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푸름이의 편지이종찬
"푸름 그리고 빛나!"
"아빠아~"
"그래. 저녁은 먹었어?"
"응. 근데 잠깐만"
"왜?"
"여기"
"아빠! 내가 달아줄게"
지난 토요일 밤이었다. 그날 내가 9시쯤에 집에 도착하여 막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푸름이와 빛나는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빨간 카네이션을 내밀었다. 그리고 두 딸들은 서로 자기가 먼저 내 가슴에 꽃을 달아준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아빠 이거 선물이야"
"선물은 무슨... 이게 뭔데?"
"어서 풀어봐"
"어, 이게 무슨 컵이야?"
"녹차 걸러먹는 컵이야"
"왜 이렇게 비싼 걸 샀어?"
"아빠 건강하라고"
큰딸 푸름이는 그동안 모은 용돈을 몽땅 다 털어, 백화점까지 가서 그 컵을 샀다고 했다. 참으로 기특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열세 살 먹은 큰딸이 벌써 제 아빠 건강까지 걱정할 정도로 마음 씀씀이가 깊어졌단 말인가.
언제나 절 사랑해주시는 부모님께...
엄마, 아빠 안녕하세요? 저, 큰딸 푸름이에요. 어버이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음.. 우선, 죄송하다는 말부터 올립니다. 그동안 툭하면 짜증내고, 회풀이하고, 결국 부모님까지 저로 인해 화가 나셨었죠? 그럴 때마다 오히려 제가 더 화를 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왜 제가 화를 냈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할게요.
또, 감사하다는 말도 해야겠어요. 13년 동안, 저를 이렇게 별 탈없이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단 말 한번 제대로 못했네요. 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보시면서, 저를 뒤처지지 않는 딸로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힘드셨어요? 피아노, 미술, 수학, 영어, 과학이며 제가 부족하다 싶은 것들을 채워주시려고 하시는 맘도 이해 못하고...
앞으로, 부모님 마음과 생각에 걸맞는, 뒤쳐지지 않는 딸로 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부모님, 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이렇게 편지로 표현해 봤습니다. 늘 사랑하고, 감사해요!
2003. 5. 6. 화요일
엄마 아빠의 큰딸 푸름 올림
그랬다. 이제 큰딸은 내가 만만하게 볼 정도의 어린애가 아니었다. 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고, 부모의 마음까지도 어느 정도 궤뚫어 볼 줄 아는, 제 외할머니 말씀대로 표현하자면 속에 꼬리 아홉 달린 여시가 몇 마리나 든 애어른이었다.
내가 막 큰딸의 편지를 다 읽고 뿌듯한 마음으로 푸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 제 방에 들어가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던 빛나의 표정이 갑자기 뾰루퉁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새 두 눈에 눈물방울이 글썽글썽했다.
"빛나야! 갑자기 왜 그래?"
"아빠! 아빠에게 써 놓은 편지가 없어졌어"
"그래. 괜찮아. 그 대신 빛나는 아빠한테 카네이션을 두 송이나 달아줬잖아"
"한송이는 선물로 만들었던 거란 말이야"
"???"
"아빠! 잠깐 기다려"
큰딸 푸름이는 엄마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같이 썼다. 하지만 빛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따로 따로 썼다고 했다. 그리고 한 통은 어버이날 아침에 엄마에게 전해주고, 나머지 한 통은 내가 집에 오면 전해주기 위해 제 책상 서랍에 넣어뒀다고 했다. 그런데 그 편지가 아무리 찾아도 없다며 다시 쓴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