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임신한 당신 사표내라?"

결혼·임신이 해고사유...모성보호법 유명무실

등록 2003.05.05 16:53수정 2003.05.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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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임신, 출산을 통해 다음 세대의 노동력을 재생산한다. 이 같은 여성들의 재생산 활동없이는 사회 유지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성의 재생산기능의 보호는 여성에 대한 특혜조치가 아니며 사회전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사회정책의 일부이다. 만약 여성들의 임신 출산 등에 대한 사회적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임신여성에 대한 모성보호조치를 강화하고 이에 대한 사회분담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난 2001년 11월 1일부터 '모성보호법'이 시행됐지만 아직도 모성을 보호받지 못하는 직장여성들이 태반이다. 모성보호가 여성의 기본권리로서 국제규범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기업들은 비용을 이유로 회피하고 있다.

출산휴가가 법적으로 90일이지만 직장여성 30% 이상은 90일 이상 휴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비정규직 직장여성들의 경우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해고를 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모성보호의 필요성과 효과는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효과가 중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그 비용은 즉각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직장 여성의 모성은 핍박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첫 주 남녀고용평등주간을 맞아 전북여성노동자회가 '평등의 전화'를 통해 접수된 사례를 보면 도내 비정규직 직장여성들의 임신은 해고 통보나 다름이 아니다.

단지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자진사퇴를 요구하거나 출산휴가를 무급으로 사용하게 하고 결혼 여성에게 임신 전까지만 다닐 것을 통보하는 기업들의 관행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주시 덕진구 아중지구에 있는 K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김모씨(30)는 지난해 12월 이민한 사실을 원장에게 말했더니 "임신하고 있어봤자 힘든 일만 있을 텐데 그만 두라"며 사실상 해고를 통보했다.


김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2개월 후인 지난 2월 26일 모성보호법에 근거해 출산휴가를 신청하는 내용증명서를 보내 출산휴가 사용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원장은 "출산휴가를 주려면 학원이 고용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세무서에서 몇 배의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고용보험 가입을 들어 줄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결국 김씨는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 3개월분 월급을 보상금으로 받고 학원을 그만뒀다.


이 같은 경우처럼 도내 대부분의 학원들이 과도한 세금부담을 우려해 고용보험은 물론 다른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업종 특징상 여성들의 취업이 많다는 점에서 모성보호에 사각지대로 지목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모성보호를 외면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계약직으로 3년간 근무한 J씨(28)는 1년 당위 계약직이기 때문에 출산휴가가 근로계약서 상에 명시되지 않았다며 무급으로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출산휴가 3개월 동안 대체인력 사용에 대한 임금을 부담시켜 출산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안아야 됐다.

제약회사에서 8년동안 근무한 H씨(28)는 3월초 결혼해 신혼여행을 다녀와 출근했더니 직속 여자 상사로부터 "임신전까지만 회사에 나와라"는 통보를 받았다.

더욱이 이 상사는 마치 H씨가 자발적으로 "임신전까지만 출근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처럼 회사측에 통보해 요즘 직장생활이 가시방석이 됐다.

이처럼 지금도 결혼과 임신이라는 이유로만 기업들이 여성 인력을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연한 실정이다. 더욱이 공공기관까지도 계약직으로 일하는 비정규 여성들은 모성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전북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 신민경 상담실장은 "모성보호 관련법이 실효를 거두기 윟선 노동부의 적극적인 행정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며 "모성보호 사용실태를 파악해 원천적으로 적용을 기피하는 일이 없도록 지도해야 하며 비정규직 여성들의 현실적인 모성보호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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