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96

등록 2003.05.23 17:49수정 2003.05.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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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은 실망만을 가득 안은 채 월군녀 앞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처음으로 국정에 임한 유리는 보무도 당당하게 천자의 자리에 앉아 신하들의 영접을 받았다. 무슨 말부터 해야될지 모르는 유리에게 재사가 처음으로 고했다.

"태자 마마, 신(臣)재사 아뢰옵니다. 국정이란 신하들이 폐하께 아뢰는 일들을 잘 판단하시는 것이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사람을 뽑아 쓰실 일이 있을 때 만사를 고려해 주시면 되는 것이옵니다."


유리는 재사의 말을 듣고서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난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옥지, 구추, 도조에게 벼슬을 내리고 싶었소. 그런데 지금 대대로의 말씀을 듣고 보니 함부로 내릴 결정이 아닌 듯 하오. 그렇다고 하나 내게 항상 큰 도움이 되어왔던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자니 내 마음이 편치 않소. 어찌하면 좋겠소?"

많은 신하들이 유리의 말에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는 신하들의 표정을 살피며 어떤 대답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군신들간에 감도는 어색한 기운은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마침내 오이가 입을 열었다.

"정히 그러하시다면 굳이 벼슬을 내릴 것도 없이 그들이 태자마마를 보좌하도록 곁에 두옵소서. 차차 중히 쓰실 일이 있으면 그때 벼슬을 내려서 쓰시면 될 일이옵니다."

"그러면 되겠구려! 잘 알겠소이다. 그대로 시행하리다."


국정이 끝난 후 신하들은 저마다 천자가 태자에게 국정을 맡긴 것은 큰 실수가 아니냐는 의견을 나누며 고구려의 장래를 염려했다.

옥지, 구주, 도조는 일전에 협부와 충돌을 빚었던 일로 인해 궐 밖으로 나가있었다. 이들은 유리가 자신들을 잊고 있었는줄 알았다가 다시 그들을 찾는다는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


"그럼 그렇지! 형님, 아니 태자마마께서 어찌 우리를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옥지, 구추, 도조에게는 관복과 함께 항상 태자의 뒤를 따르며 보좌하는 역할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며칠 후부터 궐안의 생활에 따분함을 느낀 유리가 자주 나가기 시작한 사냥터에서 같이 생활하는 것이었다.

"매일 궐안에만 처박혀 있다보니 몸이 근질거리는 구나! 옥지는 술을 준비하고 구추는 내 활을 손질하고 도조는 근처의 사냥터를 물색하라!"

마침 을소의 강론에 유리를 데리러 가기 위해 오던 협부가 이 광경을 보고선 유리에게 고했다.

"태자마마 이제 막 폐하를 대신하여 국정을 맡은 마당에 사냥을 가시다니요. 폐하께서 아시면 그게 노하실 일입니다."

"하지만 궐 안의 생활은 너무나 따분하기 그지없소. 한 달동안 갇혀만 있었더니 내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단 말이오."

협부는 유리의 철없는 소리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정성껏 타일렀다.

"아뢰옵니다. 아직 태자님은 모든 면에서 미흡하시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사옵니다. 이들의 염려를 불식시키려면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는 수밖에 없사옵니다. 어서 사냥 행차를 접으시고 저와 같이 강론에 납시옵소서."

유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협부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딱 하루만이오! 먼 곳에 가는 것도 아니고 이 주변만 말을 달려 돌아다니고 싶은 것뿐이오! 그런 것도 아니되오?"

협부는 한숨을 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런 협부를 본 유리는 자신의 설득에 넘어갔다고 지레짐작을 하며 부리나케 말에 올라 궐 밖으로 나가버렸다. 근처에서 마려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오간에게로 달려갔다.

"지금 태자가 대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을 달려 사냥을 하러 떠났습니다."

오간이 의욕 없는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우리가 뭘 어쩌겠소. 될 대로 되라고 하시오."

마려가 무슨 소리냐는 듯 오간을 부추겼다.

"될 대로 되라니요! 이런 일은 폐하께 고해야 합니다. 국정을 맡은 태자가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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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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