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필씨 사건, 누가 책임져야 하나

국가 상대 손해배상 항소 기각... 가족들 낙심

등록 2003.05.16 14:25수정 2003.05.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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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민사8부(재판장 이종찬 부장판사)는 5월 15일 지난 97년 이태원 버거킹 햄버거 가게에서 미군속 아들 페터슨과 재미교포 에드워드가 살해한 조중필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은 이유를 들어 항소를 기각했다.

유족들은 "검찰이 유력한 살해 용의자인 페터슨에 대해 출국금지를 제때 연장하지 않아 미국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하지 못하게 되어 정신상의 고통을 입게되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원심에서 재판부는 "그러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1심에 이어 항소심마저 패소 판결을 받게되자 유족들은 애초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허탈한 표정이다.

미궁에 빠진 사건, "국가의 배상책임 없다"

그동안 유족 대표로 소송관계를 맡아온 조씨의 매형 서관호씨는 "그래도 이번엔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일부라도 인정하고 마무리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하며 아쉬움을 표하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국가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니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판결이 날 수 있느냐'고 물어오면 이젠 솔직히 짜증부터 납니다"하고 덧붙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6년 하고도 2개월. 사건 현장엔 조씨 외에 단 두명만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범인이 누구인지조차 밝혀내지 못한 현실은 짜증이 날만도 하다.

a 고 조중필씨

고 조중필씨 ⓒ 이소희

조중필(당시 22세·홍익대 전파공학과 4년 휴학중)씨는 1997년 4월 3일 밤 10시경 이태원 버거킹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뒤에서 갑자기 칼로 좌우 목과 가슴 등을 9회에 걸쳐 찔려 그 자리에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당시 범행 현장엔 조씨 외에 미군속 아들인 페터슨(당시 17세)과 재미교포인 에드워드(당시 17세) 단 두 명만이 있었다. 사건 발생 직후 제보를 받은 미육군수사대(CID)는 페터슨을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수사 후 곧바로 한국측에 신병을 인계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를 담당한 박재오 검사는 용의자 두 명이 서로 범행사실을 미루는 상황에서 에드워드의 단독 범행으로 판단하여 에드워드에 대해서는 살인죄로, 페터슨은 단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 및 증거인멸죄로 기소했다.


이들은 당시 페터슨이 가지고 있던 잭나이프를 이용하여 '무언가 보여주겠다'며 마침 화장실에 가던 조씨를 따라 들어가 '재미로' 사람을 죽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페터슨은 단기 1년과 장기 1년 6월형을 확정받고 복역하다 1998년 8·15 특사로 풀려났고, 에드워드는 1심에서 무기징역, 항소심에서 20년형을 선고받고 대법원까지 간 끝에 1999년 9월 3일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결국 무죄를 선고받게 되었다.

그러자 유족들은 98년 11월 9일 페터슨을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고소하고 즉각 재수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페터슨마저 담당 검사(서울지검 김경태 검사)가 출국금지 기간을 제때에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99년 8월 24일 미국으로 도망가 버렸다. 이후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이기고도 의미없는 판결

이에 유족들은 검찰의 과실로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출국하여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 기회를 잃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이와 별도로 사건 당사자인 페터슨과 에드워드, 그리고 그의 부모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들의 경우 모두 미국에 가 있거나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라 승소 판결이 나도 실제 이를 집행할 방법이 막막해 현실적으로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 좀 더 무게를 실어왔다.

