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갑자기 나무토막이 된다면?

문학적 상상력과 교육적 상상력

등록 2003.05.02 09:17수정 2003.05.0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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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상상력이라는 말은 종종 들으셨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교육적 상상력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농부에게 괭이나 호미가 필요하듯이 시인에게는 시적 상상력이 필요하지요. 그렇다면 교사에게는? 그렇지요. 교육적 상상력이 필요하겠지요. 저더러 지금 이 시대의 교육을 한마디로 진단하라고 한다면 교육적 상상력이 빈곤한 시대라고 말하겠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에게 주목을 받거나 사랑을 받는 아이들은 누구이겠습니까? 당연히 얼굴이 예쁘장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남다른 소질이 있거나 심성이 착한 그런 아이들이겠지요. 외모도 평범하고 학업성적도 중간 이하인 아이들, 거기에 가정환경 탓이거나 개인의 문제로 일탈행동을 자주 일삼는 아이를 좋아하는 교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교사도 사람이니까요. 아니, 흔한 말로 사랑 받는 것도 자기 하기 나름이니까요.

저도 그런 교사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를 교육적 상상력이 풍부한 교사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얼굴이 예쁘거나 성실한 아이를 귀여워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라도 칭찬의 조건을 만들어낼 줄 아는 교사가 교육적 상상력이 풍부한 교사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곧 교사의 전문성이기도 하구요. 사실 알고 보면 어떤 외면적 아름다움보다는 안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이 더 큰 것이지요.

저는 교사라면 전공과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시를 좀 공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요. 그런데 감각에 의존하는 일차적인 아름다움만으로는 좋은 시를 쓰기가 어렵습니다.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가 될 것 같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도 거뜬히 시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시인의 호칭을 들을 수 있지요. 저도 명색이 시인인데, 잘난 체도 좀 할 겸 제가 쓴 시를 예로 들어보지요.

비 온 뒤
세상 조촐한 것들이
잎새마다 빗방울 하나씩 달고
눈부셔 하고 있다

길 모서리, 혹은
돌 틈새에서 자란
세상 보잘것없는 것들이
흔하디 흔한 빗방울 하나에
온몸을 반짝이고 있다

혼자서는 쥐뿔도 빛날 게 없어
서로 서로 눈부셔 하고 있다

-졸시, '세상 조촐한 것들이'



빗방울과 풀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 무심코 지나치는 흔한 존재들입니다. 너무 평범해서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들이지요. 그런데 시인은 그 소박한 것들에게 경이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마치 무슨 비밀을 발견하기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만나는 소박하고 평범한 아이들에게도 그런 경이로운 시선을 던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시적 상상력이 아니라 교육적 상상력 때문이지요. 이런 엉뚱한 생각 말입니다.


한 아이가 죽었습니다. 죽었다기보다는 갑자기 나무토막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말썽을 부리거나 못된 짓을 일삼는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모를 기쁘게 해주는 그런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언니와는 달리 성적도 시원치 않아서 아예 큰 관심을 쏟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이 마음에 걸려 더욱 애절하게 나무토막이 된 아이를 붙잡고 재발 다시 살아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무토막에 두 눈이 생긴 것입니다. 가만 보니 죽은 딸아이의 눈과 꼭 닮았습니다. 그 눈으로 무언가 절실하게 말을 걸어옵니다. 옆집 아이처럼 쌍꺼풀이 진 예쁜 눈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 나무토막일 뿐이지만 딸아이의 눈을 보자 죽었던 아이가 되살아나기라고 한 것처럼 기쁜 마음에 밤새도록 눈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딸아이의 눈이 이렇게 예쁜 줄을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부모의 마음은 다시 애가 타기 시작합니다. 입을 열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귀가 있어 이쪽에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나무토막에 입이 생기고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말을 합니다. 비록 나무토막이지만 딸아이의 목소리가 분명합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귓바퀴도 분명 딸아이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의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그 간절함이 다시 하늘에 닿았는지 딸아이의 볼그레한 뺨이 돌아오고 봉긋한 가슴도 생겼습니다. 배꼽티를 입고 있어서 배꼽도 보였습니다. 늘 그것 때문에 부모자식간에 싸움도 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습니다. 왜 배꼽티를 못 입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손이 돌아오고 발도 돌아왔습니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도 허리도 돌아왔습니다. 이제 나무토막은 없어지고 거기에 온전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꿈을 꿀 수도 있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 말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에 부모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가 않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 놀라운 기적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미 존재했던 것들입니다.

시적 상상력이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상상의 세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이미 존재해 있는 묵은 것들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지요.

아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아옵니다. 여전히 중간 이하의 성적을 받아옵니다. 영어나 수학을 푸는 머리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명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다시 살아났는데 이게 무슨 대수냐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의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지닌 몸과 생명의 경이로움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딸아이의 눈과 입술과 귀와 엉덩이와 허리와 손과 발은 더 이상 경이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웃집 아이에게도 있는 너무도 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류대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옆집 아이에 비하면 딸아이가 초라해 보이기만 합니다. 그 초라함이 자신의 것이 되기 시작하면서 딸아이에게 다시 미움이 돌아갑니다.

