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인류의 공동재산입니다

모드 발로, 토니 클라크/ 이창신 옮김, <블루골드>, 개마고원, 2002.

등록 2003.04.27 12:23수정 2003.04.2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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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아껴쓰자란 말은 너무나 당연한 명제입니다. 지구상의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려서는 안됩니다. 그건 우리 모두의 공동재산일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써야 할 미래의 재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낭비하는 만큼 부족한 사람이 생기고 미래에는 결핍에 시달릴 겁니다.

너무 가까우면 그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기 어려운 걸까요? 부모님의 사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 소중함을 느끼기 어렵듯이 물의 가치와 소중함도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은 아주 소중한 자원입니다. 인간 몸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물이기에, 며칠을 굶으며 참을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곤 하루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세계화 이후 인류가 처한 엄청난 고통들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하나씩 드러나고 있고 그 고통이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물의 부족도 그런 고통 중 하나입니다. 2003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해이고(2003년 세계 물의 해 공식 홈페이지) TV와 라디오 방송은 물을 절약하자는 공익광고를 계속 내보내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도 물을 아끼자는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물을 아끼는 것은 일상의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환경부 홈페이지의 여론조사(cyber poll)를 보면 "물부족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체의 55%가 댐 건설, 30%가 물 절약 생활화, 11%가 중수도 설치 확대, 3%가 지하수 이용 확대라고 대답했습니다(4월 27일 기준). 물을 절약하지 않으면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걸까요? 댐을 짓는다는 핑계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몰아냈던 과거의 아픔을 떠올립니다. 이 여론조사는 의견을 수렴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듯 합니다.

이런 기억도 떠오릅니다. 80년대 말 생태계 파괴가 쟁점으로 떠오르자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가정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회의 시스템 자체를 생태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했었습니다. 가정에서 버리는 쓰레기와 폐수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규모를 볼 때, 가정만의 노력으로 파괴를 막기 어렵습니다. 공장과 골프장 등 구조적인 문제점을 같이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전체 구조의 문제점을 은폐하는 '알리바이'로 자주 사용됩니다. 아직도 우리는 그런 알리바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모드 발로(Maude Barlow)와 토니 클라크(Tony Clarke)는 <블루 골드>라는 책에서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이들이 보기에 물을 부족하게 만드는 주범은 '자본의 세계화'입니다. 자유시장경제를 유일한 경제체제로 선언한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는 자유롭게 이용해야 할 인류의 공동유산인 물을 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세계 각국 정부들은 자신들의 자원인 물을 보호할 책임을 사기업들에게 넘겨버렸다. "물을 교역가능한 '상품'으로 규정함으로써, 그리고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제20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함으로써, 세계무역기구는 세계적인 물 수출기업의 손에 놀아나는 꼴이 되고 말았다.…이 기구의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에서는 물을 '서비스'로 보기도 한다. 이 목록에는 물에 관한 서비스 수백여 가지가 나열되어 있는데, 그중 몇 가지만 열거해 보면 '민물 서비스', '하수도 서비스', '오폐수 처리', '자연과 경관 보호', '수도관, 수로, 대형 저장고 건설', '지하수 측정', '관개시설', '댐', '물 운송 서비스' 등이다"(258쪽).

책표지
책표지개마고원
부유하고 필요한 20%의 주민과 가난하고 기생하는 80%의 주민이라는 끔찍한 디스토피아는 물을 놓고도 만들어집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10억이 넘는 사람들이 더러운 물을 먹고 있으며 30억 가량이 제대로 된 상/하수도 시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2025년이 되면 세계 인구는 지금보다 26억이 늘어날 전망이지만, 그 가운데 3분의 2가 심각한 물 부족 속에서, 그리고 3분의 1이 절대적인 물 기근 속에서 살아갈 것으로 예상된다"(51쪽). 디스토피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물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어디부터 바로잡아야 할까요? 각 가정에서 물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개인의 물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는 해도, 각 가정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소비하는 물의 양은 전체 물 소비량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민물 사용량이 많은 또 다른 곳은 공업 부문으로, 이곳에서 소비하는 물은 전체 물 소비량의 20∼25%에 달하며, 이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추세로 나간다면 공업용수 소비량은 2025년까지 2배로 증가하리라 예상된다"(27쪽).