실제로 이번 판결이 있기 이틀 전인 5월 13일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재판부는 "비록 에드워드가 살인혐의에 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적어도 피고 페터슨과 에드워드가 공모하여 또는 위 피고들 중 한명이 다른 한명의 살해행위를 교사하거나 방조하여 별다른 이유도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고는 유족들에게 약 2억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를 두고 여러 언론에서 '승소 판결' 자체에 의미를 두고 크게 보도하기도 했지만 정작 가장 기뻐해야 할 유족들이나 사건을 맡아온 변호인은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판결을 통해 사실상 페터슨과 그의 아버지가 전적인 배상책임을 지게 된 상황에서 그들이 현재 미국에 살고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미국 현지에서 사설탐정을 고용해 찾아보는 방법도 있지만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반드시 찾으리라는 보장도 없어 유족들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런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마저 패소 판결을 받게되었으니 더욱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씨는 "어차피 받지도 못할 것, 승소 판결을 받아봤자 뭐하냐"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은 잠시 감내해야 하는 것"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당연히 국가에 책임이 있는데도 원심에 이어 항소심까지 두번씩이나 패소 판결을 받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a 2003년 4월 3일 모교인 홍익대에서 열린 6주기 추모제에서 어머니 이복수씨, 매형 서관호씨

2003년 4월 3일 모교인 홍익대에서 열린 6주기 추모제에서
어머니 이복수씨, 매형 서관호씨
ⓒ 이소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담당 검사로서 출국금지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직무상 과실은 인정되나 그로 인해 페터슨에 대한 수사 및 공소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어 유족들이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입게되었다는 주장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현재 검찰은 한미형사사법공조조약에 따라 미국 정부에 공식적인 수사공조 요청을 하는 등 현재도 수사를 하고 있고, 페터슨의 살인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증거가 있어야 하나 에드워드에 대한 무죄 판결이 곧 페터슨의 살인혐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며, 사건 발생 당시 수집하였던 증거로도 페터슨의 살인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에 와서 설사 페터슨의 신병을 확보하더라도 새로운 증거를 확보해 수사를 종결하고 공소를 제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반 사정을 감안할 때 단지 수사 검사가 출국정지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모든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검사의 과실로 수사가 다소 지연된 것만으로도 유족들에게 정신적 고통이 야기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국가만이 범죄자에게 형벌권을 행사할 수 있는 현행 사법제도 하에서 그것은 잠시 감내해야 할 정신적 고통이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담당 이현용 변호사는 검찰이 2000년 11월과 2002년 1월 두차례에 걸쳐 사법공조조약에 따라 미국 법무부에 수사공조요청을 했음에도 2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사법공조요청이나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른다해도 수사가 강제성을 갖는 것이 아니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점, 결국 페터슨을 고소한 지 4년이 지난 현재까지 수사공조 요청 외에는 별다른 수사를 하고있지 않는 것은 검찰의 과실로 페터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반박하고 있다.

재판부가 적어도 검찰의 과실을 인정한다면 국가에 대해 일부라도 책임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가해자들에 대해 직접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 현실에서 검찰도, 국가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면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한단 말인가? 재판부의 주장대로 현재 유족들의 고통은 잠시 감내해야 할 정신적 고통에 불과한 것인가? 그러기에 유족들로선 조씨를 떠나보낸 지난 6년 세월이 너무도 길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불평등한 SOFA, 무능한 검찰

사건이 이런 상황까지 오게된 데에는 사건 관계자들 다수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대상자라 수사 및 재판과정에 이들의 출석을 강제하지 못하는 등 SOFA상의 제약으로 인해 사건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가 크다. 그러나 검찰이 초기 수사단계에서부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애초에 공동범행이 아닌 단독범행으로 결론짓는 등 수사당국의 과실도 크다.

사건 발생 당시 수사 검사가 도착할 때까지 사건 현장이 보존되지 못했고 이후 검사는 용의자 둘을 모두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고 한사람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짓는 결정적 우를 범했다.

하지만 살인혐의로 기소되었던 에드워드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고 이때 페터슨은 이미 8·15 특사로 석방되어 신분이 자유로운 상태였다. 그 후 유족들이 그를 살인죄로 고소하였으나 검찰이 출국정지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범인의 도주를 방조하였고 지금껏 재수사에 대한 별다른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녕 국가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우선 재수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재수사에 들어간 지 4년 6개월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미국측에 사법공조요청서 두 번 보낸 것을 가지고 아직 수사가 진행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말하기에도 민망한 일이다. 외교 경로를 통해서라도 페터슨과 관련 참고인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수사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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