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왕자와 공주가 되기 위한 거울 깨뜨리기

김영하의 <거울에 대한 명상>론

등록 2003.05.20 21:55수정 2003.05.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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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보이는 아름다운 내 모습...공주는 외로워...♬"

얼마 전 공주병과 왕자병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까지도 거울공주, 거울왕자, 도끼병 등의 신조어가 떠돌고 있다. 이는 현대 우리 사회의 정신병리학적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자기 중요성 또는 자기 재능과 성취에 대한 과대적 사고와 남으로부터 끊임없는 관심과 칭찬을 받고자 하는 자기 현시적 욕구, 냉담한 무관심이나 분노감, 굴욕감 또는 공허감으로 반응하는 양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자기애(自己愛)의 문제이다.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은 이러한 자기 애착에 대해 본질적 해석을 시도한다.

자기애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나르시시즘이라 한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水仙花)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연관지어,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가 1899년에 만든 말이다.

자기의 육체를 이성의 육체를 보듯 하고, 또는 스스로 애무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리비도가 자기 자신에게 쏠려 있는 상태로, 이것이 강해지면 인격장애로 발전된다.

주인공 ‘나’는 "실존이랄 게 따로 없는" , "나르시시스트"이다.‘가희’가 인정하고 자기 자신도 인정하고 우리까지도 인정하는 나르시시스트인 것이다. 그렇기에‘나’는 실체보다 이미지를 중요시하고 충실한 반영물인 거울로써만 자신을 존재케 하는 인격적 장애인이다. 일명 왕자병 걸린 남자로 자기 애착의 전형성을 대표한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의 거울" 과 ‘나’의 거울은 동일하다. 나르시시즘의 충실한 반영물이라는 존재의 위치, 스스로 깨어지게 되는 존재의 결과 측면에서 똑같은 거울이다. 이 거울은 또한 마녀와‘나’의 자기 파멸이라는 결과와 부합된다.

한편, 죽음을 떠오르게 하는 그들이 갇히게 되는 트렁크 안은 거울의 폐쇄적이고 제한된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러한 나르시시즘과 거울의 복잡한 관계는 무수한 잘못을 낳고 결국 스스로 그 고리를 끊고 파괴된다.

‘나’는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아내 ‘성현’과 ‘가희’또한 거울에 비친 거짓 이미지로 왜곡, 변형시킨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나르시시즘의 파괴의 원인이다. 자기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것들까지도 거울을 통해 보려는 것이다. 이는 자기애가 한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인격장애자나 정신병자가 타인을 해치기도 하여 사회의 위험요소로 격리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가희’의 의도된 듯한 장난, 트렁크를 닫아버림으로써, 또한 그녀의 독설에 의해 ‘나’는 그녀와 아내의 그릇된 이미지가 담긴 거울을 깨뜨리게 된다.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리라 믿었던 백색의 대지이자, "상수도"인 ‘성현’과 수없이 덧칠해도 상관없는 유화이자 "하수도"인 ‘가희’의 이미지가 도치된다. 아내는 한번도 그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진정 그를 사랑한 것은 가희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본질조차 모두 어긋나고 거짓 투성이다.

그 시점에서 신파가 다시 희극이 되며, 지옥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것은 죽음의 과정이다. 또 거울은 없게 되는 것이다. 거울의 소멸과 트렁크 속에서의 죽음은 시계, 즉 시간의 문제와 결부된다. 11시 방향으로 가서 발견한 승용차의 트렁크, 10분쯤 지나 11시쯤이 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 그들은 서서히 죽음에 가까이 가고, 그와 동시에 거울도 금이 가기 시작하여 결국 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왕자병 걸린 왕자는 거울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반면, 우리는 ‘나’의 없어진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의 거울의 존재를 깨닫는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에게 숨겨진, 우리가 존재조차 몰랐던 거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이 실제라 믿고 다른 사람의 거울에서 굴절되어 나온 무수한 이미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실존과 이미지가 모호한 시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쉽사리 실존과 이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가희와 같은 존재의 도움 없이는 자각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본질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을 준다는 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작가는 이 단편으로 등단하여 <나는 아름답다>,<호출>,<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으로 이어져 우리에게 나르시시즘과 거울에 관한 자각을 하게끔 하는 노력을 지속했다.

거울로 본 것은 모두 이미지고 환상이며, 거짓이다. 거울은 없다.

‘나’는 왕자병 걸린 왕자로써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자기집착의 인격장애자이다. 우리 또한 그런 인격적 결함을 가지고 이 사회에 존재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죽음의 이미지, 시간적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숨겨진 거울을 깨뜨려 새로이 탄생하자.

우리 모두 왕자병, 공주병에서 벗어나 진정한 왕자와 공주가 되자. 깨뜨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용기가 필요하다. 아끼고 동일시하던 거울을 깨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기에... 그러나 깨뜨려야만 한다. 그래야만 힘과 지혜를 가진 존경받는 왕자와 공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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