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로의 초대 <맑스 코뮤날레>

<제1회 맑스 코뮤날레> 맑스의 부활을 꿈꾸며

등록 2003.05.19 02:30수정 2003.05.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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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

a 맑스 코뮤날레 포스터 이미지

맑스 코뮤날레 포스터 이미지 ⓒ 코뮤날레

이것은 맑스가 가장 좋아했던 경구라고 한다. 하지만 21세기 인류는 과연 인간적인 일에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아니, 오히려 자본의 권력이 그러한 삶으로 내 쫓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진보학자들은 이렇게 자본의 횡포가 날로 심해져 가는 가운데 현실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맑스 코뮤날레 - 지구화시대 맑스의 현재성'을 준비했다. 그래서 이 소식은 더욱 반갑고 절실하게 느껴진다. 오랜 준비기간을 걸쳐서 마련된 <제1회 맑스 코뮤날레>가 2003년 5월 23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25일 일요일까지 이화-삼성 교육문화관(이화여대 후문)에서 펼쳐진다.

맑스 코뮤날레 조직위원회는 결성취지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바 있다.

"모든 진보이론이 맑스이론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맑스이론이 진보이론의 굳건한 주춧돌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모순은 격화되고, 신자유주의의 사회 지배와 함께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전례 없는 생태위기로 전지구적 재난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인류사가 '야만으로의 전락'과 '새로운 희망 창출'의 기로에 접어든 오늘 맑스의 현재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노동자들이 극단적 저항의 몸부림인 자살을 택하고 부조리한 권력의 구도 속에서 모든 피땀을 빼앗기고 있는 게 2003년 한국의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한반도를 맘껏 휘몰아치고 있는 지금 남은 건 자본에 의한 자본의 흡수,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비명소리 뿐인 듯하다.

이번 맑스 코뮤날레 학술문화제는 60명 이상의 맑스주의 학술연구자들이 논문을 발표하고, 국내의 진보적 화가, 음악인 등 수백 명이 참가하여 문화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첫날인 23일에는 '정태춘 박은옥', '박창근', 노동자예술단 '선언'과 풍물굿패 '살판' 등이 참여하는 개막 문화제(맑스야! 놀자)가, 마지막 날인 25일에는 '밴드 천지인', '밴드 바람'과 '최도은' 그리고 인디 록 밴드 '레이지 본'과 '언니네이발관' 등 폐막 문화제(즐거운 혁명, 젊은 연대!)가 준비되어 있다. 발제와 발제 중간에 슬라이드를 첨가해서 이 행사의 문화적 성격이 돋보일 예정이며, 또한 이번 학술문화제의 결과물을 책으로 발간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사회 개혁은 절대 강한 자들이 약해짐으로써 이루어지지 않는다. 늘 약한 자들이 강해짐으로써 이루어진다."

맑스는 노동계급에게 자본주의로부터 자선을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위와 같이 썼다. 그래서 맑스 코뮤날레 조직위원회는 자발적 참여로 이번 행사를 치르기로 했다. 조직위원들과 후원회원들만의 십시일반 후원금으로 <제1회 맑스 코뮤날레>는 태어난다. 그 어떤 기업이나 정부의 보조금은 철저히 배제했다.


조직위원이나 후원위원이 되려면 맑스 코뮤날레 홈페이지나 전화 02) 2679-9711 / 011-9700-9964를 이용하면 된다. 조직위원은 행사의 모든 자료를 무상으로 받게 되며, 후원회원이 되면 발표 논문집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a 이성백 교수

이성백 교수 ⓒ 김재호

<제1회 맑스 코뮤날레> 준비로 한창 바쁜 가운데, 조직위원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이성백 교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편의상 본 기자는 '김'으로 이성백 교수는 '이'로 표기했다.

김 - <제1회 맑스 코뮤날레>는 2003년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십니까?

이 - 그 동안의 고립된 맑스주의 연구관점에서 벗어나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서 이루어 내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술대회 측면에서 정말 새로운 행사죠. 연구자만의 발표가 아니라 참여한 모든 사람이 즐겁게 함께 하는 동시적 행사입니다. 실효는 봐야 알겠지만 이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고 실험입니다. 외국의 맑스 대회는 순수학자들만의 행사이지만 이번 '맑스 코뮤날레'는 대중과 함께 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서구의 학자들이 우리를 따라할 수도 있을 겁니다.

김 - 맑스 코뮤날레 조직위원회가 결성된 후에, 예정으로 잡았던 기간보다 많이 늦춰졌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건지요?

이 - 처음에는 메이데이 기념행사의 하나로 하려했으나 대학의 중간고사와 축제가 겹치는 바람에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시간으로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그것도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로 잡은 겁니다.

김 - 김세균 교수(맑스 코뮤날레 준비위원장, 서울대 정치학과)는 여성운동과의 연대를 추진하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번 행사에 함께 참여하는지요?

이 - 접촉은 해보았지만 여성운동진영 쪽에서 맑스운동진영이 페미니즘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맑스주의의 확장으로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공감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김 - 다채로운 문화 행사도 마련된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행사가 준비되고 있습니까?

이 - 학술행사와 동시적으로 발표자의 주제와 관련되는 영상물(발제 중간에)과 맑스주의 운동하는 사람들이 준비한 그림과 조각 등의 전시회, 그리고 첫째 날과 셋째 날의 푸짐한 문화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신세대들의 취향에 맞는 인디 록 밴드도 참여합니다.

김 - 맑스주의가 한국 진보운동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이미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닙니까?

