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하다꼬요? 노름판이다 아입니꺼"

대전 각계 인사들 창원경륜장 시찰... "형식적" 비난

등록 2003.05.11 23:06수정 2003.05.1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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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경륜장이요? 결사 반대입니더. 뭐가 좋다꼬 할라는지 모르겠십니더. 저야 돈 잃은 게 있으니까 본전 찾을라꼬 오는 거지만 할 게 못됩니더. 완전 노름이다 아입니꺼."

대전시가 대전경륜장 건립 추진을 발표하고 나선 이후 10일, 지난 2000년에 개장한 창원경륜장의 시설 및 운영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체육계 인사, 언론인 등 40여명과 함께 창원경륜장 시찰에 나섰다.

a 경남 창원시 두대동에 위치한 창원경륜장

경남 창원시 두대동에 위치한 창원경륜장 ⓒ 오마이뉴스 정세연

"대전에 경륜장이요? 결사 반대입니더."

주말 오후 창원경륜장에서 만난 김모(33) 주부. 2년간 매 주말마다 경륜장을 찾고 있지만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게 경륜장에 대한 김씨의 입장이다.

"처음에는 남편 따라 왔는데 계속 돈을 잃으니까 안 올 수가 없다 아입니꺼. 가끔 아이도 데리고 오지만 작으니까 데리고 오지 큰애들은 데리고 오지도 못합니더. 욕하고 난리가 나는데 아이들한테 그런 걸 어찌 보입니꺼."

유모차에 아이를 재워놓고 선수 출정표를 들여다보던 김씨는 대전경륜장 이야기를 꺼내자 '결사 반대'라며 쌍수를 들었다.

"우린 왜 반대를 몬했는지 모르겠십니더. 창원시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데라서 제대로 반대 한 번 못하고 만들어졌는데, 좋다는 사람 없을 낍니더. 경륜하다 패가망신한 사람도 많이 봤습니더."


경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정모(남.43)씨는 "절제만 한다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정씨는 한 번 베팅에 2~30만원씩을 건다. 경륜 베팅금액이 최소 100원에서 최고 5만원까지 제한을 두고 있지만 실제 규제가 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

정씨는 또 "돈 있는 사람은 이런 데 오지도 않는다"며 "가진 거 없는 서민들은 한 번의 대박을 꿈꾸며 경륜장에 돈을 처넣지만 그 돈이 다 누구 호주머니로 들어가겠나. 결국 우리 같은 서민들만 죽어가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경주가 시작되자 긴장감이 장내를 뒤덮고 "그래, 밟아라 밟아" "오천원 오천원" 등의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5분도 채 안 돼 한 경기가 끝나고 돈을 잃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터져 나온다. 돈을 딴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그 기쁨을 혼자 만끽해야 한다. 이날 8경주(1일 13경주)의 매출 총액은 2억161만원.

a 경주권구매표, 100원에서 5만원까지 베팅할 수 있지만 1회 수십만원씩 베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경주권구매표, 100원에서 5만원까지 베팅할 수 있지만 1회 수십만원씩 베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 오마이뉴스 정세연

창원경륜장 인근의 주민 박모씨는 경륜에 빠져 3천만원의 빚이 생겼다며 한탄했다.

"나도 그거(경륜)에 빠져 신용카드로 돌려치기 하다가 3천만원 빚이 생겼습니데이. 대전시도 정신차리라고 하쇼. 그거 짓는 순간 시민들 다 거러지 만드는 거레이."

창원시 내동 공단파출소의 경찰은 창원경륜장으로 인해 교통대란은 물론 다른 운동시설 이용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원경륜장 주변에는 다른 운동시설이 함께 있는데 경륜장에 오는 사람들이 항상 모든 주차장을 다 이용하니 다른 시설을 이용하러 온 사람들이 이용할 주차공간이 없어 애를 먹습니다. 또 경기가 끝나는 시간이면 일대 교통혼잡은 말할 수도 없지요."

매주 금, 토, 일요일에 개장을 하는 창원경륜장은 주 이용객이 1만5천명에 달한다. 주말 오후 컵라면 하나로 허기를 달래며 경륜을 즐기는(?) 사람, 자리가 없어 통로 바닥이건 화장실 바닥이건 주저앉아 출주표를 뒤적이는 사람, 애꿎은 담배만 연신 태우며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TV모니터를 바라보는 사람 등으로 창원경륜장은 주말은 바깥의 화창한 봄날씨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전경륜장 건립,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조사 필요

대전시의 창원경륜장 시찰에 대해 대전YMCA 이충재 사무총장은 "대전시는 창원경륜공단의 소리만 들어서는 안 되며 창원 주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형식적인 시찰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대전경륜장 건립 사업이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금홍섭 시민사업국장은 "부산, 광주, 전남, 대전 등 권역별로 대형도박장이 들어설 예정에 있고, 창원경륜공단 역시 앞으로의 매출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이다"며 "창원경륜장의 올해 매출만 해도 20% 가량 떨어진 상태인데, 대전시는 미온적인 평가로 대전경륜장 건립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금 국장은 이어 "실제 창원경륜장 주변의 슈퍼마켓이나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고 이는 이용객들이 주변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대전시에서 예측하는 대로 수익이나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a 창원경륜공단의 설명을 듣고 있는 시찰단

창원경륜공단의 설명을 듣고 있는 시찰단 ⓒ 오마이뉴스 정세연

반면 대전시체육회 이창섭 사무처장은 "대전경륜장 건립 사업이 지방재정확충과 사행성이라는 양면성이 있지만 어떤 사업이든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넓게 내다보고 무엇이 먼저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대전경륜장 건립 사업에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변기수(전 유성구청장)씨는 "대전시의 당면과제는 지방재정확충이며 이를 위해 대전경륜장 건립은 불가피하다"며 "대전은 창원보다 지리적 여건이 좋아 창원경륜장만큼 전망이 불투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전시 문화체육국 전의수 국장은 "시에서 계획하고 있는 대전경륜장은 시민들에게 복합적인 체육문화공간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건전한 레저시설이냐 사행심을 조장하는 도박시설이냐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충분히 검토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안을 찾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창원경륜장은 2000년 12월에 개장해 연간 1200만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지난해 총 매출은 7101억, 지방세수 총 수익은 1069억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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