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방 벽에 걸려진 카네이션. 6개의 카네이션이 그간 할머니의 외로움을 말해준다김진석
정 할머니의 방에는 빨간 카네이션이 가지런히 붙어 있다. 그간 자식을 대신해 이름 모를 사람이 달아준 그 꽃들을 쉬이 버리지 않고 소중히 모은 것이다. 며칠 전 경로당에서는 카네이션 백 송이를 주문해 할머니들에게 나눠드렸다. 그러나 예년보다 홀로 사시는 노인들이 증가함에 따라 카네이션이 부족한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좋죠. 자식조차 못 해주는 어려운 걸 남이 대신 해주는 데 고맙죠. 그저 너무 고맙죠."
벽에 달린 카네이션을 보자 정 할머니가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훔친다. 정 할머니에게는 현재 연락이 끊긴 몇 명의 자녀들이 있다. 그러나 정 할머니는 자녀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있어도 있는 게 아니고 기냥 없는 기죠. 명절이 되면 얼마나 보고 싶은지 몰라요. 즈그들도 각자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깐... 뭐... 내가 빨리 죽어 버려야 하는긴데. 조용히 살다가 내 홀로 떠나면 그만인기라."
행여 자녀들에게 폐가 될까 염려하는지 정 할머니는 "내가 살아서 뭐래요? 빨리 죽어야 할긴데"라는 말씀만 연신 되풀이 하시며 끝내 자녀들에 관한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 할머니는 엄연히 봉양자(자녀)가 있는 걸로 국가에 등록되어 있기에 국가의 기초 생활 보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어딘가에 살아 있는 자녀들로 인해 정 할머니는 국가에게 노인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뺐긴 것이다.
현재 정 할머니는 전기세와 물세를 지불할 만한 최저 생계비를(20만원) 국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그밖에 정 할머니는 후원 받은 기타 생필품과 옷, 도시락 등의 물품을 아끼며 근근이 생활을 유지한다. 할머니는 세탁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기세를 아끼느라 일일이 손 빨래를 하고, 티브이와 전등을 절대 같이 켜놓치 않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할머니의 집은 고장난 수도꼭지로 변한다. 천정을 비롯한 부엌 바닥 구석 곳곳에서 물이 새어나와 연탄을 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 날이면 차갑게 식어버린 방에서 쑤신 몸을 달래며 억지로 잠을 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