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씨앗'을 뿌리는 백기완 할아버지 이야기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

등록 2003.05.12 16:40수정 2003.05.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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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의 가난이란 본디부터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못된 놈들이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어서 가난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하고 말하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일흔 나이를 넘기고 다리를 절뚝거리는 몸으로 지금도 시위 현장으로 나가서 비틀린 현실은 바로잡고, 잘못된 역사는 올곧게 다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올해 첫머리에 조용조용 나와서 우리 앞에 선보인 백기완 할아버지 책입니다. <항일민족론> <백범어록>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같은 책을 펴내며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와 역사를 바르게 알고 올곧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온몸으로 말하고 온마음으로 글로 써온 백기완 할아버지 책입니다.

청년사
백기완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나이 일흔이 되었어도 할 말이 참 많고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사회는 조금씩 좋아지고 나아지지만 아직도 모자란 게 많아서 그렇습니다. 조금씩 민주주의 제도가 자리잡혀 가지만 아직도 제대로 뿌리내리거나 가지를 뻗지 못해서입니다. 백기완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말합니다.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어떤 못된 놈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맞서야 한다고요.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라는 책에서 백기완 할아버지는 다섯 가지 이야기를 펼칩니다. 첫째는 어더렇게 해서 남녘과 북녘이 갈라졌는지를, 둘째는 이 나라의 기둥이 되는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서 누구였는지를, 셋째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 나라를 얼마나 괴롭혔는지를, 넷째는 요즘 사람들과 서울이라는 곳 삶이 얼마만큼 삶다운 삶인지를, 다섯째는 분단과 전쟁이 물결치는 요즘 세상 위에서 하나됨으로 나아가는 길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2>

`백기완 젊은이'에서 `백기완 할아버지'가 된 그 사람. 그 사람 백기완 할아버지는 서울에 와서 지하철을 탈라치면 어린 학생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일어서서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지요. 그러면 당신은 `늙수그레한 사람이 어찌 어린 학생들 앉을 자리를 빼앗느냐' 하고 생각하고 미안하게 여기지만 이미 당신은 늙은 몸입니다. 더구나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된 몸이에요. 늙고 병든 몸을 어쩌지 못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하지만 앉아 있으면서도 엉덩이가 들썩들썩 다시 일어나서 어린 학생들을 앉히고프답니다. 어린 학생들이야말로 이 모진 나라를 힘차게 일으키고 이끌어나갈 기둥이자 희망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래,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할아버지는 자기에게 자리를 내준 학생에게 묻습니다.


"거, 학생. 고등학교쯤 되면 학교에서 역사라는 것도 배웁니까?"
"배우지요. 서양사도 배우고요."
"그러면 우리 나라 통일 운동의 역사도 배우겠네요?"
"네?"
"보길 들어 우리 나라가 어째서 이렇게 허리가 뚝 하니 잘렸으며 또 그것을 하나로 하고저 해서는 어더렇게 싸워오고 있다는 역사 말이오."
"아, 그거요. 그런 것은 과목으로 배우진 않는데요."
"그러면 선생님한테 듣기라도 합니까."
"선생님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따금 우리나라 통일문제를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요? 그러면 백범 김구 선생과 몽양 여운형 선생의 마지막 싸움 이야기도 들었겠네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름만 알 뿐 어떤 분들인지는 잘 몰라요." <97쪽>


...... 할아버지는 두 분 어르신을 아주 높이 우러릅니다. 한 사람은 백범 김구 선생이고 한 사람은 몽양 여운형 선생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 한 자리 나눌 젊은 사람이 있으면 대뜸 두 어른이 살아온 삶과 우리 나라 아픈 역사를 아느냐고 물어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어물어 보아도 제대로 배우고 아는 학생들이 드물거나 거의 없더랍니다. 기가 찬 할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픈 마음이 굴뚝 같답니다. 하지만 그게 어린 학생 탓이겠습니까?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시험 성적과 대학입시에만 목을 매달게 한 지금 현실이 문제예요. 집안에서도 아이들에게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 사회가 어떠한지, 딸아들이 앞으로 살아갈 우리 나라는 어떠한 나라로 가꾸어야 좋은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는 이야기란 그저 이 세 가지가 아닐까요.


1.시험점수 잘 따라
2.일류대학 들어가라
3.대기업 취직해서 돈 많이 벌어라

할아버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쩌는 수 없습니다. 당신 나이를 속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기라도 하면 `원, 미친 늙은이 다 있네' 하는 소리를 듣기에 딱 알맞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을 어린 학생들이 백기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로,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받아들인다손 치더라도 교실로 돌아가면 다시 교과서와 참고서에 파묻혀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 잊어 버리고 자기 이야기가 아닌 듯 여기기 쉽습니다.

<3>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는 잘 엮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옛날이야기책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 역사가 어떤 발자취로 이어져 왔는지, 또 이 나라 보통사람(민중)들이 자기가 일한 댓가를 제대로 받으며 살아오고자 어떻게 애를 써 왔는지, 하지만 일한 몫을 받지 못하고 양반 나으리, 일본 제국주의자, 미국 제국주의자들 등쌀에 얼마나 짓밟히고 억눌렸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온누리를 집어삼키려고 무턱대고 힘 여린 나라를 쳐들어가서 엄청난 폭탄을 퍼붓는 미국이란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 여성을 마구잡이로 끌고 가 성노예로 부려먹고도 사과 한 번 않는 일본이란 나라도 있고요.

우리 아이들은, 자라나는 기둥이자 희망인 우리 아이들은 우리 지난 삶과 지금 삶과 앞으로 살 삶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 일하는 어른이 우리 이야기를 읽고 제대로 익힌 뒤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나눠야겠고요. 일하는 사람이 일하는 대접을 받고 힘차고 아름답게 살아갈 날을 생각한다면 말이죠.

..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으뜸으로 값진 것은 바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저 해서는 아름다운 씨앗을 하나 가슴에 품어 싹을 틔워 키워서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씨앗을 첫판부터 품지 않는다고 할 것이면 그 사람은 어찌 될까요. 아무리 키가 커도 사람으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짐승보다도 못한 짐승, 사람의 사람됨을 깨트리고 되싸게는 자연까지 깨트리는 끔찍한 짐승으로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하는 줄 아세요. 괴물? 아닙니다. 그러면 악귀잡신? 아니라니깐요. 그러면 무엇이냐, 썩물이라고 한다, 이 말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란 아무리 적더라도 아름다운 씨앗 한 알쯤은 꼭 품고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키워 세상을 온통 아름답게 꾸미고저 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야 합니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사람의 속과 아름다운 겉을 하나로 하려고 애쓰는 것이 곧 사람입니다 .. <441쪽>


백기완 할아버지는 한겨레가 한 나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라를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도, 지나치게 부자인 사람도 없이 골고루 잘 살아가는 나라를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힘이 세다고 힘이 없는 이를 뭉개거나 등쳐먹지 않으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나라를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가슴속에 조그마한 씨앗 하나, 사랑과 아름다움이라는 씨앗 하나를 안고 말이죠.

이제 백기완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우리들도 가슴속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씨앗 하나를, 꿈 하나를 품자고요. 그래서 우리 다 함께 우리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사람은 사람답게, 자연은 자연답게 살아가는 터전을 가꾸자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는 잘 빚은 역사 이야기책은 못 됩니다. 하지만 우리 가슴속에 사랑과 아름다움을 담은 씨앗 하나를 싹틔우는 조그마한 꿈 하나는 될 수 있지 싶어요.

백기완의 통일이야기

백기완 지음,
청년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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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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