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보수기득'과 손잡다니요
장 교수님, 이념 빼고 토론합시다"

[주장]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의 '재벌개혁론'을 반박함

등록 2003.05.06 15:54수정 2003.05.1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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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K그룹 사태를 놓고 진보진영 내 두 축이 시끄럽다. 한 축은 미국식 주주가치 중심에 기반을 두고 재벌개혁의 선봉에 선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이며, 또 다른 한 축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에 반기를 들고, 사회통합 등을 강조한 유럽식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대안연대회의>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인 장하성 교수(고려대)는 지난 2일 발간된 <참여사회> 5월호를 통해 “경제 체제에 대한 본질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기득권적 보수와 이념적 좌가 일맥상통했다”고 말했다. ‘이념적 좌’는 <대안연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대해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인 이찬근 교수(인천대)가 6일 장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진보진영 내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을 기대하며 이 교수의 글을 싣는다....<편집자 주>


a 이찬근 교수(인천대)는 "참여연대가 추종하는 주주가치 논리는 근본적인 함정이 있어 국민경제의 성장이 제약당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찬근 교수(인천대)는 "참여연대가 추종하는 주주가치 논리는 근본적인 함정이 있어 국민경제의 성장이 제약당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며 언뜻 정치인과도 같은 수사(rhetoric)로 세간의 의혹과 학계의 비판을 피해가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 장하성 교수께서 지난 주 비교적 솔직하게 말문을 열었다. <월간 참여사회> 5월호에 실린 인터뷰가 바로 그것이다.

장하성 교수야말로 재벌개혁에 관한 한 명실공히 우리 사회 논의의 핵심이고 더구나 월스트리트로부터도 높은 평판을 받고 있으므로 차제에 장 교수의 생각이 공개된 것은 공정거래위원장이나 금감위원장의 발언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국내 세 번째 재벌그룹인 SK가 소버린 자산운영이라는 베일에 싸인 해외투자펀드로부터 지배권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이므로 더더욱 그러하다.

장 교수는 인터뷰에서 진보진영 내의 일부 ‘극좌 민족주의자’들이 해외자본으로부터 국내기업의 지배권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반개혁적인 보수기득권 세력과 연대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고 일갈했다.


장 교수께서는 직접 실명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필자를 포함해서 대안연대에서 활동하는 몇몇 학자들을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차피 논쟁은 시작됐고 이제 중요한 것은 양자 간의 차이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범 진보진영 내의 커뮤니케이션을 복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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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먼저 전제할 것은, 장하성 교수를 위시한 참여연대 전문가들이나 대안연대 학자들이나 모두 한국경제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선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만 서로 간에 가로놓인 <현실 인식에 대한 차이>와 <문제해결 방법론에 대한 차이>가 워낙 큰 만큼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 이를 밝히고 그럼으로써 국익에 맞는 재벌개혁 방안을 원점에서 다시 도출해야 한다.


@ADTOP1@
참여연대의 주주가치 개념은 우리 경제 파괴적인 결과 초래

그렇다면, 왜 대안연대 학자들이 참여연대측의 시각을 지극히 우려하고 있는지를 따져보기로 하자. 골자는 참여연대식 재벌개혁 운동의 이론적인 뿌리인 주주가치 개념이 우리 경제에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참여연대는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재벌계 대기업들 역시 주주의 것, 특히 소액주주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재벌은 고속성장 과정에서 잉태된 역사적 사회적 산물이란 또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희소한 자원과 협소한 내수시장이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국가 체제는 일정 수준 대외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덩치 큰 기업집단을 만들어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국민적 희생을 바탕으로 막대한 국가지원과 정부보조가 뒤따랐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재벌은 사유재산임과 동시에 국민적 사회적 자산이기도 하다. 단지 주주의 것, 혹은 소액주주의 것이라고만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그런데도 재벌은 국민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자신들의 입지가 높아짐에 따라 국가주도형 정부통제로부터 벗어날 목적으로 90년대를 전후해 미국으로부터 직수입한 자유시장 원칙 및 주주가치 논리를 빌려 대기업그룹이 전적으로 재벌가문의 사유재산임을 선언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재벌이 자기 비호를 목적으로 수입했던 자유시장 및 주주가치 논리가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재벌 자신의 발목을 잡기에 이르렀다. IMF-월스트리트와 DJ정부-참여연대는 주주가치 원칙을 통해 재벌총수의 지배권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하기로 암묵적인 합의에 도달했고 이것이 부메랑이 되었다.

