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란 나이는 허울에 불과하다. '앞으로 한국에 더 남아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김진석
김치, 된장, 고추장 등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줄줄이 읊어 대는 그녀는 영락없이 한국 사람이다. 러시아 방송보다는 한국 드라마를 더 재미있어하고, 전화만 하는 러시아 친구들 보다 정 깊은 한국 친구들을 더 좋아하는 그녀는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참 못 놀아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해요. 우리 고향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면 아마 지금쯤 부자가 됐을 거예요. 우리는 일한 사람과 일하지 않은 사람이 똑같이 월급을 받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았어요. 근데 한국은 일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 갈 수 가 없는 곳이에요.
한국에 오기 전 고향에서는 하루에 8시간 근무하고, 주말에 편히 쉬는 사무원이었어요. 근데 한국에 오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사장이 부를 때마다 무조건 달려나가 휴일 없이 일 하고, 평균 12시간 이상을 근무해야 하는 것에 적응하느라 많이 애먹었죠. 하루 8시간 근무로는 돈벌이가 안 되요. 잔업을 기본으로 해야 고향에도 돈을 보내고 조금 여유롭게 살 수 있어요."
그녀는 현재 오전 8시부터 밤 9시,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30까지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대략 80만원의 봉급을 받는 그녀는 절반 이상을 고국으로 보낸다. 이미 다 큰 두 딸과 모든 가족이 고국에 남아 있는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의 전화 통화로 그리움을 달랜다.
그녀는 작은 딸 김 알레뷔티나(26)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다. 아직 사위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그녀가 작은 딸의 결혼식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딸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 비자 신청 한지가 꽤 됐는데, 그게 굉장히 까다로운가봐요. 이주 노동자가 많아서 그런지 비자 발급을 해주지 않는대요."
투명 비닐에 쌓인 여러 장의 가족 사진. 엄마 없이 홀로 훌륭하게 성장한 딸들이 꼭 어머니를 빼 닮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뿌듯해 하며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그녀가 은근 슬쩍 고개를 돌려버린다. "7년간 고생하며 딸들도 훌륭히 잘 키웠고, 이제 그만 고국에 돌아가 가족과 편하게 살아야죠" 라는 기자의 말에 그녀는 "한국에 끝까지 남고 싶다" 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저 아직 할머니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히 일 할 수 있고, 우리 딸들에게도 더 도움을 줄 수 있어요. 한국이든 고국이든 제 나이 50에 갈 곳이 어디 있나요? 일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일 해야죠! 제가 집에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자식에게 더 부담스러울 거예요. 한국에 끝까지 남아서 지금처럼 살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요.(웃음)"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인의 일자리를 뺏어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 근로자 고용 허가제를 반대하는 목소리 가운데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문구이다. 실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IMF시절. 정부는 고용촉진보상제도까지 운영하며 내국인의 고용을 독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