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위해 건강빵 만들고 싶어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13) 제과제빵사 윤지현씨의 맛있는 아침

등록 2003.05.16 17:30수정 2003.05.1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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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빵이 익어 가는 소리가 들리나요? 잠을 확 달아나게 만드는 알싸한 냄새가 공허한 위장을 흔들어 깨웁니다.


청명한 햇살도, 부드러운 바람도, 앙증맞은 참새의 아침 인사도 분주한 샐러리맨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영어 테이프를 들으며 중얼거리는 사람도, 신문에 코를 박고 앞도 안보며 걷는 사람도,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정신없이 뛰어가는 사람도 기어이 발걸음을 늦추고야 맙니다.

냉큼 달려가 한 입 베어먹고 싶은 앙금빵이 드디어 그 요염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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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제과제빵사가 된 지 일년 반이 된 윤지현(24)씨는 어린 시절부터 요리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빵보다도 부친개를 더 잘 만든다는 그녀는 빵을 먹는 것보다도 만드는 걸 더 좋아합니다.

이제 막 사회에 첫 걸음을 디딘 나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다른 사회 초년생과 달리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85% 만족하며 첫 직장 생활을 거뜬히 소화해 내고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을 친구들이 부러워 할 때, 자신이 만든 빵을 손님이 많이 사갈 때, 부모님이 빵을 맛있게 드실 때 그녀는 일의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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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멀찍이 떨어져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븐의 열기에 숨이 차 오르는 군요. 100도와 200도 사이를 오가는 뜨거운 오븐 옆에서 빵을 굽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그녀가 일을 하며 유일하게 힘들어하는 건 오븐의 열로 가열된 주방의 후덥지근한 온도입니다. 선천적으로 더위를 못 견디는 체질인지라 그녀는 여름이 되면 유독 힘들어 진다고 합니다.


아직은 서늘한 바람에 감기 기운이 감도는 봄이건만 그녀가 있는 곳은 이미 여름의 땡볕이 가득 내리 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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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작고 다부진 손이 쉴 틈이 없군요. 함께 일하는 다른 동료와 눈 마주칠 작은 여유조차도 없습니다.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하여 제과점의 문을 연 그녀는 이른 오후 3-4시에 퇴근합니다.

그녀에게는 하루 중 아침 7시 전후가 가장 분주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는 주로 바게뜨, 소보루, 콘브레드, 베이글 등의 빵이 아침 식사 대용으로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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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녀에게 주5일 근무는 다른 나라 얘기입니다. 한 달에 딱 두 번(평일에 한번, 주말에 한번) 쉴 수 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당시 그녀는 고된 일과와 이른 출근으로 인해 쉬는 날이면 잠자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서야 제법 일이 숙달돼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된 그녀가 제과제빵사의 고된 일에 지쳐 쉬이 그만두는 후배들에게 아쉬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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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오동통 살이 오른 소보루가 숨을 내쉬며 달콤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점잖지 못한 위장이 오두방정을 떨고 자꾸만 입안에선 침이 샘솟아 오르는군요. 울퉁불퉁 제 멋대로 생긴 소보루가 오늘 따라 왜 그리도 탐스러워 보이는지. 평소엔 너무 흔해 쳐다보지도 않던 평범한 빵이었건만 주책없는 눈길이 떠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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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갓 구운 빵의 냄새가 공기에 스며들며 숨가쁜 도시인들을 유혹합니다. 형형 색색의 빵들이 제 각각 개성을 뽐내며 어떤 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군요. 신중히 빵을 고르는 사람들의 침 넘어 가는 소리에 평범한 행복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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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녀는 알까요? 자신이 만든 빵을 먹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맛있는 아침에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지.

"현재의 제 삶에 만족해요. 앞으로도 큰 욕심 없이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할머니가 빵을 못 드시는데 언젠가는 할머니가 드실 수 있는 '건강빵' 을 만들어 꼭 한번 크게 이름을 날리고 싶어요."

'현재' 의 삶을 사랑하는 그녀의 만족스런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공허했던 뱃속에 포만감이 채워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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