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17

선무곡의 위기 (2)

등록 2003.04.26 14:09수정 2003.04.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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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노부가 왜 본곡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는지 짐작하는가?"
"선무곡이야 무림천자성과 동맹을 맺은 문파이니 공격할 이유가 없고, 혹시 북선무곡인 주석교를 공격목표로 정했나요?"

"허허허! 역시 우리 선무곡과 같은 핏줄답네."
"맞았어요? 하하하!"


화담의 칭찬에 이회옥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 무림천자성의 성주 구부시는 주석교를 『악(惡)의 축(軸)』으로 지목하였네. 그리고는 공격할 명분을 찾았지."
"악의 축이라니요? 주석교가 폐쇄적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누굴 공격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그랬지. 수년 전, 주석교는 무림천자성과 한 가지 거래를 한 바 있었네. 그것은 주석교에 부족한 식량을 무림천자성에서 대주는 대신 천뢰탄 개발을 중지하자는 것이었네."
"주석교가 천뢰탄을 만들었다고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걸 만들 능력이 있었나 보네. 주석교에서는 화존궁과 일월마교에 뒤어난 두뇌를 지닌 영재들을 보내 천뢰탄 제조에 대한 비법을 빼왔거든…"
"그들이 그걸 쉽사리 가르쳐 줬을까요?"

"아니지. 일월마교와 화존궁 역시 다른 문파들이 천뢰탄을 지니게 되는 것을 극히 꺼리네. 천뢰탄을 가진 문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어떻게…?"


"이 세상에서 제자들의 두뇌가 가장 뛰어난 문파를 꼽으라면 자네는 어느 문파를 꼽겠는가?"
"글쎄요? 소생이 어찌 그걸…?"

"허허! 자랑 같이 들릴 테지만 우리 선무곡 제자들이 가장 뛰어나다네. 물론 북선무곡도 원래는 하나였으니 주석교의 제자들 역시 뛰어나지. 우리 선무곡 제자들과 자웅을 겨룰만한 문파를 굳이 꼽아보라면 유대문이 있겠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
"예!"


이회옥은 어떤 근거로 선무곡 제자가 가장 뛰어나고 그 뒤를 유대문이 따르고 있는지 궁금하였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주석교에서는 영재를 파견하되 각기 다른 부분을 배워오도록 하였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연구하여 천뢰탄 제조비법을 터득한 것이지. 헌데 이 사실을 눈치챈 것이야."
"왜요? 누가 배신했나요?"

"아니네! 천뢰탄을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네. 그것을 구하려다가 그만 들통이 난 것이지."
"으으음! 그랬군요."

"그런데 무림천자성에서 주석교가 천뢰탄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부족한 식량을 대주기로 한 이유를 아는가?"
"아뇨? 왜 그랬죠?"

"선무곡에는 정의수호대원 삼백칠십여 명이 있네. 만일 주석교가 무림천자성에 의하여 공격당할 경우 그들이 만든 신병기가 가장 먼저 노릴 곳이 어디이겠는가?"
"음! 무림천자성 총단은 너무 멀고, 그렇다면 선무분타…?"

"맞네! 겉으로는 식량이 부족하여 허덕이는 주석교를 돕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었네. 그렇게 함으로서 천하의 문파들로부터 자비롭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지."
"으음! 그렇군요. 어찌되었건 주석교는 마도에 속하니 무림천자성과는 적인데도 먹을 걸 주니까요."

"선무분타를 설치한 것도 겉으로는 우리 선무곡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네."
"어떻게 다르죠?"

"첫째는 주석교에서 천뢰탄을 제조하는지 여부를 감시하려는 것이네. 둘째는 유사시엔 즉각 공격하려는 것이네. 아예 막강한 공격력으로 제압하면 될 것을 왜 안 그러고 있는지 아는가?"
"글쎄요? 소생이 어찌 그걸…?"

"선무곡에 가장 인접한 문파가 어디인지 아는가?"
"그야, 남동쪽에는 왜문이 있고 북쪽으로는 화존궁과 일월마교가 있지요."

"맞네. 주석교는 일월마교와 화존궁과는 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이네. 따라서 정신이 나가기 전에는 그들을 공격할 리가 없지. 그랬다가는 아예 박살이 날 터이니…"
"그럼…?"

