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에서 독립전쟁의 영웅이 된 홍범도 장군
홍범도
홍범도는 1868년 8월 27일(음력), 평양시 서문안 문렬사 부근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고조부는 평안도 용강군 화장골에서 살았는데 순조 때 농민의 난을 일으킨 홍경래(洪景來)와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는 홍경래 난이 실패로 돌아간 후, 일가친척이 화를 입게 되자 가족을 이끌고 평양으로 와서 장사를 하며 살았다.
홍범도 아버지 홍윤식은 할아버지 생전에 남긴 빚 때문에 머슴살이를 했다. 홍범도 어머니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다.
그녀는 인물이 남달리 뛰어나 관기(官妓)로 뽑혀갈 처지에 이르자, 외가어른들이 서둘러 홍윤식과 혼인시켰다.
가난한 부부는 생계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혼 이태 후에는 아들을 얻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 임신기간에 영양 섭취가 부족했던 산모가 해산한 뒤 하혈이 심하여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신음하다 이레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홍윤식은 심청의 아비처럼 동네 아낙네들에게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어린 아들을 길렀다. 그러나 그도 아들이 아홉 살 되던 해 열병으로 세상을 떴다.
일찍 부모를 여읜 홍범도는 머슴살이, 병정, 막일꾼 등 닥치는 대로했다.
그는 공장에서 막일꾼 생활 중에 부도덕한 공장주가 품삯을 일곱 달이나 주지 않고, 도리어 먹고 입고 잠잔 값을 받아야겠다는 데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공장주를 냅다 꽂고서는 그 길로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외금강 신계사 주지 스님 앞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러나 평생을 절간에서 보낼 사나이가 아니었다. 한 해 남짓 수도 생활을 청산하고 하산했다.
그때 홍범도는 수도 생활 중에 여승 옥녀와 정이 들어 뱃속에 아이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옥녀의 고향인 북천으로 가고자 봇짐을 지고 금강산을 떠났다.
하지만, 원산 교외에서 불한당으로부터 변을 당해 홍범도는 옥녀와 생이별을 하고 방랑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