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개마고원
부유하고 필요한 20%의 주민과 가난하고 기생하는 80%의 주민이라는 끔찍한 디스토피아는 물을 놓고도 만들어집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10억이 넘는 사람들이 더러운 물을 먹고 있으며 30억 가량이 제대로 된 상/하수도 시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2025년이 되면 세계 인구는 지금보다 26억이 늘어날 전망이지만, 그 가운데 3분의 2가 심각한 물 부족 속에서, 그리고 3분의 1이 절대적인 물 기근 속에서 살아갈 것으로 예상된다"(51쪽). 디스토피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물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어디부터 바로잡아야 할까요? 각 가정에서 물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개인의 물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는 해도, 각 가정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소비하는 물의 양은 전체 물 소비량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민물 사용량이 많은 또 다른 곳은 공업 부문으로, 이곳에서 소비하는 물은 전체 물 소비량의 20∼25%에 달하며, 이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추세로 나간다면 공업용수 소비량은 2025년까지 2배로 증가하리라 예상된다"(27쪽).
특히 전혀 물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첨단산업에서 물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에는 물이 40만 리터 필요하다. 컴퓨터 제조업체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탈이온수를 사용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을 찾는다. 미국에서만 볼 때, 컴퓨터 제조업체가 1년 동안 소비하는 물은 얼마 안 가서 1조 5천억 리터를 넘어서고 폐수도 3천억 리터가 넘게 발생하리라고 예상된다. 많은 사람들이 '청정산업'이라 생각하는 첨단산업은 그 짧은 역사 동안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을 배출했다"(28쪽). 인터넷 관련 산업과 반도체 관련 산업에서 강국이 되는 만큼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물은 농사를 짓는데 이용됩니다. 그런데 농업과 관련해서도 일반 농가가 아니라 대규모로 기업화한 농업방식이 많은 물을 사용합니다.
"기업화된 영농에서 사용하는 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기업영농은 물을 남용하고 낭비하기로 유명하다"(28쪽). 산업이 자리잡은 곳에는 낭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뭘까요? 환경부 여론조사에 나오듯이 댐을 건설하는 걸까요?
"댐 건설로 식생이 물 속에 잠겨 부패하면 두 가지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 중에 다량 배출된다. 댐 건설이 지구 온난화도 부추기는 셈이다.…뿐만 아니라 저수지 바닥을 누르는 엄청난 물 무게로 인해 지각이 함몰되어, 지진이 발생하기도 한다. 현재 70개 정도의 댐이 지진 현상과 관련되었다는 증거가 수집되었다"(87∼88쪽). 댐 건설은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깨끗한 물이 부족하자 마실 물은 상품으로 변했습니다(지금은 깨끗한 공기도 상품이지요). 이제 우리는 마실 물을 찾기 위해 우물가나 강가가 아니라 할인마트나 편의점을 찾아야 합니다.
"현재 거래되는 생수는 연간 약 220억 달러로 추정되며,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규제를 덜 받는 분야로 손꼽힌다. 1995년 이해 생수 판매량은 매년 20%의 상승률을 보이며 급성장했다. 2000년에는 세계적으로 890억 리터에 가까운 양이 거래되었다"(157쪽). 생수회사들은 땅의 가슴에 파이프를 꼽고 마구잡이로 물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생수회사가 토지를 소유했을지라도 그 땅 밑을 흐르는 지하수를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땅이 가라앉을 때까지 물을 뽑아내고 결국은 그 젖줄을 끊어 버립니다.
상품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자연히 불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집니다. 에너지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의 부족과 불평등도 선진국에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선진국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대개가 물을 당연한 것인 양 받아들일 뿐 아니라, 물 값이 비싸다 해도 이를 살 여유가 된다. 또한 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수영장, 물을 한없이 뿌려야 하는 잔디와 골프장, 그리고 한 번에 물이 18 리터나 들어가는 변기를 사용하는 생활방식을 유지하다 보니 다량의 물이 소비된다. 소비 불균형을 초래하는 또 다른 주요 요인은 산업시설이다. 세계화로 인해 산업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중이지만, 산업 시설은 여전히 북반구에 집중되어 있다. 일단 산업시설이 들어서면 물 소비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제3세계에서는 여전히 소비되는 물의 상당 부분을 농업용수가 차지하고 있지만, 북아메리카에서는 산업시설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이 농업용수의 양과 맞먹으며, 유럽에서는 농업용수보다 2배가 많은 양의 물이 산업시설에서 사용되고 있다"(100쪽). '계급'이 소멸했다는 주장은 환상이거나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편에서는 수도요금을 인상해서 물을 아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요금을 인상하면 사용량이 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사용량이 줄까요? 부유한 계급들은 아랑곳하지 않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리고 물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 자체가 물을 상품으로 만드는 짓입니다. 정말 물의 사용량을 줄이려면 많이 쓰는 사람이 더 큰 부담을 져야 합니다.
"지역공동체 자체적으로 해당 지역의 물 수요를 결정하고, 그 어떤 가격 책정도 기본적 수요가 충족된 이후에 실시해야 하며, 각 가정과 기관 그리고 공공기관과 사기업은 해당지역의 물 기금에 수도요금을 일시불로 지불하되 액수는 기준으로 결정한다. 또한 물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정해놓은 일정한 사용량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각 가정이나 기관의 수도요금이 많이 올라가야 하며, 공동체가 정해놓은 한도를 초과해 물을 사용할 경우에는 벌금을 물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업적 그리고 공업적 목적으로 다량의 물을 소비하는 업체에게는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그 세금이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357∼358쪽). 책임은 '가중치'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는 분명 '개인'의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개인은 홀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사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는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고통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듯이 문제의 해결책은 사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숨기는 알리바이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송사리가 헤엄치고 가재가 숨어있던 개울은 이제 머리 속의 기억으로만 남았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아쉬워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랬던 기억을 놓치지 않고 망각과 싸우는 것이고 그 기억을 다시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상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쓰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같이 나눴던 물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이 실현된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블루 골드 - 지구의 물을 약탈하는 기업들과의 싸움
모드 발로 & 토니 클라크 지음, 이창신 옮김,
개마고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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