"왜문은 오래 전 우리 선무곡을 강점한 후 일월마교와 화존궁과 한판 붙은 적이 있었네. 그러다가 무림천자성의 천뢰탄에 의하여 박살이 난 이후 더 이상 무장(武裝)을 하지 않겠다고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바 있었네."

"그건 소생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왜문은 누가 공격하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병장기만 갖추고 있다고…"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이네. 겉으로야 무장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사시엔 언제든 천뢰탄을 만들 만반의 준비를 다해 놓았네."
"에이, 설마요? 무림천자성에서 그걸 모를 리가 있나요?"

"왜문에게 있어 무림천자성은 원수이나 마찬가지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에게 빌붙어 이 세상의 가장 간사한 알랑방귀를 뀌는지 아는가?"
"흐음! 듣고 보니 그렇군요. 원수가 분명한데 왜 그러죠?"

언뜻 생각해봐도 왜문이 무림천자성에 빌붙어 있는 것을 이상했기에 이회옥은 말꼬리를 흐렸다.

"주석교와 같은 이유 때문이네."
"예에? 그럼 왜문도 천뢰탄을 만들기 위하여…?"

"그렇지. 왜문의 놈들은 타고나기를 간사하게 타고난 놈들이지. 그래서 겉과 속이 다른 것이네. 놈들은 무림천자성에게 당한 것을 결코 잊지 않고 있네. 지금이야 힘에 눌려 꼼짝도 못하는 척하나 두고 보게. 언젠가는 또 다시 숨겨놓은 야욕을 드러내게 될 것이네. 그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글쎄요?"
"무림천자성 만큼 천뢰탄을 가지게 되는 날이네."

"왜문에서도 천뢰탄을 만들 줄 안다고요? 에이, 아니겠죠."
"지난 십 년 동안 노부가 어디에 있었는지 아는가?"

"그걸 어찌 소생이…?"
"신분을 감추고 왜문에 있었네. 그곳에서 놈들이 하는 짓을 똑똑히 보았지. 그런데도 노부의 말이 틀렸다고 하겠는가?"
"으으음!"

바로 곁에서 보고 들었다는데 어찌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이회옥은 침음성을 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림천자성에서도 왜문에 천뢰탄을 만들 재료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런데 왜 그냥 내버려두었죠?"

"중요한 재료 한 가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지."
"그럼 별 문제가 없겠군요."

"아니네. 왜문은 이미 그 재료를 확보해 두었지. 다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네."
"으으음! 큰일이군요."

"왜문에도 정의수호대원들이 적지 않게 주둔해 있네. 만일 주석교에서 신병기로 왜문의 주요처를 공격한다면 그들 역시 화를 면치 못하네."
"왜죠?"

"천뢰탄을 만들기 위하여 준비된 것들이 터지면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이네. 그럼 왜문분타의 정의수호대원들은 박살이 나겠지. 그래서 주석교를 핍박하는 것이네."
"으으음! 그랬군요."

무림천자성의 실체를 깨달은 이회옥은 침음성을 터뜨렸다.

물이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은 누구나 확신하는 일이다. 이처럼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확신하게 하는 것은 진리밖에 없다.

최근 들어 흔들리기는 하였지만 어린 시절 이후 지금껏 무림천자성이 지상 최고의 선(善)이자 진리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비단 자신 뿐만은 아닐 것이다. 천하의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고, 현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도 직접 듣고 보지 않았다고 누군가가 이야기만 해주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일종의 세뇌를 당한 셈이다. 이런 생각이 스치자 이회옥은 흠칫 떨었다. 음모라면 이보다도 더 큰 음모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무튼 노부가 자네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린 것은 우리 선무곡을 위해 큰 일을 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네."
"아이구, 아닙니다. 소생은 그럴만한 힘이 없습니다. 뭔가 잘못 아셨을 것입니다."

"노부의 선조가 누구신지 아는가?"
"글쎄요?"

"허허! 그럼 노부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게. 본가의 조상 중에 홍계관(洪繼寬)이라는 함자를 지니신 어른이 계셨네…"

화담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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