이 - 보는 사람들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후쿠아먀의 자본주의 승리 선언은 여러모로 비판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데리다도 후쿠야마의 말을 가치가 없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프랑스 중심으로 맑스주의의 극복을 위한 여러 시도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존사회주의의 붕괴가 사회주의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요. 자본주의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맑스가 설명했던 구조에서 자본주의는 아직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면서 여러 모로 부분적 보완 수정을 거쳐왔는데, 이런 21세기 상황에서 맑스주의의 확장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시도가 바로 이번 행사의 중점입니다. 물론 맑스주의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맑스주의를 재해석하고 필요한 부분에서 접합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맑스와 푸코, 맑스와 프로이트, 보편적 맑시즘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하겠지요. 21세기 진보적 사회 흐름에 맞게 다양하게 해석해야합니다. 전통 맑스주의자나 접목주의자나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대결에서 맑스주의의 코드를 공유한다는 것은 모두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행사의 이름을 '맑스의 현재성'이라고 붙일 수 있었습니다. 기획단계에서 논쟁을 많이 했고, 여러 맑스주의 흐름들이 비판과 토론의 장 마련하자는 취지에 공감을 했습니다.

김 - 맑스 코뮤날레 상임대표 김수행 교수는 "1980년대 국내 학계와 운동권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진정한 맑스주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라면서 그들이 왜곡된 현실 사회주의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맑스주의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이 - 진정한 맑스주의는 맑스주의를 변증법적으로, 변하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분석하는 현실과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당시 운동권에서는 일본에서 건너온 해석교과서를 보고 현실을 재단하려는 게 아니었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 - 재정문제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습니까? 전반적인 준비과정과 함께 말씀해 주시지요.

이 - 90년대 진보적 사회의 후퇴와 분열기에서 맑스주의를 떠난 사람이 많았어요. 90년대는 아예 논쟁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붕괴되는 시점이었죠. 그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유입 등 자본의 촉수가 더 험하게 뻗어 가는 가운데 다시 모이자는 이야기가 그때부터 산발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봄에 몇 단체에서 이야기가 나왔고, 공식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지요. 기왕 할거면 모든 진보 단체에 연락하자고 했고, 대부분 단체가 동의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여건의 한계 때문에 학생 단체와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행사들이 만들어진 후에야 학생단체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후원단체로 들어온거죠. 이후에는 모든 조직이 주관단체가 되어서 민주주의적으로 성격을 함께 규정할 수 있는 전체적인 학술행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재정문제는 모임의 주체가 모두 뒷받침하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취지에 동참하면 조직위원회(10만원 이상 후원)나 후원회원(3만원 이상 후원) 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한 최소한의 경비가 있는데 지금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김 - 사이버 맑시안이라는 표현도 있던데, 맑스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접했다면 어땠을까요?

이 - IT는 지구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동전의 양면이지요. 그리고 지구화는 맑스가 가장 먼저 예견했었습니다. 그래서 맑스의 현재성은 지구화에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공산시대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와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전통 미디어는 자본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지요. 자본의 권력으로 보수 언론을 옹호했지만 앞으로 진보 언론은 보수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은 보수 자본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정보 순환과 공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내의 전통적 보수 언론에 대항해서 헤게모니 형성을 위해, 그리고 진보진영의 언론기구로서 파워장악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인터넷마저 자본에 의해서 잠식당하지 않게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해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그런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본 기자의 아래 질문에 현 한국의 아카데미즘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맑스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적절한 충고가 아닌가 한다. 서구이론의 베끼기에만 경도 되어있는 한국의 학문적 토양은 그야말로 절망에 가깝다 하겠다. 한국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서구이론의 주체적 수용이 필요할 것이고 현실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객관적 진리가 인간의 사고에서 나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김 - 지금의 한국 진보운동을 진단하신다면?

이 - 다양하게 말할 수 있는데, 지식인운동 차원에서 보자면 진보적 연구자 층의 좌파 지적 헤게모니가 흐려지면서 우파가 지적 헤게모니 장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좌파 측의 예비지식인들이 생존의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보적 입장을 가지고서 체제 내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진보 진영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보적 운동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결연한 각오를 갖고 아카데미 밖에서 연구 학술 진지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화 연구를 하는 진보적 아카데미 연구소, 페미니즘 연구소라든지 노동교육 센터, 노동대학, 노동대학원 등 대안적 연구 교육 체제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다르더라도 다양한 운동 진영의 사람들이 대안적 연구 교육 시스템을 설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동, 문화, 환경, 페미니즘의 각 운동 진영이 서로 서로 접촉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김 - 이번 행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이 - 자본의 지구화가 전세계적으로 민중의 빈곤화를 의미합니다. 그 대안적 투쟁을 형성해야 합니다. 거기에 자신들의 생각이 다를지 모르지만 대의(반자본)을 위해 맑스가 얘기했던 것처럼 다함께 모였으면 합니다. 이번 '맑스 코뮤날레'가 그 길에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1회 맑스 코뮤날레>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들은 행사 기간(5월 23일부터 25일까지)에 아무 시간이나 와서 학술 문화제를 '즐기면' 된다. 참고로 '코뮤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 전람회를 뜻하는 비엔날레와 코뮤니즘의 합성어이다. 그리고 행사는 앞으로 2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에 맑스의 경구를 하나 인용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인용문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바쁘고 과로로 몸이 편치 않는 가운데에서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성백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쾌유하시길!

헤겔의 "이성은 현재의 십자가 속에 핀 장미로서 인식"이라는 말에 대해 맑스는 "현존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을 말한다. 현재를 억압하는 십자가로서의 현존하는 모든 것에 대한 비판이다. 비판은 다음으로부터 도출된다. "인간이 천시되는 존재, 노예화된 존재, 버림받은 존재, 그리고 경멸받은 존재가 되는 그러한 모든 상황을 전복시켜야 한다."<헤겔법철학 비판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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