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미 PBS회견기사 번역 큰 하자없다

청와대는 우리말 녹취록 전문 공개해서 오역논쟁 없애라

등록 2003.05.19 14:15수정 2003.05.1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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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PBS방송과 가진 인터뷰 기사에 대한 논란이 많은 모양이다. 그 중의 하나는 그 기사를 쓴 김태경 기자가 회견 내용 일부를 오역했다는 것인데 그런 내용의 독자들의 글이 올라온 것도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회견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해 본 결과, 김기자가 한 군데 중요한 부분에서 부정확한 번역은 했지만 대체로 무난한 번역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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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정권 믿지 않고, 동의 안해 美 군사적 위협, 북핵해결에 도움"

부정확하게 번역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PBS TV 앵커 짐 레러(Jim Lehrer)가 "Did you specifically ask President Bush to ask his folks to quit talking about a military solution to the problem in North Korea?(북한문제의 군사적 해결을 정부관리들이 거론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특별히 부탁했습니까?)"라고 물은 것을 김 기자는 "부시 대통령에게 군사적인 해결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습니까?"라고 한 것은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또 기사 제목에 "미 군사적 위협, 북핵 해결에 도움"이라고 쓴 것을 두고도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독자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것도 ―제목도 김 기자가 달았다면― 약간 비약적인 번역이라고 할수 있다.

정확하게 하려면 "북한이 겁먹은 것은 북한문제 해결에 도움"이라고 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이 군사적 위협을 해도 북한이 겁을 먹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영어 원문과 필자의 번역은 이렇다.

LEHRER: "Do you believe this fear helps the situation in terms of solving it peacefully with North Korea or hurts it?"
ROH: "I think there is a bigger possibility of this factor being a helpful one towards peaceful resolution."

레러: "북한이 미국을 두려워하는 것이 북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해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노: "북한이 미국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김태경 기자는 노 대통령의 대답을 "평화적인 해결로 가는데 있어 이런 요소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다소 애매하게 번역했다.

김 기자의 번역에 대해 어떤 독자(미국 유학생이라고 밝힘)는 "저는 그러한 요소들이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해당 요소가 유익한 요소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해야 정확한 번역이라고 주장하고는 "김태경 기자는 호들갑을 멈춰 주기 바란다"고 말해서 필자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 노 대통령이 우리말로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통역이 한 말 중 "And its behavior and its demands are not those that can be accepted by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I―so therefore I don't think North Korea is a partner to be trusted, and I don't agree with its regime"을 김태경 기자가 잘못 번역했다고 주장하는 독자도 있으나, 그가 "그들의 행동과 요구는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북한이 믿을만한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정권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라고 한 것은 무난한 번역이다.

필자는 노 대통령이 한말을 들어보려고 인터넷 녹음에 귀를 기울였으나 영어통역 때문에 노 대통령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다만 맨 마지막에 그가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을 맺는 것만 들을 수 있었다. 일부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주기 위해서도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전문 공개해주기를 바란다.


앞서도 말했듯이 김태경 기자는 한 군데 부정확한 번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무난하게 노 대통령 회견 내용을 번역한 셈이다. (영어 원문에 reprocess(재처리)가 repossess(차압)로, cooperate(협조)가 incorporate(법인체로 만들다)로 오타되었음도 지적해 둔다.)

그러나 김태경 기자는 최근 <오마이뉴스>에 크게 보도된 번역기사 "80년 전 영국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미국의 중동정책 잘될 가능성 없다"에서는 오역을 적지 않게 많이 했다.

유명한 국제정치학자이자 사학자인 폴 케네디 교수가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기고한 글, "제국이 직면하는 위험들"(The Perils of Empire)을 번역하면서 김기자는 케네디 교수가 특별히 "순간"이란 뜻으로 강조한 moment를 "기회"로 계속 오역했고, nerve(용기)를 "신경망", school(학파, 파)를 "학교", ingratitude(배은망덕)를 "궁핍", total command of air and communications(완전한 제공권과 통신수단의 우위)를 "공군 및 통신의 종합사령부"라고 오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서 서툰 번역을 해놓아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았다. 김태경 기자 오역의 백미(?)는 맨 마지막 영국 시인 키플링 시의 "번역"이다.

Take up the White Man's burden,
And reap his old reward―
The blame of those ye better
The hate of those ye guard―
The cry of hosts ye humour
(Ah, slowly!) toward the light―
"Why brought ye us from bondage,
Our loved Egyptian night?"

<김태경 기자의 번역>

백인의 짐을 들어올려라
그리고 그의 오래된 응보도 거둬들여라.
그들의 비난은 그대가 더욱 좋고
그들의 증오는 그들이 지키고
주인의 울음에 그대가 분위기를 맞추고
(아 천천히!) 빛을 향해서
"왜 그대는 우리들의 속박,
우리의 사랑스런 이집트의 밤에서 데려갔는가?"

<필자의 번역>
백인의 짐을 떠맡으라
그리고 그 보상을 받으라
그대들이 더 잘살게 해주는 자들의 비난과
그대들이 보호해주는 자들의 증오와
그대들이 비위맞춰주는 무리들의 울부짖음을,
(아, 서서히!) 새벽이 가까워오자 그들은 외친다―
"당신은 왜 우리를 속박으로부터 풀어서
그 아름다운 이집트의 밤으로부터 우리를 데리고 왔단 말이요?"

(*마지막 인용부호 안의 두 줄은 모세가 이집트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 어려운 고비를 만나면서 모세에게 퍼붓는 원성이다.)


영어로 된 외국 기사를 번역하려는 모든 분들에게 한마디 충고하고 싶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 같은 권위지에 실린 기고문들은 대부분 대학자들과 대기자들이 쓴 글이다. 그런 사람들의 글을 충분치 못한 어휘와 문법 실력을 가지고 함부로 번역하려는 만용은 자제하는 게 좋다.

수백 만이 읽는 <오마이뉴스>는 번역 연습장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영어 기사 전문을 그대로 다 번역하려 하지 말고, 사전 찾아가면서 그 글들을 최소한 두 번은 읽어 그 뜻을 완전히 파악한 다음, 그 내용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간추려 써서 소개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그래야 본인도 오역의 오명을 쓰지 않아서 좋고, 읽는 독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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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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