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행사장 정문에서 경찰과 대치중인 한총련 학생들오마이뉴스 강성관
한총련 문제야 학생들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 촉발시킨 문제니까 그렇다치더라도, 네이스 문제를 인권의 관점을 배제한 채 단지 전교조 문제 차원으로만 받아들인 것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위기관리 특별법 제정도 노동계나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노무현은 지금 어제의 노무현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그것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은 미국방문 직전 자신이 말했던대로 “한국의 주류와 비주류를 포괄하는 대한민국의 대표”가 되는 길을 가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출발이 비주류와의 거리두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노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대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표가’ 되는 것은, 흔히 말해온 통합의 리더십을 구현하는 것과 대동소이한 말이다. 그렇다면 그 길을 반대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필자 역시 <오마이뉴스>의 기고를 통해 노 대통령이 자기 편만 챙기는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전체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함을 여러 차례 주문한 바 있다. 절반의 대통령으로 개혁을 성공시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길은 말릴 것이 아니라 힘을 보태주어야 할 길이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왜들 난리일까. 왜 노 대통령이 변해버렸다고 아우성들을 치는 것일까. 그것은 통합의 리더십을 모색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보수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세력으로 폄하하고, 아무리 실수가 컸다고 해도 한총련 학생들을 ‘난동자’로 규정하며, 전교조를 ‘국가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정부의 굴복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집단으로 몰아붙여야만 했을까. 꼭 그런 방식밖에는 없었을까.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미동맹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말의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겠건만 꼭 이땅 ‘비주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방식으로 해야만 했었을까.
이 나라 ‘비주류’들이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미국 자극하는 발언이나 하고 올 것으로 기대할 정도로 세상 물정모르는 사람들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과 우리 대통령의 무게를 지켜가며 미국의 손을 잡기를 바랬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과공(過恭)발언들에 대한 항의를, 마치 미국에 가서 미국비판을 하고 왔어야 했다는 식의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매도하는 것은 그래서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왜 일언반구 설명이 없는가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최근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답답하다”는 소리를 내뱉는 사람들이 늘었다. 물론 노 대통령도 답답해 하고 있다.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하는데 앞장서고 등을 돌리는데 섭섭함 이상의 감정을 느낄 법하다. 최근 노 대통령의 언어들에서는 그같은 감정이 짙게 배어나오고 있다.
답답해 하는 것은 같지만, 그 사이에 놓여있는 것은 단절이다. 노 대통령과 지지층 사이의 단절. 이것은 노무현 정부의 존립근거와도 직결된 중대한 문제이다. 단절이라. 정말 노 대통령과 그의 지지층 사이에 단절이 발생한 것인가. 과장은 아닌가.
과장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미국에 있을 때부터 단절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실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국내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북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군사행동까지도 가능한 '추가적 조치’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북핵문제와 경협을 연계시키기로 하는 등,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을 변경한 내용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줄 정도로 미국을 찬미해준 결과가 이 정도인가 하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않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달랐다. 정상회담 직후 기자들 앞에서 그는 성과에 대단히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노 대통령을 비롯한 방미팀은 이번 방미성과에 크게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 동행했던 기자들의 이야기이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미국예찬 발언들에 대한 국내 지지층들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이미 이 나라 ‘비주류’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이해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미국방문을 갖고 엉뚱한 시비만 거는 사람들이 야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같은 정서의 차이는 바로 단절의 시작이었다.
왜 그같은 단절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두 가지이다. 우선 노 대통령의 변신이 예상을 넘어서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노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한 것이라면 그 충격파는 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변신의 이동거리가 매우 크고, 심하게 말하면 극과 극을 오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결과 노 대통령이 원했던 ‘주류와 비주류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주류의 반발속에 주류의 환영을 받는, 결국 또 하나의 반쪽 대통령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태도의 변화, 대북정책의 급격한 변경, 집단행동에 대한 강경대응 등에서 나타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그동안의 노무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연속적이지 못하고 단절적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같은 과정에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정부 5년간, 그리고 현정부에서도 유지되어온 대북정책을 변경하는 것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지금같이 북핵문제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반도의 앞길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정책의 기조가 변화된 이유에 대해 국민들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북한에 대한 ‘추가적 조치’는 어째서 검토할 수 있는 것인지, 북핵문제와 경협을 연계시킬 수 있다는 입장변경은 왜 필요한 것인지. 대통령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저 “확대해석하지 말라”는 식의 정부관리들의 미봉적인 무마성 해석들만 이어진다. 그러나 이번에 개최된 남북경제협력위원회 회의에서 나타난 우리 대표단의 전례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면 우리 정부의 정책변경은 확실해 보인다.
민족의 앞길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정책을 변경하면서도, 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하기 위한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 언제나 있는 것은 노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결론 뿐이다.
그런 모습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니 노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 단순한 전술적 고려인지, 북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생각이었는데 이제야 알게된 것인지, 종잡기가 어렵다.
언제까지 우리가 노심(盧心)읽기에 매달려야 하는가. 중간의 과정이 설명되지 않거나 생략된 결론은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얻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결론만을 일방적으로 따르라는 독선적 리더십으로 흐를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
전교조에 대한 강경한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전교조가 네이스를 반대하는 것이 어째서 잘못인지, 네이스 시행시 인권의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은 무엇인지, 전교조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네이스를 반대하는 전교조는 ‘국가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집단으로 표현될 뿐이다. 갈등의 한 당사자인 전교조가 수긍하고 말고 할 설명이 없다.
열쇠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