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폭파범 김현희는 가짜다?"

KAL 858기 폭파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현우 장편소설 <배후>

등록 2003.05.23 00:02수정 2003.05.2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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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의혹을 남긴 20세기 최대의 미스터리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KAL 858기 폭파사건은 20세기 최대 미스터리다.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KAL 858기가 미얀마 해 상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물론, 승객과 승무원의 유해, 유품과 기체의 조각조차 발견하지 못한 이상한 사건으로, 이는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


구 소련의 미사일에 요격된 KAL 007기는 1년이 지나도 계속 부유물을 발견했고, 인도양의 모리셔스 해에서 추락한 남아프리카의 점보기도 1년에 걸쳐 항공기 잔해와 승객의 유품을 발견했다. 그에 비해, 아무리 강력한 공중폭파라고 해도, 전후 41미터 길이에 좌우 양 날개 너비 40미터나 되는 보잉 707기(KAL 858기)의 기체 조각 하나 찾지 못했다는 점은 최대의 수수께끼다.

또한 KAL 858기 행방불명에 관한 보도를 접한 한국 정부와 KAL의 대응태도 또한 의혹을 낳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미얀마와 태국의 산중 수색에 1주일을 허비했으며, 간신히 수중 수색에 착수하기는 했으나, 이 역시 단 열흘간 수색작업을 펼치고 현지조사단을 철수하고 수색작업을 중단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사고원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블랙박스(바다 속에서 1천 도의 온도와 중력의 1백 배를 견디면서 30일 동안 반경 2마일까지 발신음을 보낸다)에 대한 수색작업도 사고 발생 초기에 포기했다.

그 외에도 미심쩍은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명백한 증거 없이 이 사건을 '북괴의 테러'로 결론지은 이유는 오로지 안기부의 손아귀에서 자백한 김현희의 진술 뿐이다. 그러나 사건을 결론지은 결정적 역할을 한 김현희의 고백조차 허위진술이 곳곳에서 발견되며, 그녀는 특수교육을 받은 정예공작원이라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부다페스트와 빈, 베오그라드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다.

공작원이 공작지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공작원의 철칙이다. 그런데 7년 8개월간 훈련을 받은 김현희는 공작지에서 한가하게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또 그것을 가지고 다녔다.


그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찍은 사진필름을 비롯해 항공권, 북한대사관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 그리고 체포될 때 결정적인 물증이 된 김정일에게 맹세했다는 맹세문까지도 소중히 지니고 있었다.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할 공작원이 오히려 결정적인 물증을 끝까지 지니고 다니는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KAL기 폭파사건을 배경으로 한 박진감 넘치는 미스터리 소설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하나둘이 아니지만 이쯤하고, 그러한 의혹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쓴 소설을 소개한다. 서현우의 <배후>다. 이 소설은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을 소재로 하고, 이 사건이 북한의 명령을 받은 김승일과 김현희가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는 가정 아래 박진감 넘치는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소설은 크게 보아 액자형식으로 되어 있다. 액자 밖 주인공은 저자와 이름이 같은 '서현우'이고, 액자 안 주인공은 안기부 직원 '해모수'다. 즉 저자 '서현우'가 '해모수'라는 안기부 직원에게 전해들은 얘기를 독자들에게 전한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대체로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상상력으로 쓴 소설이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저자는 대한항공기 직원인 '기태'라는 인물과 공병대 출신인 그의 친구 '정규'를 내세워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지난번 KAL기 폭파사건 말인데, 그렇게 순식간에 여객기를 폭파하려면 어느 정도의 폭약이 필요한 거고?"
(중략)
"그건 계산을 해 봐야 해. 여객기 정도 규모라면 많은 양이 필요한 게 분명해. 전투기 정도 규모를 볼 때도 미사일에 정통으로 피격되지 않는 한 추락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활강이 가능하거든. 몇 년 전 소련기에 의해 격추된 KAL기 사건과 비교해보면... 물론 그때의 KAL기가 이번의 KAL기보다 더 큰 기종이었지만, 미사일을 두 차례나 맞고 추락하기까지 상당한 시간 체공상태에 있었다는 사실로 봐도, 이번의 KAL기 폭파는 아주 많은 양의 폭약에 의한 거라고 생각돼."(p-135, 기태와 정규의 대화)


안기부는 김현희 일행이 범행에 사용한 폭탄이 콤포지션 C4 350그램과 PLX 액체폭탄 700cc라고 밝혔다. 군사전문가에 따르면, 이 정도의 폭약으로는 결코 비행기를 순식간에 폭파할 수 없다고 한다. 바로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소설에서는 바레인 경찰 '만수르'를 내세워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당시 김현희를 체포한 나라는 바레인이었다).

"왜 한국과 미국은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그들을 KAL기 폭파범으로 단정하는가. 그들에 의한 폭파라는 어떤 물증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의 자백조차 없었다. 단지 그들은 위조여권을 소지했기 때문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국제법상 그들의 처벌권한은 엄연히 바레인이 갖고 있었다. 아무리 한국이 항공기 폭파의 피해 당사국이라 하더라도 증거 없이 그녀를 한국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한국은 바레인과 범인인도협정조차 맺지 않은 나라이다.
(중략)
게다가 단지 음독사실을 검사했을 뿐인 하치야 마유미에 대해 한국 언론은 음독 후 위세척으로 가까스로 살아난 것처럼 보도하고 있었다. 만수르에게는 모든 게 의혹 투성이였다."(p-139)


본래 국제 범죄의 경우, 범인을 체포한 국가에게 최우선적인 수사권이 있다. 그런데도 바레인은 수사권을 포기하고 범죄인 인도협정도 맺지 않은 한국에게 마유미의 신병을 인도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만수르'라는 인물을 통해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다.

희망과 절망의 8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책

소설에서는 주인공 '해모수'가 프랑스 경찰, 안기부, CIA의 집요한 추격을 받으며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과정과 KGB의 은밀한 공작과정 등을 박진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한마디로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그러나 만약 이 소설이 그것뿐이었다면, 굳이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 소설엔 청춘의 시절을 군부독재 아래 보낸 아픔이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KAL 858기 폭파사건 당시는 13대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1987년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뜨겁게 타올랐다. 시민들의 염원은 6월 항쟁으로 얻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비민주적인 권력을 갈아치우고 민주 정권을 창출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묘한 시점에 터진 KAL기 폭파사건으로 노태우가 당선됨으로서 군부독재는 생명을 연장했다. KAL기 폭파사건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터진 사건이란 말인가? 당시에도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전단지에서, 대자보에서... 광주에서 수천 명을 학살한 전두환 일당이 정권연장을 위해 조작한 사건이었다고 말이다.

한편 저자는 이 소설을 KAL 858기 탑승자 115명의 영령들과 가족회, 그리고 KAL기 사건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에 바쳤다. 또한 1987년 김현희 KAL기사건 전면 재조사에 관한 국회청원서와 희생자 명단을 싣는 성의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작가 후기의 말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KAL 858기 폭파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며, 이제 그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 동안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세인의 관심과 재수사 목소리가 높아져왔다.(중략) 참여정부의 출범은 우리에게, 지난 국민의 정부에 의한 의문사 진상규명의 차원을 넘어 그 동안 제기되어온 무수한 의혹사건에까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이제 정부는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과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배후 1

서현우 지음,
창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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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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