일사천리식 자본시장 개방 조치와 함께 해외자본이 국민경제를 포위함에 따라 급기야 재벌은 해외자본으로부터 지배권을 위협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간 주주가치를 외쳤던 재벌로선 해외자본이란 이유로 주주의 권리를 부정할 수 없기에 스스로 덫에 빠지고만 형국이 되었다.

이로써 국민적 사회적 자산이라는 사실을 줄곧 부인해온 재벌은 마침내 외국자본의 위협 앞에서 국민과 사회의 지원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재벌과 참여연대의 딜레마

a 장하성 교수(고려대)는 최근 인터뷰에서 "내부문제는 안 보고 ‘정부 탓’하는 재벌과 국내문제는 안 보고 ‘외국자본 탓’하는 극좌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하성 교수(고려대)는 최근 인터뷰에서 "내부문제는 안 보고 ‘정부 탓’하는 재벌과 국내문제는 안 보고 ‘외국자본 탓’하는 극좌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참여사회 인터넷판

하지만 재벌만이 스스로의 덫에 빠진 것이 아니다. 그간 골리앗에 맞선 다윗으로 국민적 칭송을 받아온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역시 이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안연대는 주주가치 원칙에 입각한 재벌개혁 방식이 그 유효성의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한다.

이번 SK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재벌은 국내시장에서의 강력한 지위와는 극히 대조적으로 지배권 방어에 있어 매우 취약하며, 현행 재벌개혁 방식을 일거에 추진할 경우 모든 재벌이 월스트리트에 바겐 세일되고 마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더 이상 장하성 교수처럼 ‘개방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와서 지배권 방어를 들고 나오는 게 왠말이냐’는 식으로 시비를 한다거나, ‘기업지배권 싸움으로 주가가 오르면 다른 주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한가하게 발언할 때가 아니다. 이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비중 있는 학자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외국자본, 특히 막대한 자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가능한 한 단기간 내에 재무적 초과이윤을 추구하는 외국펀드는 어떤 대기업이건 취약점이 노출되면 즉각 지배권 장악을 시도하거나 이를 빌미로 여유 현금흐름을 탈취할 수 있다. 이것은 이미 99년도 SK텔레콤을 그린메일과 유사한 전략으로 공략한 타이거펀드의 사례에서 이미 입증되었다.

설혹 외국자본이 반도체산업, 석유산업, 통신사업과 같이 본업에 관심을 갖는 전략적 투자자라 할 지라도, 이들을 상대로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술력 강화와 같은 최소한의 국민경제적 책임을 요구할 명분도 없고 수단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대기업의 지배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다른 주체가 국내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뛰어들어 국유화를 단행할 수도 없고, 은행이 소유의 중심에 나설 수도 없고, 종업원 지배가 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참여연대가 추종하는 주주가치 논리에는 더 근본적인 함정이 있다. 이를 맹종할 경우 기업의 중장기 투자를 가로막아 국민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제약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이 왜 주주가치 극대화 논리에 빠져들었고 그 사회경제적 귀결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분명해진다.

