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

등록 2003.05.13 18:32수정 2003.05.13 18:4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깊은 슬픔 이란 단어를 얼마나 깊이 또 슬프게 느끼십니까?


제가 사는 시골에 은퇴한 장로님이 살고 계십니다.
그 분 역시 평범한 촌로답게 자식들을 모두 도회지로 보내고
부인과 함께 농촌을 지키며 살고 계셨습니다.

두 내외분이 모두 연로 하셨고 자식들마저 같이 살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장로님 댁 일손을 많이 봐주고 계십니다. 허리가 많이 굽어 걸으실 때 뒤에서 보면 참으로 애처롭게 보이곤 했었습니다. 그분의 집은 산 밑에 있어서 마을끝에 위치한 우리집에서 보면 그분의 집이 먼발치로 보입니다. 저번 주 시골집에 갔었을 적에 집에서 보니 장로님이 평상 그늘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아스라이 보이더군요.

하지만 저에겐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오늘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일하던 중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며칠전 시골집에 갔었을 때 먼말치로 뵈었던 그 장로님께서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논에서 일을 마치시고 도로로 올라 오시던 중 술에 만취한 젊은이들이 운전하던 차에 치이셔서 돌아가셨더군요. 그것도 아주 참혹하게 말입니다. 순간 귀가 의심스러웠고, 상대방이 뭔가 잘못 알고 이야기 하는 줄 알았습니다.

분명히 저번주 시골에서 직접은 아니지만, 당신 집 평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뵙고 올라 왔던 저에겐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한 촌로를 그렇게 운명을 달리 하게 한 그 음주 운전자들이 정말 싫어졌습니다. 무엇으로 이 슬픔을 달래야 할까요? 더군다나 장로님 가족들의 충격은 또한 얼마나 클까요?

음주운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는 그 구호가 지금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에 애쓰며
농촌을 지키시던 장로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 가슴 먹먹하게 합니다.


앞으로 시골집에 가면 그 장로님댁쪽을 바라보면 참 많이 서운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깊은 슬픔을 느끼는 그런 하루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