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작은 선거이기는 하지만 이번 재보선 결과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개혁세력이 단일한 신당을 만들고 그에 걸맞은 인물이 선거에 나서면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을 석권할 수 있고, 지역주의의 벽이 견고한 지역도 돌파할 수 있다.(한겨레 4/28)"
4.24 재선거에서 당선된 유시민 의원의 말이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유시민 의원은 당선에 이르기까지 많은 장벽을 돌파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대 후보에 비해 열악한 조직력, '호남소외론'의 대두로 인한 호남표 분열 가능성, 저조한 투표율 등 결코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조건을 그는 극복해 냈고 결국 당선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유시민'이라는 인물이 지닌 개혁성에 기반한 상품적 가치가 존재했음을 부인할 수 없기에, 유 의원의 이러한 진단은 일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유시민 의원의 당선과 맞물려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범 개혁신당론'논의에 있어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사실 '범 개혁신당론'은 그 의의만 놓고 보자면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논리이다.
정당이라면 모름지기 이념, 계급, 세대, 성 등에 근거한 사회적 균열에 뿌리를 내려야 함에도, 한국의 정당체제에는 이러한 요소들보다 '지역'이 중요한 변수로 자리를 차지해 의회민주주의를 왜곡해 왔다. 그러므로 이제는 개혁 인물을 중심으로 새 정당을 구성해 지역주의를 돌파하고 의회민주주의를 개선하자는 논리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나는 이러한 맥락에 충실히 근거한 '개혁신당'논의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찬성한다. 그러나 현재 개혁신당의 창당과 관련하여 진행되는 논의는 '특정 정치세력의 배제'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정 정치세력'이란 소위 민주당의 '구주류'로 분류되는 인사들을 의미한다. 나는 이들을 배제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지지층의 분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점에 대해 개혁신당을 추진하는 인사들의 인식이 지나치게 낭만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서두에 언급한 유 의원의 말은 '결정적 승인'을 간과한 데에서 도출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 결정적 승인이란 고양시 덕양 갑 민주당 지구당에서 당원과 대의원에 의해 민주당의 후보로 선출되었던 안형호 후보의 불출마이다.
만약 안 후보가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더라면, 그때도 이 게임에서 유시민 의원이 승리했으리라고 장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낙선한 한나라당 이국헌 후보가 하나로국민연합의 문기수 후보(8.8%득표)에게 표를 잠식당하는 바람에 졌다고 토로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언표로는 '개혁세력의 단일한 신당'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이것의 의미에 '구주류의 배제'가 개입되어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개혁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구성해 온 집단을 배제하고, 넓게 보아 지금까지 민주당과 그 접경지역으로 분류된 정치 집단이 둘로 분열됨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지지층도 분열하게 된다. 사실 지금까지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민주당 후보가 얻은 표에는 개혁성을 바라는 유권자와 호남표가 결합되어 있었다고 보는 나로서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긴 어렵다.
호남표라는 것도 결국은 지역주의에 기대고 있는 것이니 구시대적 사고이며, 또 그러한 현실은 '개혁 인사'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지역주의라는 것은 결코 명분에 입각한 '계몽'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현실적으로 '개혁 인사'라는 기준도 무척이나 상대적인 것이기에 함부로 '누구는 개혁적이니까 우리 사람', '누구는 반개혁적이니까 배제되어야 할 사람'이라고 분류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한나라당의 경우는 철저히 이 논리에서 배제한다).
가령 현재 '청산 대상'인 민주당 구주류의 경우, 작년 대선 국면때 노무현 후보를 흔들었던 '후단협'과 '동교동계'의원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작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시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고 있던 이인제 후보를 위협할 때 그들이 예전 97년의 상도동계와는 달리 경선에 개입하지 않았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특검제와 파병안에 순순히 찬성한 '신주류'와 그것에 반대한 '구주류'의 차이는 어떠한 기준에 입각해 개혁적이다 아니다를 나눌 것인가? 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개혁신당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답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민주당의 분열은 이념적, 사상적인 것보다는 정치적, 감정적인 이유로 발생한 측면이 크다. 또 크게 보아 대북 평화번영정책, 사회복지 시스템 강화, 경제적 재분배 구조 확립이라는 참여 정부의 핵심적 과제에 있어서 민주당의 구주류 의원들이 신주류 의원들과 얼마나 큰 차이를 담고 있는지도 감지하기 어렵다.
최근 추미애 의원이 '정강 없는' 개혁신당 추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것도 이러한 맥락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이 감정적 골을 먼저 메우고 다시금 개혁에 임하는 '민주당 리모델링'이 여전히 '분당'보다 설득력있는 이유이다.
오히려 나는 개혁신당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것 못지 않게 시급한, 그러나 실현 가능성과 파급력은 개혁신당 창당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는 과제의 해결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싶다. '선거법 개정'이 그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지역감정 해소에는 명분에 입각한 호소보다는 제도 개선을 통한 접근이 훨씬 전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말대로, '한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2/3이상 의석을 독점할 수 없도록 하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이 더 시급한 과제 아닐까?
'특정 정치세력 배제'를 전제하고 있기에 기준이 불명확하며 동시에 지지층의 분열을 불러올 수 있는, 그리하여 반대당에 반대급부를 끼칠 수 있는 개혁 신당의 추진보다는 지역감정 해소에 더 큰 역할을 담당할 선거법 개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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