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몸에 예수 흔적을 가졌노라"

친구를 골탕 먹이려다 생긴 흔적

등록 2003.05.07 15:55수정 2003.05.0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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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제일 먼저 핀다. 그런데 노래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다. 노래가사가 잘못된거 아닌가?
살구꽃이 제일 먼저 핀다. 그런데 노래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다. 노래가사가 잘못된거 아닌가?박철
신약성서에서 바울로 사도가 “내가 내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바울로 사도의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나는 24년 동안 교회에서 선생노릇을 했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했을 세월이 지나갔다. 이제 그만큼 선생노릇을 했으면 내 몸에 쥐꼬리만한 예수의 무슨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암만 눈 씻고 봐도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

오늘 아침,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한테 무슨 흔적이 남아 있는가? 살펴보았지만, 내가 예수 때문에 받은 고난의 상흔이라든지, 진리를 따라 사는 구도자로서 내 안에, 내 몸 안에 남아 있는 흔적이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럽지만 별 수 없이 나는 얼치기 목사다. 상처가 하나 있긴 하다. 예수와는 전혀 무관한 흔적이다. 내 왼쪽 둘째손가락에 깊이 패인 칼자국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칼에 베인 흔적이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다. 중학교 1학년 초여름, 강원도 화천 용암리에 사는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잖다. 그 시절은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터라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 것인가? 아니, 어떻게 하면 심심하지 않을까?’ 그것이 나의 삶의 주제였다. 속으로 심심하던 터에 잘됐다 싶어 자전거를 타고 친구를 따라갔다.

친구 집은 그 동네에서 알려진 부농이었다.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집의 규모하며, 엄청나게 큰 대들보와 기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일대 논이 거의 친구네 소유였다. 나는 그 위세에 주눅이 들었다. 친구네 집 뜰 안에는 각종 과일나무가 있었는데, 마침 살구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살구가 살구나무에 주렁주렁 달렸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살구 한 광주리를 따다 먹으라고 주신다. 친구 어머니가 처음 보는 나에게 얼마나 친절하시던지. 나의 어머니는 늘 나보고 하시는 말씀이
“야! 네 뱃속에는 거지가 들어 있니? 공부를 먹는 것만큼 하면 판사라도 될 거다” 할 정도로 사춘기 시절, 나의 뱃속은 늘 허기져 있었다.

새콤달콤한 살구를 나 혼자서 한 광주리를 다 먹었다. 배가 터지게 먹고 나니 입안에 신물이 가득 고여서 더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친구 어머니는 살구 한 광주리를 단숨에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시고 또 한 광주리를 따주셨다. 갖고 가서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하신다. 살구 한 광주리를 자전거 꽁무니에 매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마나 기분이 상쾌하던지.


저녁에 온 집안 식구가 저녁상을 물리고 살구를 맛있게 먹었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기 전에 며칠 전 책에서 읽었던 <오성과 한음이야기>가 떠올랐다. 오성이 살구를 반쪽으로 갈라 씨를 빼고, 거기에 모래를 넣어 친구 한음을 골탕 먹였다는 얘기가 생각난 것이다.

남 골탕 먹이는 일에는 숙맥이었던 내가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살구 몇 알을 가지고 키득키득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친구 한 녀석이 떠올랐다. 화천에서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와 읍내에서 자취를 하던 친구였다. 나의 머리는 온통 그 친구를 골탕 먹이는 것에 모아졌다. 잘 드는 부엌칼로 살구를 내리쳤다. 그냥 칼로 금을 그어 자르면 될 것을, 무술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으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댔다. 내 왼쪽 손 둘째손가락을 자른 것이다. 3분 2가 잘렸다. 피가 콸콸 나오는데 지혈이 안 된다. 어머니가 나오셔서 욕을 바가지로 퍼 부으신다. 병원에 가서 서너 바늘을 꿰맸다. 친구를 골탕 먹이려다 내가 더 큰 골탕을 먹은 셈이었다.

그 때의 상처가 35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남아 있다. 바울로의 흔적과 나의 흔적은 전혀 내용이 다른 흔적이다. 바울로의 흔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긴 흔적이고, 나의 흔적은 남을 골탕 먹이기 위해 까불다 생긴 흔적이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1학년 시절, 장난기가 발동되어 친구를 골탕 먹이려다 생긴 흔적이 가끔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시방 목사가 되어서,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 사느냐? 남을 해롭게 하기 위해 사느냐?”

내 왼손 둘째손가락의 상처는 내가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길에 집요하게 동반되어 나의 영혼을 일깨우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오늘은 입하(立夏) 다음 날,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두어 달이 지나면 살구를 먹게 될 것이다. 살구를 먹을 때마다, 나는 헛웃음을 하며 바울로의 고백에 심취한다.


“내가 내 몸 안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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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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