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당 불가피론' 주장했던 한화갑·박상천의 선택은?

등록 2003.05.01 18:01수정 2003.05.0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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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배제하고 누구를 옹립하느냐를 떠나서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기득권을 포기하고,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당이 주체가 되고 누가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기회균등 상태에서 참여하자는 것"(2002년 7월 26일, 한화갑 전 대표)

"누구도 기득권이 없다. 그래서 신당이다. 지분에 관계없이 신당에 모이는 것은 동일하고 평등하게 적용될 것이다. 헤쳐모여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겠나."(2003년 4월 30일, 천정배 의원)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민주당 신주류가 주도하는 이른바 '통합개혁신당 창당' 움직임은 지난 7월 한화갑 전 대표의 '백지신당론'과 무척이나 닮았다. 두 신당론 모두 재보궐선거 이후 본격 논의되기 시작해 8월 정계개편을 노리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박상천 최고위원이 한 전 대표의 주장에 가세하며 '신당불가피론'을 주창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박 최고위원은 당시 △ 인적 구성의 발전적 변화 요구 △ 다자간 구도에서 민주당에 불리한 여론 등을 제시하며 신당창당의 시급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백지신당론'이 당시 노무현 후보를 흔들고 이한동,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한 반이회창 연대를 은연중에 지향하고 있었다는 점이 신주류의 신당론과는 다른 점이다. 반면 신주류의 통합개혁신당론은 개혁당과 한나라당 개혁파, 재야인사 등과의 연대를 염두에 둔 '범개혁세력연합'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사실 한화갑 전 대표의 '백지신당론'은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궐선거에서의 민주당 참패,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지지도 하락, 친노·반노 세력간의 극한 대립 등 악재가 겹치면서 궁여지책 차원에서 불거져 나왔다. 정몽준·이한동·박근혜 등 제 3 후보군과의 통합 없이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힘들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정권재창출을 위한 강박관념의 부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시 친노 그룹에서는 한 전 대표의 '백지신당론'을 노 후보를 대통령 후보직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노무현 흔들기'라고 비판하며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노무현 후보는 8월 20일까지 완료해야 하고 '과거지향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전제하에 한 전 대표의 '백지신당론'을 수용했다.


공교롭게도 한화갑 전 대표와 박상천 최고위원의 당시 '신당불가피론'은 2003년 4월 현재 신주류 주도의 신당창당론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족쇄로 되돌아오고 있다. 특히 박상천 의원이 신당불가피론을 역설하면서 제시한 논거, 즉 인적구성의 발전적 변화요구와 다자간 구도에서 참패 등은 그 지향점이 다를 수 있으나 현재 신당창당이 왜 불가피한가를 동일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백지신당론' 주장한 한화갑·박상천 '신당창당' 거부 명분 약해


박상천 민주당 최고위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상천 민주당 최고위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예를 들면 노무현호의 출범 이후 여론의 변화, 국민들의 개혁여망 등으로 민주당의 인적 구성을 대폭 재편해야 한다는 요구가 아래로부터 대두되고 있고 개혁당과 민노당, 사민당 등으로 개혁·진보세력이 나뉘어져 다자구도를 형성하고 있어 내년 총선에서의 고전이 예상된다는 현실적 여건 등은 박 최고위원이 신당창당론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무언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다.

만약 박상천 최고위원이 신주류 주도의 신당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당시의 주장은 노무현 후보를 내몰기 위한 구상이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셈이 된다.

이는 한화갑 전 대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당시 한 대표가 제시한 신당 창당의 불가피성과 신당 구성방식은 현재 신주류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기득권의 포기와 세력간 지분할당 부정, 헤쳐모여식 창당방식 등은 천정배 의원이 구상하고 있는 신당창당론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다만 연합 대상만이 달랐을 뿐이다.

따라서 한 전 대표가 귀국 후 신당 참여 불가를 입장을 피력할 경우 '백지신당론'은 노무현 후보의 후보직 사퇴를 겨냥한 선택이었음을 9개월이 지난 지금와서 또한번 반증해 보이는 것이 된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한 전 대표의 백지신당론을 불리한 조건임을 감수하면서까지 조건부로 수용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한 전 대표가 지금 '통합신당창당론'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조건을 내걸 가능성은 높다.

결국 신당 참여를 둘러싼 이들의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한 전 대표가 1일 장전형 부대변인과의 전화통화에서 "개혁과 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고 밝히고 박상천 최고위원이 "신당의 성격이 뭔지, 그 내용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유보적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같은 과거 발언의 무게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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