바로 그날 밤, 딸아이가 다시 나무토막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부모는 통곡을 하다가 그만 꿈에서 깨어납니다.

저는 부모나 교사의 사랑은 모름지기 어떤 조건보다는 그 아이의 생명 자체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명을 사랑한다는 말이 조금은 추상적이어서 교육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런 이야기를 꾸며본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꿈에서 깨어난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어떤 부모라도 갓난아이를 옆집 아이와 비교하여 미워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옆집 아이보다 코가 조금 낮으면 그 낮아 보이는 코 때문에 더 예뻐 보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요. 그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가 생명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커가면서 부모의 과욕과 대리만족 심리에 의해 아이는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전락하고 말지요. 상품적 가치가 없어지면 자식이라도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도 상상력이 빈곤해지면 소재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소재 자체만으로 재미가 느껴지는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이지요. 과거 한 때 호스테스 문학이 판을 친 적이 있었지요. 성생활이 자유로운 호스테스를 소재로 하게 되면 작가는 굳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학교에서 중간 이하의 평범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안에 숨겨진 것들이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그것을 꺼내어 닦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교육적 상상력이 빈곤한 시대에는 아무도 그런 수고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미 스스로 반짝이고 있는 아이들에게만 시선을 던지는 것이지요.

일본에 다녀오신 선배 교사가 해주신 말씀입니다. 방문단들과 함께 학교를 방문했더니 방과후에 보충수업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처럼 전체 학생이 수익자 부담으로 돈을 내고 하는 그런 보충수업(특기적성교육)이 아니라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이들을 남게 하여 국가 경비로 해주는 순수한 보충수업이었다고 합니다.

일본도 한때는 학부모들의 그릇된 교육과열도 골머리를 앓았던 나라입니다. 지금은 이미 제자리를 찾아 정도를 걷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 나라에서 하고 있는 보충수업은 일종의 과외라고 봐야합니다. 그로 인해 정작 보충수업을 받아야할 아이들은 소외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교수방법도 교육적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문제풀이식, 혹은 일제식 강의입니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한국의 아이들은 교육에서 최고의 덕목의 하나로 꼽고 있는 창조력, 혹은 상상력의 빈곤 상태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육이 할 일은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아이들의 생명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자기 생명이 귀한 아이들이 자기 삶을 함부로 살지는 않겠지요. 자정이 가깝도록 아이들을 강제로 학교에 남게 하여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것은 교육적 상상력이 빈곤한 사실을 고백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자 반 담임입니다.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한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그 아기가 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이러기를 수십 대 수천 대를 지나게 되면 바다에 모래알처럼 많은 후손들이 생기겠지. 그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바로 그 아이로부터 생명을 얻어 삶을 영위하겠지.

이런 생각, 곧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다보면 외견상 아무리 평범해 보이고 조금은 일탈행동을 일삼는 아이라고 해도 위대해 보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교사가 위대하게 보면 아이들도 위대해진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생일을 맞은 한 아이도 내면에 그런 위대함이 숨어 있는 아이입니다. 다만 그것을 본인이 알지 못할 뿐입니다.

누군가 말해주었다면, 흙 속에 묻힌 보석을 한 번이라도 꺼내어 닦아주었다면 더욱 빛나는 아이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난 네가 교문을 들어설 때 나의 꾸지람이나 매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대신 늦잠과 싸워 승리한 너를 반갑게 맞아주는 선생님의 환한 얼굴을 떠올렸으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서는 지각을 하지 말아야겠지?"

소박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입니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에게 시를 써서 선물해주는 것도 물론 그렇지요.

이렇게 좋은 날에


사월과 오월 사이
싱그러움과 향그러움 사이
더는 좋을 수 없는 봄날에
보리밭 푸른 사잇길을 지나
너는 이 땅에 왔구나

세상 모든 푸른 것들이
푸르다 푸르다한들
너만큼은 푸르렀으랴?
이 화사한 봄날을 다 합한들
너만큼은 황홀했으랴?

네 한 자리가 비어
온 세상이 텅 빈 그날
널 찾아가 이런 말을 했었지
널 미워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천하보다도 귀한
너의 생명 때문이라고

넌 그 말을 이해했을까?
아직은 모를 거야, 모르겠지만
그때 네 눈에 비친 눈물을 보면
조금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
네가 누구라는 것을

지각을 하고서도 하나도 기죽지 않고
머리 위로 사랑의 하트를 그리다가
내 종 주먹에 혀를 내밀고 달아나는
뻔뻔하고 웃기지도 않는 너를
내 어찌 사랑하지 않으랴?
널 기대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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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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