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34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4)

등록 2003.05.16 13:14수정 2003.05.1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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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까지도 선무곡은 강한 문파가 아니다. 더 강해지고 싶어도 강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림천자성의 교묘한 수작 때문이었다.


사실 무림천자성이 마음만 먹었다면 선무곡 정도는 얼마든지 집어삼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은 것은 당시로서는 계륵(鷄肋)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는 계륵에 관한 기록이 있다.

위왕(魏王) 조조(曹操)는 대군을 이끌고 한중(漢中)으로 원정을 떠났다. 익주(益州 :사천성)를 차지하고 한중으로 진출하여 한중왕을 일컫는 유비(劉備)를 치기 위해서였다.

이에 유비의 군사는 제갈량(諸葛亮)의 계책에 따라 정면 대결을 피한 채 시종 보급로 차단에만 주력했다.

조조는 오랜 출전에도 불구하고 별 소득이 없어 고민 중이었다. 진격하자니 쳐나갈 수 없고, 철수하자니 아까웠다.


게다가 보급로가 끊겼기에 군량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여 탈영하는 병사들의 수효도 적지 않았다.

마침 밥상에 닭고기 국이 올라왔다. 조조는 국에 들어있는 닭갈비를 한참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그때 한 장수 하나가 들어서며 저녁 암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물었다. 이때 조조는 계륵이라고 하였다.

계륵이라는 암호가 전군에 전달되자, 주부(主簿) 벼슬에 있던 양수(楊修)는 서둘러 장안(長安)으로 철수할 준비를 하였다. 이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 물어보자, 양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닭의 갈비는 먹으려 하면 먹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내버리기도 아까운 것이오. 한중(漢中)을 여기에 비유한 것은 승상께서 군대를 철수하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겠소? (修獨曰 夫鷄肋 食之則無所得 棄之則如可惜公歸計決矣)"

과연 오래지 않아 조조는 철수 명령을 내렸다.


무림천자성으로서는 굳이 손바닥만한 선무곡을 복속시켜 보았자 복잡한 문제만 발생할 뿐이라 판단하였다.

그렇기에 마음씨 좋은 후원자처럼 굴었던 것이다.

이후 선무곡은 무엇이든 무림천자성이 하자는 대로 하였다. 하여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되었다. 최근에 일어난 마차 살인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이 벌어지자 선무곡 사람들은 전에 없던 행동을 취하였다. 일부 젊은 청년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무림천자성에 대한 반기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들게 된 것이다.

한번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던 분타주로서는 실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고가 난 뒤 선무곡 사람들이 요구한 것은 무죄 방면된 호위무사들을 다시 불러들여 두 소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처벌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타 지위 협정서의 불공평한 내용을 공평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다시 개정하자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철룡화존 구부시의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였다. 분타주 입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들어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무죄방면하고 다른 곳에 배치한 호위무사를 불러들여 처벌한다는 것은 작게는 분타주 자신의 권위 실추와 관련지어지고, 나아가서는 무림천자성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타 지위 협정서 개정도 마찬가지이다. 어찌 선무곡 같이 조그만 문파가 감히 무림제일 문파인 무림천자성과 동등한 자격을 논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이것 역시 어떠한 상황이 되더라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판단하고 있었다.

마지막은 더 했다.

철룡화존은 무림천자성의 현 성주이다. 따라서 명실공히 전 무림을 다스리는 무림천자나 마찬가지인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런 성주에게 공개적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보고조차 불경스러워 하지 못할 정도였다. 따라서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전 같으면 이럴 때 선무곡의 수뇌부들에게 적당히 압력을 가하면 이런 상황이 곧 수그러들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었다. 무림천자성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의 수효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수뇌부에 압력을 가하였으나 전과 다르게 난색을 표하였다.

현 상황에서 잘못 나섰다가는 반역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물론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면서 한발 물러서 버린 것이다.

그러나 골이 빈 삼의(三醫) 즉, 방조선, 금동아, 이중앙만은 역시 달랐다. 무림천자성의 명이라면 하늘의 명이라 생각하고 있는 그들은 연일 반기를 든 사람들에게 잘못된 행동이라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예전엔 삼의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해산했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만 더 그런 소리를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던 것이다.

하여 무림천자성에 가장 협조적인 삼의조차 제대로 나서기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것은 차기곡주로 선출된 일흔서생이었다. 과거의 선무곡주들은 무림천자성의 요구라면 찍소리도 못 하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해산시키고, 모든 것들을 처리했다.

