 없어 하루에 한 끼 먹기도 바쁘다.

또 한달에 8회정도 나이트(새벽)근무를 해야 한다. 그런 그녀에게 식생활은 일정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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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돈이 없어 입원을 시킬 수 없다는 보호자와 의사간의 말다툼이 벌어졌다. 죽을 수도 있어 반드시 입원을 시켜야 한다는 의사 말에 보호자는 모든 것을 책임 질 테니 입원은 시킬 수 없다고 했다.

"돈 때문에 입원 못 시킨다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특히 중국 동포나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데 보험 처리가 안 되니까요. 정말 안타깝죠. 정말 어떨 때는 제 돈으로라도 해 드리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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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녀의 올해 계획은 두 가지. 첫 번째는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드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다. 얼굴도 자주 못 뵙는 부모님께 연락마저 뜸해 늘 구박을 받았다. 작년 카드 사용을 조금 많이 해 고생을 한 탓에 소비를 줄이기로 작정을 했다. 네 달이 다 되어가는 현재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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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녀에게 환자는 어떤 존재인지를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는 주위에 있는 동료 간호사들과 의사를 쳐다보며 "질문이 너무 어려워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선생님! 선생님은 환자가 선생님에게 어떤 존재예요?"

"필요충분조건이지.", "모르죠. 아직은 알아가는 단계잖아요.", "두려운 존재죠. 저 환자는 어디가 아플까?"

응급실에서 일하는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응급구조사가 각기 다른 답을 내놓았다. 모두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그녀. 잠시 후 말했다.

"왜 살아요랑 똑같은 질문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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