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의 부모님이종찬
"아빠! 내일 와?"
"왜?"
"어버이날이잖아."
"어버이날은... 아니, 내일은 못가고 토요일에 갈 거야."
"에이! 그럼 토요일에 빨리 와."
"왜?"
"아빠에게 달아줄 카네이션을 만들어 놓았단 말이야."
어버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날 저녁, 푸름이와 빛나에게서 번갈아가며 숨가쁜 목소리가 담긴 전화가 왔었다. 둘 다 내일 아빠가 집으로 오느냐고 묻는 전화였다.
처음에 큰딸 푸름이의 전화를 받은 나는 어버이날은 공휴일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이내 토요일에 갈 거라고 말을 바꾸었다. 올해는 부처님 오신 날과 어버이날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카네이션 안 달아도 돼. 대신 엄마에게 달아주면 되잖아."
"안돼. 아빠도 꼭 달아야 돼."
"참, 그리고 어린이날에 아빠가 선물을 한다는 걸 할아버지 생신 때문에 깜빡했구나. 어쩌지?"
"괜찮아, 아빠! 아빠는 우리들에게 늘 용돈을 주잖아."
지난 주말에는 연휴가 겹쳤지만 나는 무척 바쁘게 보냈다. 일요일은 이선관 시인 둘째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 결혼식을 핑계 삼아 가까운 사람들과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하루종일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지난해 가을에 이 세상을 훌쩍 떠나가신 우리 아버지의 첫 생신이었다.
"아빠!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날을 만들었지?"
"그래."
"근데 언제부터 만든 거야?"
"어린이날은 방정환 선생님께서 1922년에 만든 거야. 그때는 5월 1일이 어린이날이었지. 그러다가 1946년부터 매년 5월 5일이 어린이날이 된 거야."
어린이날이기도 했던 그날 아침, 4남1녀의 우리 형제 모두가 큰집에 모여서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부모님 산소에 가서 잡초를 뽑은 뒤 다시 큰집으로 돌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보니 나는 어린이날이라는 것을 그만 깜빡 잊어먹고 말았다.
큰딸 푸름이와 둘째딸 빛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큰집에 간 두 딸들은 형제들과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맞이하는 첫 생신을 어린이날에 맞추어 손자와 손녀들에게 큰 선물을 주신 것만 같았다.
그래. 선물이 꼭 무엇을 주고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형제들끼리 단 하루라도 오손도손 어울려 지내는 그것이 가장 큰 선물이 아니겠는가.
"근데 아빠! 푸름이 언니는 가게에서 카네이션을 샀다? 그리고 선물도 준비했다?"
"근데 왜?"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카네이션을 직접 만들었거든. 그리고 선물은 못 사고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거든."
"그래? 빛나가 직접 카네이션을 만들었어?"
"응. 카네이션은 학교에서 만들었고, 편지는 내가 그냥 썼어."
"그래. 아주 잘했어."
그리고 빛나는 이렇게 덧붙혔다. 아빠는 카네이션을 두 개를 달아야 된다고. 내가 왜냐고 묻자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그냥? 그래. 둘째딸 빛나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궁색하기만 하면 그냥이라는 말을 했다. 빛나의 그냥이라는 그 말은 아마도 아빠를 사랑하니까란 말의 준말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