그런데 일흔서생은 그들과는 사뭇 달랐다.

형식적으로는 해산을 요구하였으나 그것이 그의 속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더 많이 모여서, 더 강하게 항의해 달라는 주문과 같이 들렸던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불공평하기 그지없는 분타 지위 협정서를 개정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나타난 일종의 이심전심(以心傳心)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각수 도날두로부터 제반 설명을 들은 철룡화존은 화가 났다.
물에 빠진 자를 구해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알라 협박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놈들 같으니… 은혜도 모르고 어디에서 감히? 뭐? 누구에게 사과를 하라고? 이런 미친놈들을? 현재 선무분타의 분타주는 누구냐?"
"예, 백안무발 허보도입니다."

오각수의 대답에 철룡화존은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그에게 명을 내려 당장 그곳을 쓸어버리라고 해라."
"그건 안 됩니다."
"안 된다고? 안 되긴 뭐가 안 돼? 쓸어버리는 김에 주석교까지 완전 박살내라고 해라."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선무분타와 왜문분타에 주둔해 있는 제자들이 몰살당합니다. 그들이 죽으면 본성 내부에 있는 그들의 식솔들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으으음! 그으래…?"

잠시 침음성을 토한 철룡화존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좋다. 선무분타와 왜문 분타를 즉각 철수 시켜라. 그리고 즉시 보고하라. 놈들에게 새로 개발한 천뢰탄의 위력을 보여주자. 크크! 주석교의 미친놈에게 몇 알 맛을 보여주면 있는 것 몽땅 선무곡에 퍼부을 것이다. 그러면 남북 모두가 초토화되니 우리로서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인 셈이지."

"그것도 안 됩니다."
"왜? 왜 안 된다는 건데? 분타에 있는 제자들을 모두 철수시키면 우리로서는 아무런 피해도 없잖아?"

철룡화존은 사사건건 안 된다고만 하는 철기린이 아들만 아니었다면 한번 쥐어박고 싶은 기분이었다.

"안 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주석교가 모르게 제자들을 철수시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공격하면 그들은 천뢰탄을 선무곡에 사용하지 않을 확률도 있습니다."
"그럼 어디에 사용한단 말이냐?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아닙니다. 그건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놈들에게 감춰둔 천뢰탄이 있다면 왜문에 사용할 확률이 큽니다."
"왜문에? 거긴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문은 전통적으로 선무곡과는 앙숙지간입니다. 지금은 본성과의 우호관계 때문에 서로 건드리지 않고 있는 것뿐입니다. 게다가 최근 왜문의 문주인 간담교토가 선무곡과 주석교의 심기를 심히 거스르는 짓을 자행하였습니다."
"간담교토 고이주가? 그가 뭘 어찌 했는데?"

"왜문에는 제이차 암흑대전을 일으킨 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신총(神塚)이라고 부릅니다."
"신총…? 그런데?"

철룡화존은 화제가 왜 갑자기 왜문으로 옮겨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근에 고이주는 전격적으로 신총 참배를 한 바 있습니다."
"그게 어때서? 그럴 수도 있잖아? 그게 문제가 되나?"

"그렇습니다. 문제가 됩니다. 그것의 지닌바 의미 때문입니다. 왜문은 암흑대전을 일으키면서 선무곡을 흡수 병합하였고, 나아가서는 화존궁과 일월마교까지 침범하였습니다. 그리고 본성의 낙양 무천장을 박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건, 그랬지. 그런데? 그건 이미 과거사가 아닌가?"

철룡화존은 주석교를 공격하자는 데 왜 케케묵은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과거사는 과거사이지요. 이후 왜문은 본성에 항복하면서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의 병장기만 소유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또한 다른 문파를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지요."
"그래, 그것은 알아!"

오랜만에 아는 내용이 나온 것이 반갑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철룡화존은 얼굴이 펴졌다.

"신총은 과거에 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의 무덤입니다. 그 무덤에 대고 문주가 참배를 한다는 것은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킬 의사가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지금 선무곡은 물론 주석교와 화존궁, 그리고 일월마교까지 고이주를 성토하는 중입니다."
"좋아, 좋아! 왜문이 그렇다고 치고, 그게 왜 본성이 주석교를 쳐서 안 되는 이유가 되는지를 설명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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