미국은 1970년대를 전후해 자국의 산업자본이 기울면서 금융주도형 경제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고자 극단적인 형태의 시장주의와 주주가치 극대화 논리가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등장했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은 군수산업이나 첨단 벤처산업 외에는 이렇다할 산업경쟁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가진 자와 소수 능력있는 자만이 부를 증식할 수 있는 왜곡된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대기업들은 경상이익의 60~70% 정도를 주주 배당금으로 지급하거나 주가관리, 자사주식 매입에 사용하고 있으며, 여기에 차입금 이자비용, 최고경영자 스톡옵션 지급 등을 가산한다면, 사실상 미국 대기업들이 창출하는 이익의 대부분은 금융-주식자본의 수익보장에 투입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경쟁력, 산업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이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내부유보-재투자>의 메커니즘이 붕괴되고 만 것이다. 즉 미국의 대기업들은 주주를 위해 ‘주주가치’는 높이고 있을지 몰라도 ‘기업가치’의 장기적 향상에는 실패하고 있다.

재벌 총수는 응징하되, 기업지배권은 국내에서 지켜내야

반면 한국경제는 아직도 굴뚝 산업형 대규모 제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최소한 20년 동안은 금융업보다는 제조업에 의존해서 생존과 발전을 계속해야 한다.

동시에 저임금 저비용을 무기로 한 중국의 추격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제조업 분야에 대규모 혁신 투자가 지속되어야 하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을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첨단 기술 산업과 물류 금융 관광 등 국제서비스업을 개척함으로써 동북아 경제중심국 구상에 어울리는 산업구조로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경제가 성급하게 금융주도형 경제의 논리인 주주가치 이념에 빠져드는 것을 심각하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재벌연구는 재벌에 대한 가치중립적 연구를 지향했다기 보다는 재벌을 악의 축 내지는 문제집단으로 기정사실화한 위에서 그 문제점 고발 차원의 연구, 혹은 문제점을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에 관한 정책적 기술적(technical) 연구에 머물러왔다.

그러나 경제 발전론적 관점에서 볼 때, 재벌은 세계역사상 유례없이 성공적인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했으며, 이들이 키워온 우수한 역량은 해체 파괴할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국민경제의 성장엔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따라서 지난 40년간 종업원과 기술자와 경영자들의 땀과 희생의 노고 위에 키워온 인적 조직적 기술적 역량을 대책없이 외국자본의 지배권 하에 넘기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이를 잘 보존하여 우리 경제와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외면하고 범 진보진영 내에서 이념투쟁을 벌이는 것은 자칫 창조는 없고 파괴뿐인 재벌개혁으로 귀결될 수 있다.

a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등으로 총체적 위기를 맡고 있는 SK 그룹 본사 사옥.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등으로 총체적 위기를 맡고 있는 SK 그룹 본사 사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에 필자는 참여연대, KDI 등에 소속한 주류 재벌개혁 논자들이 일단 그간 진행된 상황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벌개혁 과정이 마라톤 레이스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할 때,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침 SK그룹이 위기상황에 처해있는 만큼, 이를 연구사례로 삼아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분식회계 책임자인 총수에게 합당한 법적 책임을 물어 강력하게 응징하되, 국내에서 기업지배권을 지켜내는 새로운 재벌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 예로 SK글로벌의 채권은행단이 해외에 파킹되어 있는 SK글로벌 보유 SK(주)의 지분을 인수해서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근거로 SK그룹 경영의 주요한 당사자로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때 최태원 회장이 SK C&C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SK(주)의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위임한다면 채권단은 SK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격인 SK(주)의 최대지배주주로 떠올라 명실공히 채권단에 의한 그룹 감시나 통제라는 새로운 대안적 실험이 가능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필자의 짧은 식견으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국민경제에 대한 외부충격을 최소화하고 지속적인 안정성장을 이루고자 다양한 시장 친화적 조절기제, 지배권 안정화 방어기제 등을 마련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장하성 교수를 비롯한 주류 전문가분들도 대안연대의 이런 연구 활동에 적극 동참하여 ‘제도적 상상력’을 키움으로써,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 맞는 새로운 재벌개혁 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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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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