특히 전혀 물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첨단산업에서 물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에는 물이 40만 리터 필요하다. 컴퓨터 제조업체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탈이온수를 사용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을 찾는다. 미국에서만 볼 때, 컴퓨터 제조업체가 1년 동안 소비하는 물은 얼마 안 가서 1조 5천억 리터를 넘어서고 폐수도 3천억 리터가 넘게 발생하리라고 예상된다. 많은 사람들이 '청정산업'이라 생각하는 첨단산업은 그 짧은 역사 동안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을 배출했다"(28쪽). 인터넷 관련 산업과 반도체 관련 산업에서 강국이 되는 만큼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물은 농사를 짓는데 이용됩니다. 그런데 농업과 관련해서도 일반 농가가 아니라 대규모로 기업화한 농업방식이 많은 물을 사용합니다. "기업화된 영농에서 사용하는 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기업영농은 물을 남용하고 낭비하기로 유명하다"(28쪽). 산업이 자리잡은 곳에는 낭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뭘까요? 환경부 여론조사에 나오듯이 댐을 건설하는 걸까요? "댐 건설로 식생이 물 속에 잠겨 부패하면 두 가지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 중에 다량 배출된다. 댐 건설이 지구 온난화도 부추기는 셈이다.…뿐만 아니라 저수지 바닥을 누르는 엄청난 물 무게로 인해 지각이 함몰되어, 지진이 발생하기도 한다. 현재 70개 정도의 댐이 지진 현상과 관련되었다는 증거가 수집되었다"(87∼88쪽). 댐 건설은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깨끗한 물이 부족하자 마실 물은 상품으로 변했습니다(지금은 깨끗한 공기도 상품이지요). 이제 우리는 마실 물을 찾기 위해 우물가나 강가가 아니라 할인마트나 편의점을 찾아야 합니다. "현재 거래되는 생수는 연간 약 220억 달러로 추정되며,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규제를 덜 받는 분야로 손꼽힌다. 1995년 이해 생수 판매량은 매년 20%의 상승률을 보이며 급성장했다. 2000년에는 세계적으로 890억 리터에 가까운 양이 거래되었다"(157쪽). 생수회사들은 땅의 가슴에 파이프를 꼽고 마구잡이로 물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생수회사가 토지를 소유했을지라도 그 땅 밑을 흐르는 지하수를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땅이 가라앉을 때까지 물을 뽑아내고 결국은 그 젖줄을 끊어 버립니다.

상품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자연히 불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집니다. 에너지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의 부족과 불평등도 선진국에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선진국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대개가 물을 당연한 것인 양 받아들일 뿐 아니라, 물 값이 비싸다 해도 이를 살 여유가 된다. 또한 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수영장, 물을 한없이 뿌려야 하는 잔디와 골프장, 그리고 한 번에 물이 18 리터나 들어가는 변기를 사용하는 생활방식을 유지하다 보니 다량의 물이 소비된다. 소비 불균형을 초래하는 또 다른 주요 요인은 산업시설이다. 세계화로 인해 산업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중이지만, 산업 시설은 여전히 북반구에 집중되어 있다. 일단 산업시설이 들어서면 물 소비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제3세계에서는 여전히 소비되는 물의 상당 부분을 농업용수가 차지하고 있지만, 북아메리카에서는 산업시설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이 농업용수의 양과 맞먹으며, 유럽에서는 농업용수보다 2배가 많은 양의 물이 산업시설에서 사용되고 있다"(100쪽). '계급'이 소멸했다는 주장은 환상이거나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편에서는 수도요금을 인상해서 물을 아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요금을 인상하면 사용량이 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사용량이 줄까요? 부유한 계급들은 아랑곳하지 않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리고 물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 자체가 물을 상품으로 만드는 짓입니다. 정말 물의 사용량을 줄이려면 많이 쓰는 사람이 더 큰 부담을 져야 합니다.

"지역공동체 자체적으로 해당 지역의 물 수요를 결정하고, 그 어떤 가격 책정도 기본적 수요가 충족된 이후에 실시해야 하며, 각 가정과 기관 그리고 공공기관과 사기업은 해당지역의 물 기금에 수도요금을 일시불로 지불하되 액수는 기준으로 결정한다. 또한 물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정해놓은 일정한 사용량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각 가정이나 기관의 수도요금이 많이 올라가야 하며, 공동체가 정해놓은 한도를 초과해 물을 사용할 경우에는 벌금을 물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업적 그리고 공업적 목적으로 다량의 물을 소비하는 업체에게는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그 세금이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357∼358쪽). 책임은 '가중치'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는 분명 '개인'의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개인은 홀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사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는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고통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듯이 문제의 해결책은 사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숨기는 알리바이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송사리가 헤엄치고 가재가 숨어있던 개울은 이제 머리 속의 기억으로만 남았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아쉬워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랬던 기억을 놓치지 않고 망각과 싸우는 것이고 그 기억을 다시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상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쓰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같이 나눴던 물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이 실현된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블루 골드 - 지구의 물을 약탈하는 기업들과의 싸움

모드 발로 & 토니 클라크 지음, 이창신 옮김,
개마고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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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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