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27

소녀는 죽어도 못 가요! (2)

등록 2003.05.08 12:41수정 2003.05.0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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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하마터면… 그나저나 이상하네? 아까 분명히 뇌옥에 가둔다고 하였는데…? 그럼, 여기말고 뇌옥이 또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왜 내가 모르지?'

이곳에 부임한 직후 분타주가 직접 내부 안내를 해준바 있었다. 당시 얼마나 자세히 설명하였는지 빨리 끝내고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여 그때 들었던 설명을 떠올려보았지만 뇌옥이 두 군데 있다는 설명은 없었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할 수 없이 분타주 집무실 쪽으로 향했다. 아주 가끔은 단도직입(單刀直入)적인 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때가 있다. 하여 직접 물어보려는 것이다.

잠시 후, 분타주 집무실에 당도한 이회옥은 문고리를 잡으려다 그대로 굳었다. 분타주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흠! 그러니까 놈이 순찰과 만난 적이 있다는 말이지? 좋아, 그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지. 물론 우연히 만난 것이겠지?"

"아닙니다. 당시 순찰께서는 다향루 후원에서 일타홍이라는 계집과 그년의 할애비, 그리고 하옥된 놈과 분타주께서 순찰에게 선물로 준 계집과 함께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척 화기애애하였습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우연히 만난 것은 아닌 듯 싶었습니다."

"설마…? 순찰은 소성주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인데…? 흐음! 어찌 되었건 네가 보기엔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는 말이지? 좋아, 그렇다면 이 순찰이 언제 놈들과 함께 있었느냐?"
"예! 일타홍이라는 계집이 무엄하게도 본성 사람들의 다향루 출입을 금(禁)한 다음이었습니다."


"뭐라고…? 그 괘씸한 계집 때문에 본좌의 체면이 구겨진 다음에 그랬다고? 그런데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였다고? 그렇다면 순찰이 놈들과 전부터 내통해 왔다는 말밖에 더 되느냐?"
"그, 그건 속하도 잘…"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당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느냐?"
"그, 그건…! 죄송합니다. 속하가 거기에 갔을 때에는 자리가 파할 무렵인지라 제대로 들은 것은 없습니다."


"아무튼 놈들과 순찰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안면이 많거나 아주 가까운 듯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누가? 하옥된 놈이?"
"아, 아닙니다. 순찰께서 놈에게 어르신이라 하였습니다."
"무어라? 대 무림천자성의 순찰이 한낱 간세 나부랭이에게 어르신이라는 존칭을 썼다고?"

분타주가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듯한 소리에 이어 보고하는 자의 기어들어 가는 음성이 있었다.

"그, 그러하옵니다."
"흐음! 어르신이라… 대인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고… 어르신이라고 했단 말이지? 그 말은 아주 가까운 인척 관계에서나 쓰일 법한 말이거늘… 그렇다면 놈과 순찰이 한 패거리인가?"

분타주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이회옥은 슬그머니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결백하다 하더라도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의 귀로 분타주의 음성이 들렸다.

"지금 즉시 총단으로 순찰의 신분을 조회해달라는 특급 전서구를 띄워라. 그리고 즉각 분타 전체에 천라지망을 펼치도록 하라. 그 어느 누구도 밖으로 못나가게 하라. 알겠느냐?"
"존명!"

"너는 대원들을 데리고 순찰의 처소를 감시하라."
"예에…? 지금 순찰의 처소를 감시하라 하셨습니까? 그건 규정상… 순찰은 분타주님과 대등한 지위이고, 속하에게는 상관인지라 규정상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흥! 그건 그에게 아무런 죄가 없을 때의 이야기이지. 이 순간부터 순찰은 간세와 한 패거리가 아닌가 하는 용의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혐의가 벗겨질 때까지는 더 이상 너의 상관이 아니니 시키는 대로 해라. 모든 책임은 본좌가 진다. 알겠느냐?"
"존명!"

"흥! 아까 그 계집은 분명 처녀였다. 네 말대로 순찰과 그 계집이 가까운 인척 관계이라면 오늘 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흥! 사람인 이상 인륜을 어기지는 않겠지."
"……!"

