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21

은폐된 진실 (1)

등록 2003.05.01 13:48수정 2003.05.0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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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폐된 진실

"아악! 이 나쁜 놈들. 아아악!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으으윽! 아는 것이 없다는데 왜? 으으으윽! 아아아악!"
"크흐흐! 그으래? 좋아, 그럼 아는 것이 있도록 해주지. 무엇들 하느냐? 하나를 더 얹어라!"


"존명!"
"으아아아악!"
"엇! 이게 무슨 소리지?"

풍광 뛰어난 선무곡 곳곳을 돌아보고 기분 좋게 돌아온 이회옥은 누군가가 지르는 비명 소리를 듣는 순간 귀를 의심하였다.

분타의 공식 업무 가운데 누군가를 고문을 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향루에서 화담 홍지함을 만난 이후 이회옥은 선무분타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자신이 선무곡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의도에서였다.

마침 직책이 분타주와 맞먹는 순찰이다보니 어디든지 다닐 수 있었고 무엇이든 물을 수 있어 더 없이 편했다.


게다가 분타주인 허보도가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철기린의 측근인 이회옥에게 아부할 기회를 얻은 것이 기쁘다는 듯 묻지도 않은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알려주었다. 덕분에 알고자하는 일들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이회옥은 모르고 있었지만 모든 분타의 순찰들은 매월 한번씩 「업무보고서」를 작성하여 총단으로 보내게끔 되어 있다.


그것은 매달 한번씩 분타주가 보내는 「주둔지 동향보고서」와는 별도였다. 혹시라도 분타주가 허위보고를 하는가를 살피기 위하여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하여 보고서를 보내도록 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무곡 같이 작은 문파에 주둔해 있는 분타의 분타주는 적어도 그 문파에 있어서만큼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이다.

장문인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도 누구하나 대들지 못한다. 당하는 문파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막강한 무림천자성과 정면 대결하여 박살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감히 항의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하지만 그중 하나는 얼마든지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일 이런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보고서를 작성하는 자가 분타주 하나뿐이라면 얼마든지 감출 수 있을 것이다.

무림천자성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원칙으로 하는 문파이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직속상관을 고발하는 것을 지극히 꺼린다. 그랬다가는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도 그런 위치에 올라 같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분타에서 못된 짓을 자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 노출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무림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온갖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고 알려진 무림천자성의 정의로운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결과를 빚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불미스런 결과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맹점(盲點)은 있는 법이다. 분타주와 순찰이 짜면 아주 중대한 문제가 아닌 이상 못 감출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중원 곳곳에 배치된 분타의 분타주들은 순찰들과 짜고 많은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

그래서 공공연하게 전해지는 말로 분타주나 순찰 임무를 띄고 분타에 배치된 지 일 년 안에 쓸만한 첩 서넛과 그럴 듯한 장원 한 채를 마련하지 못하면 배냇병신이거나 바보라는 말도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림천자성의 명성에 금이 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될 소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간혹 반골을 타고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아예 살인멸구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무림천자성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문파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아무튼 분타주는 이회옥의 보고서 작성에 온갖 편이를 제공하였다. 분타주가 이럴진대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였겠는가!

한마디만 하면 즉각 알고자하는 모든 것이 보고서로 꾸며져서 올라왔다. 따로 업무보고서를 작성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였다.

사실 이회옥은 업무보고서를 작성해서 보내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선무곡으로 보내진 이유가 무엇이던가!

철기린의 애마가 된 비룡만큼 빠른 말을 조련해내기 위한 최적지가 선무곡이기에 보내진 것뿐이다.

그런 그를 순찰에 임명한 것은 혹시라도 분타주가 얕잡아 보거나 말을 돌보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훼방을 놓을까 싶어서였다. 따라서 순찰원 소속 순찰이지만 맡은 바 임무의 특성상 모든 의무가 면제되었기에 보고서 작성 의무를 몰랐던 것이다.

아무튼 이회옥은 어렵지 않게 업무보고서를 작성하여 총단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분타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선무곡의 경우에는 곡주를 비롯한 휘하 호법과 장로, 그리고 수뇌부들과 주요인물들에 대한 감시하고 있었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는지를 모든 것을 은밀하면서도 소상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무엇을 먹었으며, 하루에 해우소를 몇 번 찾았는지, 방귀는 몇 번이나 뀌었는지까지 기록되고 있었다.

물론 누가 어떤 계집과 하룻밤에 몇 번이나 운우지락을 나누었으며, 몇 번이나 절정에 올랐고, 어떤 체위를 즐기는지까지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것은 오죽하겠는가!

사생활이라곤 거의 없는 셈이라는 것을 알고 이회옥은 자신의 거처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혹시 자신도 감시대상 중 하나인가 싶었던 것이다.

이것을 본 분타주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있어 감히 소성주의 총애를 받는 순찰을 감시하겠느냐는 것이다.

이외에 분타에서 하는 일은 여론을 유도하여 선무곡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것이었다. 무림천자성이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옳은 일이며, 정의수호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한편 무림천자성의 명이 떨어지면 무엇이든 할 그런 자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부귀영화가 보장되었다.

하여 현재 선무곡 주요인사 가운데 상당수는 선무곡 사람이라기보다는 무림천자성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삼의(三醫)였다. 그들은 의술을 시전하면서 여론을 조작하였다.

명백히 무림천자성이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궤변(詭辯)으로 그일에 대한 당위성(當爲性)을 부여하거나, 아예 거론조차 못하게 하였다.

어찌나 달변(達辯)인지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만 들으면 현혹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하여 어떤 때에는 팥으로 메주를 쓰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회옥은 이번 선무곡 곡주 선출 과정에서 삼의가 무림천자성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 적극 지지하던 청죽수사를 일방적으로 편들어 주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무림천자성과 거리를 두려는 일흔서생이 선출된 것은 순전히 젊은 청년들이 단합한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선무곡 역사상 청년들은 곡주 선출과정에 나선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분타주인 허보도는 의당 청죽수사가 선출되는 것으로 알고 느긋해하고 있었다.

청죽수사는 장년층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는 청년층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하여 결과가 뒤집히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지급(至急)으로 예정에 없던 보고서를 띄운 것이다.

시끄럽고 신경 쓰였지만 곡주 선출 과정 동안 계속되어 왔던 항의 농성을 내버려둔 것도 사실은 이유가 있어서였다.

첫째는 마차에 치어 죽은 두 소녀를 추모한다는데 말릴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두 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은 무림천자성에 우호적인 청죽수사가 차기 곡주로 선출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섣불리 항의하는 자들을 제압하려다가 무림천자성에 대한 반감만 커지면 청죽수사가 선출되는데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기 내버려둔 것이다.

일단 청죽수사가 차기 곡주로 선출되면 알아서 자제시키거나 해산시킬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선무분타로서는 쓸데없는데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청죽수사는 차기곡주가 되지 못했고, 항의 인원은 점점 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회옥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선무곡 조사전 터에 전각과 마구간을 짓겠다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 또한 점점 세를 불리고 있었다.

선무분타로서는 곤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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