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물 뜯기 내기 합시다!

등록 2003.04.30 21:06수정 2003.05.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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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후에 날씨가 개자 숲이 한적하고 넉넉하다.
비온 후에 날씨가 개자 숲이 한적하고 넉넉하다.박철



비가 온 후 산이고 들이고 물이 넘친다.
비가 온 후 산이고 들이고 물이 넘친다.박철
올봄에는 이따금 비가 와서 나물이 잘 올라왔습니다. 비가 그친 산은 물을 머금고 나무고 풀이며 싱그럽고 생명의 기운이 물씬 풍깁니다. 산의 품에 안기면 마음도 느긋해지고 영혼까지도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고들배기
고들배기박철
아내와 함께 산에 올랐습니다. 취나물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입니다. 사람 발길이 안 닿은 곳에 나물이 더 많습니다. 산에 사람이 다녔는지 과자 봉지도 있고, 나물 꺽은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다녀갔어도 나물이 지천입니다.

애기 손나물은 손가락을 펴기 전에 궐련처럼 돌돌 말려져 있는 어린 것이 먹기에 좋습니다. 음나무라고 가시가 다닥다닥 붙은 나무에 달린 이파리가 개두릅입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 전체가 개운하고 향이 좋습니다. 참두릅은 나무가 어른 키만 한데 교동에도 있다고 하는데 여태 못 봤습니다.

고비 삶은 것
고비 삶은 것박철
조금 경사진 곳 죽은 나무등걸 사이로 고비가 부끄럽다는 듯이 땅을 헤집고 살짝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꺽으면서도 미안합니다. 질경이도 맛있는 나물인데 잎이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좋습니다. 이것도 기름에 달달 볶아 조선간장 넣고 무쳐먹으면 좋습니다.

고사리는 귀한 나물인데, 고사리를 하나 발견하면 그 주변에 꼭 여러 대가 올라와 있습니다. 굵은 고사리가 껑충해서 눈에 띄면 얼른 손이 갑니다. 고사리는 어디에 많은가 하면 산불난 데 많습니다. 땅이 걸지고 양지바른 곳에 고사리가 많습니다.


산 더덕은 모르는 사람도 그 옆을 지나가면 더덕 향이 납니다. 찬찬히 그 근처를 살펴보면 틀림없이 산 더덕 덩굴이 뻗어 있습니다. 뿌리가 끊어지지 않게 땅을 파고 더덕을 캐냅니다. 산 더덕은 향이 매우 짙습니다. 물로 씻어내고 껍질을 벗긴 다음 고추장을 발라 구워서 더운밥과 함께 먹으면 끝내줍니다. 약주를 하시는 분들은 더덕과 막걸리가 제격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물에 대한 박사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잘 모릅니다. 아내와 나는 나물종류를 잘 몰라 아는 것만 뜯습니다.

곰취. 향이 짙다.
곰취. 향이 짙다.박철
농촌목회가 그렇습니다. 교인들이야 아침에 밥 먹으면 들에 나가서 진종일 일하다 해거름이 되어 들어오니 농번기 때는 사람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집집마다 쫒아 다니며 일을 거들어 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한량처럼 집구석에서만 아무 하릴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러면 나는 아내와 함께 소쿠리와 호미 들고 산에 갑니다. 둘 다 안경잡이인데 나물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헤매다 보면 시간만 갑니다. 집에서 준비해 갖고 간 도시락을 꺼내 먹습니다.


거의 20년 전 우리 내외가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할 때, 나는 새벽기도회 마치고 매일 배낭 메고 산에 올랐습니다. 강원도 정선은 나물의 고장이라 할 정도로 나물이 많습니다. 나는 다른 나물은 건드리지 않고 고사리만 꺽습니다. 산이 높은 데는 없고 또 나무가 너무 울창한 숲에도 없습니다. 산골짜기 야트막한 비탈이나 돌보지 않는 산소 주변에 고사리가 많습니다. 그걸 배낭에 가득 채워서 내려오면 부자가 따로 없습니다.

질경이
질경이박철
그러면 아내는 집 앞에 나와 점심밥 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꼭 고사리만 꺽으러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산 속에 들어가면 모든 시름이 다 없어지고 나의 내면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 신과의 대화도 가능해 집니다. 4, 5월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엘 올랐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뱀을 무서워했습니다. 한밤중 공동묘지를 지나간다든지 깊은 산속에 나 혼자 남아 있다든지 다른 건 무섭지 않은데 뱀만은 유독 무서워했습니다. 양지바르고 돌보지 않은 산소 주변에는 고사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바로 그런 데를 만났습니다. 속으로 오늘 수지맞았다고 생각하고 정신없이 고사리를 꺽는데 바로 내 앞에서 뱀이 교미를 하는지 두 마리가 서로 똘똘 말아 있는 채로 혀를 날름거리며 도망도 가지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랬는지 거의 산을 구르다시피 한달음에 도망쳐 내려왔습니다. 고사리가 든 배낭을 놔둔 채. 하는 수없이 다시 배낭을 가지러 올라가는데 얼마나 무섭든지.

고비
고비박철
굵고 잘 생긴 고사리는 따로 골라서 말립니다. 조상들께 제사를 지내는 처갓집에 말린 고사리를 보내기도 하고, 여기저기 신세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중국에서 고사리를 대량으로 수입해 시장마다 중국산 고사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국산 고사리가 값이 헐값이고 천대를 받습니다.

나는 나물에 집중하지 못하고 설렁설렁하다 보니 취나물을 얼마 못 뜯었는데 아내의 소쿠리는 나물로 수북합니다. 아내가 내 소쿠리를 보고 한다는 말이 여직 하나도 뜯지 못하고 뭘 했냐고 핀잔을 줍니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습니다.


“좋아! 그러면 나랑 나물 누가 많이 뜯나 내기하자. 어때? 당신 자신 있어!”
“맨날 큰 소리만 치고 내기 하자네!”
“당신이 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도전 해봐. 내가 당신 도전 받아 줄께!”
“좋아! 무슨 내기 할 건데?”
“오늘 저녁 자장면 내기하자!”
“좋아요. 시간은 딱 한 시간만!”


나물 모듬
나물 모듬박철
기름진 것들이 넘쳐나고 외국에서 수입해온 농산물이 우리의 밥상을 점령하여 나물이고 채소고 우리 것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입맛이 없을 때 손바닥만한 취나물에 잡곡밥 척 얹어 된장 발라 쌈 싸먹으면 입맛도 돌아오고 위장도 튼튼해 질 것입니다. 산에 가서 나물을 뜯을 시간이 없다면, 지나가다 들에 널려 있는 쑥이라도 한줌 뜯어다가 쑥밥이라도 지어 잡수시기 바랍니다.

입하(立夏)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봄이 끝나고 여름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곧 모내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밤이면 벌써 물을 가둔 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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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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