"그렇지 않다면 분명히 품을 것이다. 순찰도 사내이니 그토록 미색 뛰어난 계집을 그냥 두지는 못할 것이야. 그러니 아무 일도 없거든 즉각 전각을 봉쇄하고 본좌에게 보고해라."
"존명!"

"크흐흐! 수고했다. 만일 순찰이 간세와 일당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네게 특별히 조연희라는 그 계집을 주마. 제법 미색이 뛰어나니 품을 만할 것이야. 크흐흐!"
"핫! 정말이십니까? 분타주님! 가, 감사합니다."

보고하던 자는 주어질 상이 마음에 든다는 듯한 음성이었다.

한편 이회옥은 안색이 돌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라지망이 펼쳐지기 전에 외부로 나가야 하는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혼자 몸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으나 조연희를 데리고 나가야 한다면 사정이 다르다.

전에 분타주가 말하길 천라지망을 펼치라는 명만 내리면 일 다경도 채 되지 않는 시간만에 선무분타 전체가 용담호혈(龍潭虎穴)로 변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신의 처소로 가서 그녀를 데리고 나갈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강하기로 소문난 정의수호대원들을 격파하고 나갈 자신이 없으면 꼼짝없이 분타 내에 억류되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싫든 좋든 조연희의 청백을 깨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것은 혼인을 한 부부 사이에만 있을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혼인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칭한다. 맨 처음에 누가 이런 표현을 썼는지 너무도 절묘한 표현이다. 보통의 인연으로는 결코 맺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천년에 한 번씩 바다 위로 떠오르는 거북이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판자에 뚫린 구멍으로 머리를 내미는 것과도 같은 인연이 있어야 부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끝도 한도 없을 것 같이 넓디넓은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분명 남(男)과 여(女)가 있고, 노(老)와 소(少)가 있다. 그리고 시간은 쉬임 없이 흘러가고 있다.

따라서 같은 시대에,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옷깃만 스쳐도 삼천 겁에 걸친 인연이 있었다고들 하지 않던가!

설사 이렇게 만났다 하더라도 남(男)과 남(男)이거나, 여(女)와 여(女)라면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다.

또한 노(老)와 노(老), 노(老)와 소(少), 그리고 소(少)와 소(少)가 만나도 부부의 연을 맺기 어렵다.

설사 적절한 나이의 남녀가 만났다 하더라도 남매지간이거나 아주 가까운 인척지간이면 맺어지고 싶어도 맺어질 수 없다.

남녀가 만나 부부지간이 되려면 서로 적절한 나이여야 하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야 하며, 나아가서 깊은 정분이 쌓여야 한다. 이러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이렇듯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지기에 혼인(婚姻)이라 칭하고, 혼례(婚禮)라는 장중한 예식을 치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천지신명에게 부부가 된다는 것을 고한다.

지금껏 수없이 많았던 인연의 연속이 이제야 말미암아 화려한 결실을 맺었다고 알리는 것이다.

여인에게 있어 청백(淸白)이 지닌 의미는 참으로 중대하다.

천생연분을 만났을 때 비로소 깨어지는 것이며, 이제 다른 사내와는 인연 맺을 수 없다는 의미로 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깨어지면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하긴 여러 번 깨질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단 한번뿐이기에 더욱 빛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청백이 깨어질 때 느껴지는 파과(破瓜)의 고통은 평생 사랑 받아 마땅한 자격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연은 또 있다. 바로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이다. 자식이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산모는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결국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고통을 빚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 고통 역시 평생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아 마땅한 자격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아무튼 이회옥으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혼자 어디론가 피신하자니 조연희가 걱정되었다. 틀림없이 능욕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의심받지 않으려면 싫던 좋던 그녀의 청백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일타홍과 조연희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번도 혼례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격지심(自激之心) 때문이었다.

이마에 징그러운 흉터가 있는 사내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한꺼번에 두 여인이 그것을 뒤흔들었다.

너무도 아름다워 하나는 천상옥녀(天上玉女) 같았고, 다른 하나는 월궁항아(月宮姮娥)에 비견할 만한 여인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자신의 흉터를 징그러워하지 않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 대한 호감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일타홍에게는 이회옥이 조부의 손님이었고, 조연희에게는 부친이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의 때문에 그렇게 대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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